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
과학과 종교
  • 한대신문
  • 승인 2006.11.06
  • 호수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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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는 현대 한국사회의 삶에 각각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영역이다. 우리 삶의 다양한 측면은 과학지식기반사회라는 표현이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좋든 싫든 과학적 지식에 기초하고 있다. 한편 우리 사회는 각 종교단체에서 발표하는 신도의 수를 모두 합하면 전체 인구를 초과할 정도로 ‘종교적’이다. 과학과 종교의 유사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과학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파악하고 우리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종교는 자연세계를 포함한 인간 삶의 여러 측면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의 궁극적 함축을 추구하는 노력이다. 그러므로 과학과 종교 모두 인간을 포함한 자연세계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며 보다 근본적인 원인 혹은 이유를 찾는 작업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과학과 종교는 관심을 갖는 영역이나 추구하는 목표에 있어 상당한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과학과 종교의 공통점보다는 분명히 존재하는 차이점이고 특히 그 차이점이 어떻게 두 영역 사이의 처절한 투쟁의 역사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으로 상징되는 과학과 종교의 대결구도의 이미지는 수업시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학 수업 시간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그것들 사이의 상호관계나 정합성 여부를 따져보는 훈련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수업 중에 일종의 ‘금기’로 간주되는 주제가 있다면 생산적인 철학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최근 내 수업에서는 진화론이 그런 금기에 해당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믿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신봉자가 많다. 기독교가 먼저 널리 퍼진 서양에서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성경에 나온 문장을 글자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일찍이 성서 고증학이 발달하면서 성서의 표현이나 주장을 성서가 저술된 시대적 상황이나 문화적 요인을 고려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폭넓게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는 진화론과 기독교의 교리가 절대적으로 상충한다고 믿는 학생들이 많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절대 금지한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견뎌야 되는 학생도 괴롭겠지만 그런 학생이 난처해하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교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실제로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 혹은 보다 넓게 생각하여 과학과 종교의 관계가 그렇게 극한 대립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중세를 통해 기독교는 과학 발전에 기초를 제공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당시에 교회나 수도원은 지적인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유일한 장소였으므로 지적인 토론과 자연에 대한 이해는 그곳에서만 명맥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과학을 옹호했던 것은 아니었다. 1277년 교황 요한 21세가 당시 파리주교 탕피에르에게 명하여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술을 비롯한 여러 자연철학 관련 저술에서 219개의 잘못된 명제를 찾아내어 금지시켰는데 이는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자연학에 대한 내용이었다. 고대 그리스 과학전통을 이어받아 훌륭한 과학적 성과를 낸 이슬람 문명권에서도 종교적 권위가 과학적 탐구에 우선한다는 제한조건이 결과적으로 이슬람 과학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갈등이 아니라 독립이나 대화 혹은 융합으로 보는 견해도 꾸준히 힘을 얻고 있다. 이 중에서 과학은 자연세계의 인과구조를 탐구하는데 비해 종교는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기에 서로 갈등을 빚을만한 여지가 없다는 독립이론이 가장 폭넚은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과 종교가 서로 상대방의 탐구방식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보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 생산적이라는 대화이론이나 과학과 종교가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모두 포함하는 전 우주에 대한 통합될 수 있다는 융합이론도 여러 방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장회익 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의 온 생명 개념에 기초한 융합이론의 모색이 두드러진다. 과학과 종교에 대해 어떤 이론이 바람직한지는 각자가 결정할 문제겠지만, 필자는 철학 수업시간에서만큼은 우리 학생들이 열린 마음으로 과학과 종교의 다양한 관계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갖기를 바란다.

이상욱< 인문대ㆍ철학 >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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