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오늘]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삶의 흔적을 책 속에 담다
[그때의 오늘]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삶의 흔적을 책 속에 담다
  • 나병준 기자
  • 승인 2022.05.02
  • 호수 1547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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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5월 5일,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인 소설가 박경리가 향년 8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녀의 죽음으로 문학계는 “한국 문학계의 큰 기둥이 사라졌다”며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 오는 5일은 그녀가 타계한 지 14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번 시간엔 한국 문학사에 있어 그녀가 남기고 간 족적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토지」: 혼신을 다한 노력의 산물
지난 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는 단편소설 「계산」으로 문단에 들어섰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작품화하는 정도의 소설밖에 쓰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평가절하 당하기도 했다. 이는 그녀로 하여금 엄청난 분량의 장·단편 소설을 집필하면서 필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문학을 향한 26년간의 집념의 결과, 마침내 지난 1994년 소설 「토지」라는 걸출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현대문학에서 이렇다 할 대하소설이 나오지 않는 지금, 이태희<인천대 기초 교육원> 교수와 조윤아<가톨릭대 학부대학> 교수는 “「토지」가 지닌 방대한 스케일과 디테일한 형상화에 맞먹는 작품은 쉽사리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박경리 문학의 탁월함은 「토지」에 있다”며 “우리 민족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루면서도 구체적인 인물 형상화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 역시 “그녀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위대한 작품을 쓰고자 했던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며 “「토지」는 그녀의 결심과 노력의 결과”라 전했다.

박경리 문학은 지금도 살아 숨 쉰다
비록 그녀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녀의 삶과 작품은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적이면 서 보편적인 세계관을 확보한 박경리는 후배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면서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볼 수 있는 자연 존중과 생명사상의 경우 박경리 문학의 생명사상과 밀접하다”고 답했다. 조 교수 역시 “그녀의 영향력은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실천하는 행동을 보 여준 삶의 자세에 있다”며 그녀의 위대함을 풀어냈다.

「토지」의 배경이 된 강원도 원주에선 소설가 박경리를 기리는 다양한 장소와 행사 를 찾아볼 수 있다. 그녀가 마지막 생애까지 살았던 공간을 중심으로 조성된 박경리 뮤지엄에선 이달부터 ‘토지극장’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그녀의 작품을 영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그녀가 설립한 토지문화재단에선 지난 2011년부터 개최한 ‘박경리 문학상’을 통해 그녀의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박경리 작가 독서 챌린지’를 운영하면서 더 많은 이들이 그녀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박경리 뮤지엄의 모습이다.
▲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박경리 뮤지엄의 모습이다.

이 교수는 “박경리 문학에선 ‘시’를 빼놓을 수 없다”며 “소설과 달리 시는 개인의 일상과 가족사를 진솔하면서도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어 박경리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조 교수 역시 “「토지」는 문체나 호흡, 기법이 고전적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익숙지 않을 수 있다”며 「토지」를 만화로 본 후 소설에 도전해볼 것을 권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 모두 잠시나마 그녀의 문학 세계에 침잠해보는 것은 어떨까.


도움: 이태희<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
조윤아<가톨릭대 학부대학> 교수
사진 제공: 토지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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