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체육계를 빛낸, 빛낼 또 다른 이들
대한민국 체육계를 빛낸, 빛낼 또 다른 이들
  • 나태원 기자
  • 승인 2022.05.23
  • 호수 1549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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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딕스키 경기 출발 직전 신의현 선수의 모습이다.
▲ 노르딕스키 경기 출발 직전 신의현 선수의 모습이다.

지난 2월엔 동계올림픽이 개최됐다. 2월 4일부터 2주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대표팀의 소식은 대한민국을 들썩였다. 대회 초반 중국 측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분노했고 황대헌, 최민정 선수의 금메달 획득에 환호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2월 20일 폐막한 동계올림픽. 그러나 축제는 끝나지 않았었다. 곧이어 장애인 올림픽이 열렸기 때문이다. 알파인스키의 최사라, 스노보드의 이제혁 선수 등 설상 경기에서 젊은 선수들이 선전하며 앞으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철인’ 신의현 선수는 노르딕스키에서 총 57.5km를 완주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다.

‘레전드’ 신의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키 선수엔 신의현이 있다. 그는 수많은 스키 종목 중 노르딕스키에 몸담고 있다. 노르딕스키란 설상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사격이 합쳐진 바이애슬론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그는 지난 2016년 노르딕스키에 입문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핀란드에서 열린 장애인 노르딕스키 월드컵에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이후 꾸준히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온 신 선수는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7.5km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우리나라 장애인 동계올림픽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이자 국내 스키 종목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그는 또한 이 대회에서 총 64km를 완주해 ‘철인’이란 수식어도 얻었다. 신 선수는 이 대회들을 “잊을 수 없는 경기”라 평했다. “운동선수는 자신의 첫 메달 획득을 잊지 못합니다. 핀란드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내가 벌써 메달리스트가 됐다니’란 생각에 오히려 어리둥절했던 것 같습니다.” “또 올림픽은 운동선수한테 최고의 무대잖아요. 그곳에서 금메달을, 그것도 우리나라 최초로 획득하니 믿기지가 않아서 허벅지를 꼬집어 볼 정도였습니다.
 

”대학생을 국가대표로 만든 ‘나비효과’ 
그의 삶을 돌아보면, 평범한 대학생 신의현이 가슴에 태극마크를 부착하리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20대 신의현의 꿈은 스포츠완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렸을 때 꿈은 유통업계 사장이 돼 ‘장사꾼’이 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6년 자신의 바람대로 유통업 회사에 취업한 그는 대학교 졸업식을 하루 앞둔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잃게 된다. “사고가 너무 크게 나서 병원에서도 죽는다고 했대요. 수술해도 가망이 없다는 것이죠. 그때 어머니가 ‘그래도 뭐라도 해보자’고 병원에 말해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사고 이후 절망감에 빠져 4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술만 마셨다던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영화 「나비효과」와 농구였다. 신 선수는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같이 휠체어 농구를 해보잔 제안을 받는다. 이미 삶의 의욕을 잃은 지 오래된 그에게 지인의 제안은 귀찮게만 느껴졌다. 그런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나비효과」였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계속 살면 10년 후엔 내가 없겠지?’란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러면서 ‘그래 한 번 해보자’하는 마음에 농구를 접하게 됐죠.”
 

이후 그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탈바꿈한다. 지난 2009년 휠체어 농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농구를 하면서 ‘국가대표’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꿈이 다시 생긴 것이다. 그러나 농구를 통해선 그의 꿈을 이루기 어려웠다. 신 선수는 “농구를 잘하려면 키도 커야 하고, 공을 다루는 감도 좋아야 하는데 나는 그런 부분들이 부족했다”며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서 나에게 맞는 여러 종목을 돌아다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12년 아이스하키, 2014년 사이클을 거쳐 현재 노르딕스키 국가대표로 자리 잡았다. 
 

‘철인’ 신의현, 그의 꿈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신 선수는 올 연말 핀란드에서 열릴 월드컵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해 이를 만회하려는 마음이 크다. 신 선수는 “이번 올림픽 성적이 좋지 않아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전했다. “7년째 선수생활을 하는데 여전히 부족한 게 많습니다. 이번에 체력이나 기술적인 부분을 잘 보완해서 경기 중 발생하는 어떤 변수에도 이겨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 42세로, 선수생활 황혼기에 접어들 나이지만 신 선수는 아직도 꿈이 많다. 사이클 국가대표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 있단 그는 지난 2020년 전국장애인사이클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그는 “노르딕스키랑 사이클을 동시에 하니 체력이 안 돼 결국 도쿄올림픽에 출전하진 못했다”며 “기회가 되면 한 번쯤 사이클 국가대표를 해볼 것”이라 말했다.

그는 최근엔 후배 육성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제 노르딕스키 선수단에서 최고참이 된 만큼 자신의 노하우를 전파해 본인보다 뛰어난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면서 그는 김윤지 선수를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6세인 김 선수는 지난 2월에 열린 전국장애인겨울체육대회에서 노르딕스키 3관왕을 기록하며 신인선수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설상 종목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해요. 제가 그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박문수 선수가 지난 17일 창던지기 경기를 하는 모습이다.
▲ 박문수 선수가 지난 17일 창던지기 경기를 하는 모습이다.

내일의 국가대표들의 무대,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한편, 지난 17일부터 4일간 경북에선 제16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 종목 수는 17개이며, 전국 17개 지자체, 1천425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백광영<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마케팅부> 대리는 “장애인 선수들의 체육 참여 저변을 넓히고, 향후 우리나라 체육계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중요한 대회”라 전했다. 기자가 직접 주개최지인 구미를 방문해 현장 분위기를 담아봤다.

매서운 눈빛, 순수한 표정
대회 첫날 구미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육상 경기. 가장 먼저 열린 시합은 창던지기였다. 전국에서 모인 11명의 선수가 맘껏 자신의 기량을 뽐냈다. 그중 발군은 17세의 충남 대표 박문수 선수였다. 그는 최고 27.92m를 던져 2위를 여유롭게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장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창을 던졌지만 인터뷰에선 순수한 고등학생 소년으로 돌아온 박 선수는 경기 소감을 묻는 질문에 “좋아요”라며 쑥스러워했다. 이어 “초반엔 긴장이 많이 돼서 실수도 했지만 차츰 차분해져 훈련의 성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고 경기 소감을 전했다. 이번 대회 원반던지기에도 참여했던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원반던지기는 연습을 많이 못해 자신이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를 깨고 이틀 뒤 열린 원반던지기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며 자신의 생애 첫 2관왕을 달성했다. “그는 앞으로 열심히 해 기회가 되면 국가대표도 해볼 것”이라 포부를 전했다.
 

비슷한 시각, 트랙에선 남자 고교 지적장애 800m 경기가 열렸다. A선수는 육상 선수가 된지 2달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첫 대회에 동메달을 획득한 만큼 육상에 소질이 있어보이는 그. 하지만 앞으론 그를 육상계에서 못 볼지도 모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성인 선수로 나아갈진 모르겠다”며 “대신 축구를 좋아해 앞으론 축구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말했다.

이튿날엔 남자 중등부 청각장애 포환던지기 경기가 열렸다. 포환던지기는 총 7번 던져 가장 멀리 나온 거리로 순위를 매긴다. 선수들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경기는 유일하게 7m 이상을 던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코치님의 도움을 통해 B선수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번이 첫 번째 대회라는 그는 포환던지기를 시작한 지 겨우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시작했지만 투포환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B선수는 “운동하는 게 재밌어서 앞으로도 포환던지기 선수를 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국가대표도 해보고 싶어요”라 전했다.
 

▲ 800m 달리기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다.
▲ 800m 달리기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다.

디스크골프, 침착한 팀워크
구미장애인파크골프구장에선 다소 생소한 디스크골프 경기가 열렸다. 디스크골프란 원반을 던져 홀 안에 넣는 골프와 유사한 방식의 스포츠다. 이는 △라운딩 △퍼팅 △정확도의 종목으로 나뉜다. 라운딩과 퍼팅은 골프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확도는 홀 쪽으로 원반을 가깝게 던져 점수를 낸다.

디스크골프는 전반적으로 즐기는 분위기가 강한 경기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팀은 정확도 부문의 충북 대표팀이었다. 그들은 16강 부산과의 경기에서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9점 차이로 패배했다. 그러나 그들은 시종일관 활발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충북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노창완<청주해원학교> 교사는 “우리 팀은 만들어진 지 2달밖에 안 됐기 때문에 어찌보면 지는 게 당연한 상황”이라며 “학생들이 답답한 교실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도 풀고, 스포츠가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고 싶어 활발한 팀 분위기를 유지했다”고 전했다. 

충남 대표팀은 첫날 진행된 16강과 8강 경기에서 각각 상대를 큰 점수차로 이기며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희건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욕심부리지 않고 평소 연습한 것을 잘 이행해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우승이 목표라고 전한 충남대표팀은 다음날 경기에서 그들의 목표대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충남 대표팀의 이승우 선수는 “상대팀도 너무 잘해서 긴장이 많이 됐지만 결국 우리가 이겨서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 구미 장애인파크골프구장에서 디스크 골프 경기가 열리고 있다.
▲ 구미 장애인파크골프구장에서 디스크 골프 경기가 열리고 있다.


이 한 몸 다 바친 실내 조정 
구미시 장애인체육관에선 조정 경기가 열렸다. 흔히 조정 경기는 물 위에서 배를 타고 하는 경기를 연상하지만, 이곳에선 조정 선수들이 훈련할 때 사용하는 로잉 머신을 이용해 조정 경기가 열렸다. 김만영<대한장애인조정연맹> 심판위원장은 “실내 조정은 보다 안전히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 설명했다. 실내 조정엔 시각장애인과 지적장애인 선수가 참여했다. 남자 시각장애인 부문 1,000m 대회에선 부산의 최태현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전날 예선 통과 후 인터뷰에서 “금메달이 목표”라 말한 그의 바람이 이뤄졌다. 부산 대표로 나와서 뿌듯하단 그는 “다음엔 팔 힘을 길러서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 지적장애 1,000m 부문에선 광주의 강수빈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한 듯 경기가 끝나고 한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강 선수는 “이기겠단 마음으로 그냥 계속 당기기만 했다”고 전했다. 그는 향후 진로에 대해 “운동 선수로 쭉 가고 싶다”고 답했다.
남자 지적장애 1,000m 경기에선 18세의 광주 출신 김명철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하고 19세 광주 공명진 선수가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전날 나란히 진행한 인터뷰에서 공 선수는 “이전에 많이 우승해봤으니 후배한테 금메달을 양보할 의향이 있다”고 말한 반면 김 선수는 “금메달을 양보할 일은 절대 없다”고 답했는데 말이 씨가 된 순간이었다. 경기 후 이들은 “이번 대회는 최선을 다했으니 만족스럽다”며 “다음 경기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 김명철, 공명진 선수가 실내 조정 남자 1,000m경기 이후 포옹하는 장면이다.
▲ 김명철, 공명진 선수가 실내 조정 남자 1,000m경기 이후 포옹하는 장면이다.

대중들의 관심 밖에서 비장애인 운동선수 못지않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장애인 운동선수들이 있다. 이들의 활약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는 건 어떨까.


도움: 김만영<대한장애인조정연맹> 심판위원장
백광영<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마케팅부> 대리
사진 제공: 신의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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