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는 메시지, 다큐를 보다
꾸밈없는 메시지, 다큐를 보다
  • 나태원 기자, 백세빈 수습기자, 윤재은 수습기자, 이예빈 수습기자
  • 승인 2022.06.07
  • 호수 1550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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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건 △자연 현상 등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장르, 다큐멘터리(이하 다큐). 이는 최근 흥행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 지난 1년 내 제작된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한화 이글스: 클럽하우스」 △「MMM: Where are we now」 등 다큐 형식의 작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작품들은 공개 직후 약 2주 동안 OTT 플랫폼 내 누적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큐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른바 ‘당사자성’에 있다. 주로 자연이나 사회의 모습을 현상 위주로 다뤘던 과거에 비해 최근엔 그 상황에 처한 당사자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영상 플랫폼이 많아진 상황에서 제작자들이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으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며 “이들이 겪었던 감정, 에피소드 등을 심층적으로 담으면서 대중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라 평했다. 「한화 이글스: 클럽하우스」는 중계방송에선 볼 수 없었던 스포츠 스타들의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다큐 저변을 넓히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EIDF)가 대표적이다. EIDF에선 신진 제작 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제작 지원 공모전이 시행되고 있다. 공모전에 입상하면 제작비 지원과 제작 과정 교육이 이뤄진다. 올해 세계 3대 다큐 영화제라 불리는 ‘핫독스’에 초청된 서아현 감독은 지난 2018년 EIDF를 통해 발굴된 인재이기도 하다. 

최근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EIDF가 ‘K-docs’란 새로운 제작지원 체계를 구축해 다큐 저변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하시내<EIDF 인더스트리> 팀장은 “신진 제작자들이 많아지면서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하게 만든다”며 “K-docs는 장르, 제작 단계별로 보다 세세한 제작 지원을 통해 다큐 산업의 발전과 이를 이끌 인재가 더 많아질 것”이라 설명했다. 

국내 다큐 산업을 이끌고 있는 제작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그널’, 다큐멘터리로 대학생의 일상을 녹이다

‘시그널’은 지난 2017년 꿈을 가지고 모인 대학생들이 만든 영상 연합 동아리다. 이곳에선 전문 방송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장르의 영상이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다큐 역시 이들이 제작하는 정규 콘텐츠 중 하나다. 영상을 향한 열정이 가득한 이들의 제작이야기를 들어봤다.

시그널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다큐로 담아낸다. 대2병이나 MBTI를 소재로 한 작품이 대표적이다. 황지민<시그널> 회장은 “대학생이 향유하는 문화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생동감 있게 담아내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며 “이를 표현하기에 심층 인터뷰, 내레이션 등으로 상황의 맥락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다큐가 적합하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 시그널 제작자들의 촬영 현장 모습이다.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진 시그널의 사무실에선 주제 선정이 한창이다. 시청자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소재를 찾기 위해 인스타 피드나 최근 인기 동영상 등 각종 미디어를 살피며 주제를 찾아본다는 그. “특히 대학생은 문화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기 때문에 전체 제작 과정 중에서 주제 선정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편입니다.”

고심해서 주제를 선정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촬영 현장을 찾아 서둘러 발걸음을 움직인다.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다큐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며 촬영하고자 노력한다는 황 회장. “‘대학생’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돼있다 보니 사전 조사를 아무리 열심히 한 경우더라도 직접 현장에 가서 소재가 쉽게 고갈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럴 땐 계획했던 내용을 충분히 담지 못한단 생각에 아쉬움을 많이 느끼기도 했었죠.”

그럼에도 다큐란 장르를 그만두고 싶단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 없단 그는 현장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풀어내는 과정도 다큐의 매력 중 하나라 설명했다. “촬영을 모두 마친 후 △내레이션 △배경 △인터뷰 등 다채로운 영상미를 가미할 때면 현장에 있을 때와는 또다른 즐거움을 느낀다”며 “이처럼 고된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을 때면 ‘다큐 찍길 잘했다’ 싶다”라 말하며 웃었다.

황 회장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진솔하게 담아낼 수 있단 것이 다큐의 유일무이한 장점이라 말한다. 이어 그는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우리가 만든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다큐의 역할이라며 “많은 사람이 좋은 반응을 보여줄수록 제작자로서 뿌듯해요”라 전했다.

시그널의 가장 큰 장점인 ‘다양한 장르’ 그리고 ‘대학생의 다양한 시선’을 앞세워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다큐를 제작하길 바란다.
 

다큐멘터리가 가진 힘으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비추다

지난 2020년부터 ‘심영화 영화 제작소’를 설립해 다큐 영화 감독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심영화<서강대 아트&테크놀로지학과 16> 씨. 다큐를 향한 열정으로 나날을 채우고 있는 그의 여정을 살펴봤다.

영화 「그만 좀 하소」는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권을 경시한 채 소싸움을 즐기는 세태를 조명한 작품이다. 우연히 떠난 배낭여행에서 청도소싸움축제를 목격한 그는 피흘리는 소를 보고 충격을 받아, 소싸움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심 씨는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동물의 입장을 대변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한 이 영화는 ‘싸움소’라는 독특한 소재로 동물권에 대해 풀어냈단 점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심 씨는 “다큐 영화 제작 시 관객들이 마치 소싸움장에 있는 것처럼 몰입할 수 있도록 최대한 편향되지 않는 시선으로 영상을 담아내는 데 공들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작품성 또한 인정받아 제18회 EIDF에서 시청자 관객상을 받았다. 이어 그는 “수상을 통해 영화를 제작하면서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더욱 진지하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돼 좋았다”고 말했다.

영상이 세상에 미치는 힘에 반해 다큐 제작을 시작한 심 씨. 그는 “다큐를 통해 사회에서 조명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작품을 제작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들의 일상엔 귀기울여야 하는 좋은 메시지들이 담겨 있고, 이를 알리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심 씨는 다큐 시장에 대해 아쉬움도 표했다. “아직 독립 다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투자한 만큼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임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제작 지원을 받은 감독은 사회적인 가치가 있는 다큐를 만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다큐에 대한 제작 지원이 활발해지려면, 독립 다큐 제작자들도 보다 더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단 것이다.

“앞으로도 사회에서 조명받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다큐로 생생히 담아 대중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한 그. 그의 다큐를 통해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길 기대해보자.
 

▲심영화<서강대 아트&테크놀로지학과 16> 씨가 다큐멘터리 촬영에 임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자연 속으로 뛰어들다

▲ 윤순태 감독이 촬영 장비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윤순태 감독이 촬영 장비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자연에는 타협도 약속도 없어. 계속 기다리는 거야.” 한 작품을 위해 촬영만 수개월에서 수년을 해야 하는 자연 다큐의 특성 탓인지 윤순태 감독은 ‘기다림의 미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를 따라 자연 다큐의 매력에 빠져보자.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윤 감독의 사가는 각종 촬영 장비와 전문 서적으로 가득했다.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은 그는 자신을 민물고기 수중 촬영 전문가라 소개하며 말문을 열었다. “어릴 때 「동물의 왕국」을 챙겨보며 ‘나도 저런 걸 촬영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꿈을 키웠어요.”

그는 ‘새미’라는 토종 민물고기의 산란을 최초로 촬영하기도 했다. 대개 물고기가 알을 보호하기 위해 꼬리 지느러미로 모래나 자갈 틈을 수평으로 파는 것에 반해 새미는 수직으로 깊은 틈을 만드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제 작품은 나중에 후배들의 박사 논문 자료로 쓰이기도 했는데, 한국 민물고기 연구에 기여할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윤 감독은 이런 ‘최초’ 기록이 기다림에서 비롯됐다 말한다. 자연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선 오랜 취재가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기다림이 자연 다큐의 매력이라 말했다. “‘특정 시기에 이 섬에 가면 무슨 철새가 관찰되더라’하는 정도의 계획만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늘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장면을 촬영할 수 있어요.” 이렇듯 자연 다큐에선 다양한 변수가 오히려 작품을 빛내곤 한다.

그러나 자연 다큐는 최근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방송사가 지속적으로 제작 비용을 감축해 자연 다큐의 제작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 “후대 양성과 안정적인 작품 제작을 위해 ‘자연다큐제작협회’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어요.”

최근 윤 감독은 생태 학교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마음에서다. “자연에 관심을 갖고 무분별한 생태 파괴를 멈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이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길 바란다.
 


도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하시내<EIDF 인더스트리> 팀장
사진 제공: 황지민<시그널> 회장
심영화<서강대 아트&테크놀로지학과 16>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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