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성만 써야하나요?
아빠 성만 써야하나요?
  • 박선윤 수습기자
  • 승인 2022.05.23
  • 호수 1549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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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글자 안 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선 안 되는 ‘이름’. 특히 이름에서 ‘성씨’는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이를 두고 지난 10일, 정부는 폐지가 논의되고 있던 민법 제781조 1항을 현상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단 이유에서였다.

해당 조항은 자녀에게 부의 성과 본을 물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일명 ‘부성우선주의’라 일컬어져 왔다. 이는 가정에서 남성의 역할을 과하게 강조하고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긴단 이유로 지난 몇십 년간 수정 수순을 밟아왔다. 김현진<인하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이 조항은 가정의 대를 이을 사람으로 집에 남자가 꼭 필요하단 인식으로 이어져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며 “지난 2005년에 호주제가 폐지된 후 모의 성을 물려줄 수 있게 수정됐지만, 여전히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기엔 어려운 실정”이라 설명했다. 

현재 부성우선주의 원칙의 문제는 절차적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2016년도에 결혼한 김아현<서울시 중구 37> 씨는 “혼인신고서 4번 문항에 자녀의 성을 모의 성으로 따를 것이냔 질문이 있는지도 몰랐어서 남편과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즉,  자녀의 성을 출생신고가 아니라 혼인신고서를 작성할 때 확정 짓도록 돼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자녀계획이 없는 부부도 혼인신고와 동시에 자녀의 성을 정하게 돼 있어 충분히 숙고할 시간을 주지 않는 셈”이라며 “추후 번복할 수 없어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이 문제”라 전했다. 

또한, 다양한 가정 형태를 포용하지 못할 수 있단 문제도 야기되고 있다. 인공수정을 통한 비혼 단독 출산 혹은 비혼 상태에서 아이를 입양한 경우와 같이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라야만 하는 가족 형태가 생겨나는 가운데, 부성우선주의는 이를 비정상적인 가정으로 생각하게 만든단 것이다. 김지학<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특정 성을 우선으로 따르도록 규정하는 건 그렇지 않은 경우를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해 차별적 시선을 낳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부성우선주의가 잔존해있는 상황이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이를 폐지하거나 대안을 모색한 사례가 다양하다. 프랑스의 경우 자녀의 출생신고 시 별도의 서류 절차 없이도 성씨를 정할 수 있다. 만약 합의가 없다면 알파벳 순서대로 부모 성을 병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부성주의 원칙은 폐기된 지 수십 년이 지나 허물어진 지 오래다.

현재 정부에서 수정 계획을 중단한 상태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성주의 원칙은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점차 가족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고 부성우선주의를 향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여성가족부에서 불특정다수 3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민다양성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73.1%는 부성우선주의는 불합리하다고 답했다. 이는 3년 전 결과보다 약 8% 향상된 수치다. 김 소장은 “부성우선주의가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를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충분히 해당 논의를 재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보다 자유롭게 어머니의 성·본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성씨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보자. 


도움: 이다영 기자 wliye@hanyang.ac.kr
김지학<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현진<인하대 법학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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