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장벽이 없어질 때까지
우리 사이 장벽이 없어질 때까지
  • 나태원 기자
  • 승인 2022.05.02
  • 호수 1547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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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없는 영화와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카페 입구의 낮은 턱. 비장애인이 일상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은 장애인에겐 삶을 방해하는 장벽이 된다. 장애인은 이런 사소한 것들로 인해 비장애인이 당연히 누리는 권리에 다가가지 못한다. 이에 최근엔 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이른바 배리어프리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배리어프리란?
배리어프리란 장벽을 뜻하는 영단어 배리어(barrier)와 자유를 의미하는 프리(free)의 합성어로, 사회적 약자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없애기 위한 정책이나 사회 운동을 말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휠체어로 이동할 수 없는 계단과 건물 입구 턱 없애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서동명<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배리어프리는 일상 속 장벽을 없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라 설명했다. 

대학 사회, 발 벗고 나서다
대학 사회에서 배리어프리를 확산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서울캠퍼스 연극 중앙동아리 ‘들꽃’에선 배리어프리 연극을 공연한 바 있다. 이들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등을 마련해 총 3개의 공연을 유튜브에 업로드 했다. 당시 배리어프리 연극 제작 총괄을 맡았던 허승우<사회대 관광학부 18> 씨는 “동아리방이 한양플라자 5층에 있는데 그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어 올라갈 때마다 짜증을 내다 문득 ‘다리가 불편한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도 못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어 배리어프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공연 후 장애 학생들에게 고맙단 말을 많이 들었다는 그는 차후에도 배리어프리 연극을 진행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 연극 동아리 ‘들꽃’이 청각장애인을 위해 공연 영상에 자막을 넣은 모습이다.
▲ 연극 동아리 ‘들꽃’이 청각장애인을 위해 공연 영상에 자막을 넣은 모습이다.

지난해 서울대에선 학내 단체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서배공)’이 서울대 상권 내 휠체어 진입이 가능한 가게 정보를 모은 배리어프리 맵 제작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들은 학교 근처 8백여 가게를 직접 조사해 입구 경사로 유무와 각도 등의 정보를 지도에 기재했다. 또한 서배공은 입구 턱이 높은 32곳에 경사로를 설치하기도 했다. 서배공 대표 김지우<서울대 사회학과 20> 씨는 “장애인 학우들이 모임 장소 선정에 부담을 느끼고 가게 앞에 높인 계단 때문에 돌아가는 일도 종종 발생해 해당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며 “장애인 학우들이 가고 싶은 장소에 맘껏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서배공의 최종 목표”라 밝혔다. 

맘 편히 향유하고 제작하고
 

▲ 장애인 극단 ‘휠’이 제작 지원을 받고 공연한 연극 「귀를 기울이면」의 모습이다.
▲ 장애인 극단 ‘휠’이 제작 지원을 받고 공연한 연극 「귀를 기울이면」의 모습이다.


여러 기업에서도 배리어프리의 물결이 일고 있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은 전체의 약 0.02%에 불과해 상당히 저조한 수치였다. 이에 몇몇 기업은 배리어프리 영화를 보다 상용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맞춤 어플이나 기기를 제작하고 있다. 시·청각장애인이 영화를 보기 위해선 화면해설이나 자막이 필요한데, 이는 자칫 타인의 영화 관람을 방해할 수 있어 각자 필요한 수단을 취하면서 영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든 것이다. 맞춤 어플 제작에 참여한 서재두<액세스ICT> 부장은 “시·청각장애인 관객들이 가족, 친구와 분리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지원받아 영화를 보는 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선 이런 시스템이 의무화 돼 장애인 영화 관람의 질을 높이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이 정착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공연예술가를 위한 지원사업도 많아지는 추세다. 지자체,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등 공공기관은 △공연 예술 연구비 △전문 인력 육성 △제작비에 대한 지원을 펼치고 있다. 장애인 연극배우로 활동 중인 이승규<휠> 부단장은 “무대에 올라갈 기회도 보다 많이 얻을 수 있고 공연 준비 과정에서 비용도 절감돼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장애인 극단이 공연할 수 있는 극장 시설 보완에 대한 지원도 이뤄지면 좋을 것”이라 덧붙였다.

배리어프리, 배려가 아닌 권리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배리어프리 활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장애인들은 일상에서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 김 씨는 “마땅히 법으로 보장돼야하는 것도 장애인은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는 장애인 정책에 대해 ‘내가 장애인을 배려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배려가 아닌 그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장벽이 없어지기 위해선 사회 전반적인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한 것일 뿐이다. 물리적인 배리어프리를 넘어 인식 차원의 배리어프리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도움:서동명<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서재두<액세스ICT> 부장
이승규<휠> 부단장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들꽃’ 캡처
사진 제공: 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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