마지막까지 평안한 생애를 위해선
마지막까지 평안한 생애를 위해선
  • 채수민 기자
  • 승인 2022.09.19
  • 호수 1553
  • 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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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이 늘어나고 타인의 도움 없인 살아갈 수 없는 돌봄 필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3.5세, 건강수명은 66.3세로 나타났다. 한 사람이 태어나 삶을 마치기 전까지 평균 17.2년간 질병에 시달리며 혼자만의 힘으론 살아가기 어렵단 뜻이다. 이에 국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돌봄 체계엔 아직 제도적 허점이 많단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외면받는 노인 돌봄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 체계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와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 제도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대상자의 장기 요양 필요성을 기준으로 판정한 장기 요양 1-5등급 인정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 제도는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 △기초연금 수급자 △차상위계층 중 독거·조손 가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도 운영에 있어 중앙정부의 권한이 막강해, 지자체가 지역 노인들이 필요한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기엔 한계가 있단 문제가 제기된다. 김보영<영남대 휴먼서비스학과> 교수는 “일본에선 기초 지자체가 현장에서 지역 노인의 사정을 고려해 장기 요양 등급을 조정한다”며 “반면 우리나라의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정해놓은 등급에 맞춰 별다른 책임과 의무 없이 돌봄 서비스를 공급할 뿐”이라 지적했다. 이어 그는 “중앙정부는 지역에 사는 노인의 세부 사정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나라 노인들은 코앞에 있는 지자체에게도,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중앙정부에게도 외면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흩어져있는 돌봄 제도를 통합해 노인 돌봄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지자체에 부과할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있다. 김 교수는 “현재 국내 돌봄 제도는 △노인복지법 △장기요양보험법 △장애인복지법 등 개별 법률로 쪼개져 있고 소위 말하는 사회서비스 관련 급여도 260여 가지가 넘는 상황”이라며 “지자체가 흩어져 있는 돌봄 급여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해, 지역 노인 맞춤형으로 돌봄 서비스 체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설 입소 앞당기는 재가 서비스
이뿐만 아니라 장기 요양보험의 재가급여 서비스 수준이 낮아 노인들의 요양시설 입소가 빨라진단 지적도 있다. 상당수의 노인들은 가능한 한 요양시설이 아닌 익숙한 장소나 공동체에서 남은 생애를 보낼 수 있길 원한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83.8%에 해당하는 대다수 노인들은 “현재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답했다. 이를 반영해 장기 요양보험은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방문해 제공하는 재가급여와 장기간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한 수급자에게 제공되는 시설급여 중 재가급여를 우선 제공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현재 재가급여는 △방문간호 △방문목욕 △방문요양 △주·야간 보호 서비스 등으로 구성되는데,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 중 방문요양 서비스가 55.7%의 이용 비율로 절반 넘게 차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인들이 필요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누리기보단 방문요양에 치중된 돌봄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는 타 서비스의 공급이 방문요양 서비스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경원<고은맘재가방문요양센터> 센터장은 “방문간호 서비스의 경우 일부 지역에선 서비스 운영 기관이 적어 상당수의 노인들이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처럼 재가급여 수급자 중 대다수가 이용하는 방문요양 서비스가 양적으로 부족하고 실효성이 떨어진단 것도 문제다. 방문요양은 요양보호사가 수급자의 가정을 방문해 하루 최대 4시간 동안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 4시간의 요양 서비스만으로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 시설로 가는 상황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단 지적이다. 김 교수는 “시설 입소의 선택 앞에 있는 노인이 하루 한 번 4시간의 서비스로 집에서 살아가긴 어렵다”며 “결국 어느 정도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가족의 희생 또는 시설 입소의 선택지를 강요받게 된다”고 꼬집었다. 또한 김세진<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정책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재가급여 자체가 그 급여량이 적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연속적으로 4시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요양보호사가 이동이 힘든 독거노인에게 오전 4시간 동안만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아침 식사만 챙겨드리고 점심, 저녁 식사도 챙겨드리지 못하게 된다”고 답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현재 국가에서 운영하는 ‘통합 재가서비스 시범사업’과 ‘지역사회 통합 돌봄 선도사업’을 안정적으로 제도 안에 정착시켜야 한다. 통합 재가서비스 시범사업은 수급자에게 세 가지 이상의 맞춤형 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지역사회 통합 돌봄 선도사업은 지역의 주도하에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 개개인의 욕구에 맞춰 적시에 △보건의료 △요양 △주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 같은 사업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돼 제도적으로 정착된다면 현재 요양 서비스의 공급 부족이나 실효성이 떨어진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요양시설 문제도 되짚어 봐야
돌봄 노인이 여생을 편안히 살아가기 위해선, 빠른 요양시설 입소를 막는 것 외에도 부정적 인식 없이 시설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시설 서비스의 질도 제고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요양시설은 질 낮은 돌봄 서비스로 꾸준히 지적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미흡한 요양시설에 대한 퇴출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전용호<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정해진 조건을 맞추면 웬만한 요양시설은 설치 허가를 받을 수 있다”며 “열악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시설의 퇴출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퇴출당해야 할 요양시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또 다른 질 낮은 요양시설이 만들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노인요양시설은 지난 2008년 대비 2021년 1천332개에서 4천507개로 급증했다. 이에 전 교수는 “요양병원을 스크리닝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수급자가 제공받는 간병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요양병원의 간병비 급여화가 필요하다. 현재 요양병원에서 노인을 돌보는 간병인들은 병원에서 고용한 이들이 아니라 보호자나 노인이 사적으로 고용 계약을 맺은 이들이다. 전 교수는 “요양병원에 있는 간병인들은 따로 돌봄 교육을 받지 않는다”며 “간병비를 장기 요양보험 제도 내 지원 항목으로 포함시키면 공공 돌봄 시스템 내에서 간병인들을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말했다. 교육을 이수한 전문 인력들이 간병 업무를 수행하면 노인들이 요양병원에서 받는 간병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단 것이다.
노인 돌봄은 노인뿐만 아니라 앞으로를 살아갈 우리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생애 마지막 돌봄 기간이 불행하지 않으려면 더 나은 돌봄 체계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움: 김보영<영남대 휴먼서비스학과> 교수
김세진<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정책연구센터> 부연구위원
이경원<고은맘재가방문요양센터> 센터장
전용호<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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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2 00:00:34
흩어져 있는 돌봄 제도를 통합하고, 지자체에 적절한 권한을 부여해 지역 노인들의 요구에 맞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며, 특히 재가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간병비를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노인들의 노후 생활을 더욱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돌봄 체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