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다 버리고 싶어도 당신의 작품이고 인생
[칼럼] 내다 버리고 싶어도 당신의 작품이고 인생
  • 전영범<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국장
  • 승인 2022.09.05
  • 호수 1552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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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범<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국장

빗속을 뚫고 온 제자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지방대 출신으로, 공부를 해서 석사 타이틀을 받아 학력 세탁을 하겠다며 농담을 할 정도로 씩씩했던 기백은 보이지 않고 자신의 터덜거리는 삶에 대해 털어놓았다. 추천해 줄 직장이 있는지도 물었다. 대화의 재료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예술 관련 이야기를 안주로 삼았다.

그간 세계 미술품 시장은 놀라운 경매 역사를 써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는 지난 1990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연출된 반 고흐의 작품이다. 꾸준히 새로운 작품들이 블루칩으로 등장하는 세계 미술시장에 한 획을 그으며 반 고흐의 작품은 전성시대를 맞았다.

서른세 살의 반 고흐가 파리에 있을 당시, 그는 식품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물상에 자신의 그림을 헐값에 팔았었다. 그러나 고물상은 고흐의 그림을 다시 안 볼 생각으로 작품의 유화 칠을 벗겨내고, 중고 캔버스로 재생해 되팔았다고 한다. 이 정도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무일푼의 고흐가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 펠릭스 레이에게 감사의 의미로 자신의 그림들을 전달했으나 대부분 거절당했다. 그나마 고흐의 호의를 받아들여 한 장의 작품이 겨우 의사에게 전달됐는데, 그마저도 이내 닭장의 여닫이문으로 사용됐다. 

이 가난한 화가가 생 레미 병원의 의사들에게 사례로 준 그림은 사격 연습용 타깃이 되기도 했다. 철저하게 무시되고 더 찢길 것도 없는 고흐의 자존심은 그가 살아있을 땐, 복원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고흐가 이웃 영감에게 빌린 돈을 갚을 길이 없자 자신의 그림을 손수레에 가득 실어 돈 대신 주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 영감이 부인에게 이 얘기를 하자 “그 친구 손수레라도 받지 그랬어요”라며 집안의 가보가 될지도 모를 그림을 걷어찬 일화도 전해진다. 이 일도 고흐가 죽은 해에 벌어진 일이니 그는 그림의 가치를 미래의 몫으로 남긴 셈이다.

앞서 말한 지난 1990년 경매에서의 극적인 장면은 일본의 콜렉터 사이토 료헤이가 무려 8천250만 달러에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구매한 일이다. 이는 당시 세계 회화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다. 고작 커피 한두 잔에 그림을 바꿨고 사례품으로도 무수히 거부당했던 고흐의 그림은 사후 100년이 지나서 세계 미술사의 역사를 바꿨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의 작품의가치가 세상에 인정받은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곁들이며 집으로 찾아온 청년의 어깨를 다독였다. 손수레에 실어 내다 버려야 할 것은 청춘의 찢긴 자존심이지 당신 자신은 아니라며 아직 남아있는 가능성을 보고 자신만의 인생 붓질을 결코 멈추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이력서를 집어 들었다.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깊고 단단하게 만들 것인가? 우리 ‘한양’의 구성원에게 묻고 싶다. 아니 대학이 취업예비학교가 아닌 이상 ‘상아탑’의 구성원이라면 궁극적으로 반 고흐의 강렬한 원색 앞에서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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