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환 시대의 한반도
대변환 시대의 한반도
  • 김동현 기자
  • 승인 2022.05.09
  • 호수 1548
  •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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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코로나19로 각국 간 인적 교류는 전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얽히고설킨 국가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제정세’는 하루가 달리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기자는 올해 초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에서 연수를 받았다. 이를 통해 깨달은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한반도’는 ‘대변환의 시대’를 맞이했단 것이다. 즉, 세계의 외교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는 향후 반세기 간 점차 그 형태를 잡아갈 것이다.
내일(10일)로 우리나라에선 새 정부가 출범한다. 그러나 정부 출범의 기쁨도 잠시, 새 정부가 맞닥뜨릴 외교의 길은 험준해 보이기만 하다.

대변환의 시대, 그 한가운데 선 한반도
우리나라는 올해로 미국과 수교를 맺은 지 140년이 됐다. 우리나라가 서양과 최초로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외교는 언제나 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이는 우리가 겪어온 현대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 같은 혼란은 최근 몇 년을 기점으로 더욱 심상치 않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신(新)냉전’이라 이른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이 날로 심화하는 와중 지난 2월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정세에 혼란을 더했다. 박인휘<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 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과거 냉전기에 겪었던 수준의 강대국 대결이 다시 전개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전쟁 행보는 북중러 삼국 간 협력의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3월 UN의 ‘러시아 규탄 결의안’ 채택에 반대표를 던졌으며, 중국 역시 기권을 택했다. 게다가 미국은 이에 맞서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경제적 지원을 할 경우 전방위적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연일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혼란한 국제정세 속 우리나라의 외교적 행보는 국가이익과 직결되기에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이는 한반도가 국제성이 매우 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단극 패권 체제 와해로 촉발된 외교적 사건들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안보이익에 대한 위협까지도 증대시켰다. 한국국제정치학회 제65대 회장을 지낸 전재성<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는 위협적인 국제안보와 경제 환경 속에서 국익과 가치를 병행하여 증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답했다.

심화하는 미중 신(新)냉전
지난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며 막을 내린 냉전체제가 오늘날 다시 등장했다는 말이 숱하게 오르내린다. 앞서 언급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양국은 지난 10여 년간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같은 ‘제도적 갈등’에서부터 화웨이 스캔들로 드러난 ‘플랫폼 경쟁’까지 다방면에서 크고 작은 충돌을 이어 왔다. 그리고 이는 “드넓은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국을 수용하기에 충분하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신냉전은 우리나라에서 역시 가장 어려운 외교적 과제로 작용한다. 박 차기 회장은 “우리나라는 이 두 국가 간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국운이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지난 2016년 우리나라는 미중 양국의 가치가 충돌한 사드(THAAD) 사태를 겪으며 국가 GDP의 0.5%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전략적 모호성’이란 외교 전략을 구사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다소 어정쩡한 외교적 입장을 취해오고 있다. 이는 한중 무역 규모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두 강대국의 절대적 협조가 필요하단 점을 고려했을 때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이런 자세로 우리나라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순 없어 보인다. 이어서 박 차기 회장은 “미중 사이에서 아무리 균형 외교를 해도 미국과 중국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절실히 깨닫게 됐다”고 답했다. 전략적 모호성이 결국엔 우리나라의 국익 증대에 이렇다 할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향후 30년간 현재와 같은 미중대결 구도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이제 우리에겐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만 같다.

“무너진 한미관계를 다시 세워라”
일각에선 이 같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버리고 우리의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다시 세워야 한단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물론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도 한미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대미정책엔 남북 화해만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외교부 북미국 자문위원장인 김재천<서강대 국제대학원> 원장은 “문재인 정부 외교의 ‘최우선 원칙’은 ‘남북 화해’였다”며 “그러다 보니 한미 외교 역시 북한이라는 블랙홀에 함몰되고 말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임기 말 ‘종전선언’만을 위한 대미 외교를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 초기의 남북은 상호간의 신뢰 속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도 잠시뿐이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로 인한 남북관계 경색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까지 북한은 지속적인 도발을 단행했다. 실제로 올해 초부터 북한은 수차례에 걸쳐 미사일 실험을 추진했고, 심지어 대통령 선거 전후에도 보란 듯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했다. 전 교수는 “앞으로 상당 기간 남북관계의 정체는 불가피할 것”이라며 “북한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해선 한미 양국이 긴밀한 정책적 공조를 펼쳐야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당장으로선, 한반도 비핵화 문제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화해 원칙에 입각한 대미 외교는 결국 그 어떤 진전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다.
이에 김 원장은 “새로이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한국 외교안보의 최우선 원칙을 다시 정립하고, 정책의 위계를 재조정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이제 북한이란 아젠다를 넘어 ‘자유주의 국제 질서’ 수호에 앞장설 필요가 있단 주장을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박 차기회장 역시 “보수정권으로서 새 정부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관계를 재정립하여, 이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 전했다.

 

▲ 지난해 5월 백악관에서 만난 한미 정상의 모습이다.
▲ 지난해 5월 백악관에서 만난 한미 정상의 모습이다.

 

▲ 지난 27일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기념달 열병식에 동원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북한은 지난 4일에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연일 도발을 일삼고 있다.
▲ 지난 27일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기념달 열병식에 동원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북한은 지난 4일에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연일 도발을 일삼고 있다.

“중국을 다시 이해할 필요 있어”
한편 미국 위주의 국제질서에 편승해야 한다는 주장과 달리, 중국을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단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이는 새 정부가 한미동맹 재건을 최우선 외교과제로 선정한 데에 대한 우려라 할 수 있다. 이동률<동아시아연구원(EAI) 중국연구센터> 소장은 “새 정부가 직면한 한미동맹 강화라는 외교과제는 한반도 외교에 있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수 있다”며 “예컨대 집권 초기부터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우리로선 큰 외교 부담”이라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갈등을 해결할 그 어떤 정책적 대안도 아직까지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할 여지를 남긴다. 그는 “수교 30년을 맞이한 한중관계는 다양한 난제에 직면해 있고 언제든 갈등이 재연될 개연성이 내재돼 있다”며 “그러나 이 같은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지난 2016년 사드 갈등 이후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한미동맹 강화의 일변도 외교정책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김양규<동아시아연구원(EAI) 연구기획총괄팀> 사무국장은 “한미동맹이 한국 안보정책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이것이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모두 응하며 한미관계 강화에 올인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머지않아 중국의 국력이 미국의 80%가량 이르게 되는 시점이 오면 우리나라는 궁극적으로 중국을 선택해야 할지 모른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이런 맥락에서 중국이 보기에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에만 전념하고 있음이 확실해 보이는 행보는 자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전했다. 대북정책 역시 북한 단독이 아닌 대미, 대중정책을 묶는 하나의 대전략 속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김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도 최우선 과제로 …
한편 문재인 정부 5년간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던 한일관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이후 파국으로 치닫은 양국관계는 지난 2019년 일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 반도체 산업 주요 품목 수출규제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났다. 설상가상 양국은 그 이후 이렇다할 관계 개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사무국장은 “국민 정서 차원에서 한일관계는 풀어가야 할 과거사 문제가 있다”며 “이를 풀기 위해서라도 한일이 다시 테이블에 마주 앉아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 전했다. 덧붙여 미국이 최근 한미일 협력 강화를 외교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점에서 우리의 의사와는 관련 없이 한일관계 정상화는 예정된 수순처럼 보인다. 김 사무국장은 “최근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삼국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며 “새 정부가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한일관계 정상화 압박을 우리나라가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답했다.

대변환의 한반도, 우리의 역할은?
대변환의 시대, 더 이상 외교는 외교관(官: 벼슬 관)만의 전유물이라 할 수 없다. 우리 오천만 국민 한 명 한 명이 모두 우리 외교의 당사자다. 국제정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자국의 이익’임을 부정할 자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국민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외교관(觀: 볼 관)을 확고히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또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박 차기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생들은 외교안보 문제에 있어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해야 한다”며 “기성 정치인들이 간혹 외교안보 이슈를 국내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바로 잡는데도 대학생들이 앞장서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도움: 김양규<동아시아연구원(EAI) 
연구기획총괄> 사무국장
김재천<서강대 국제대학원> 원장
박인휘<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 회장
이동률<동아시아연구원(EAI) 중국연구센터> 소장
전재성<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사진출처: 대한민국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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