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장산곶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 임윤지 편집국장
  • 승인 2022.05.02
  • 호수 1547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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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지<편집국장>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이틀째 파행을 거듭하며 결국 법정 기한을 넘겼다. 민주당은 한 후보자가 의혹과 관련된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기에 청문회를 여는 게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자료 요구는 너무도 비상식적이며 새 정부 발목 잡기”라며 민주당을 탓했다.

그런데 이 대화, 얼핏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하다. “후보자의 도덕성, 공직 적합성을 검증할 주요 자료조차 제출하지 않는 건 인사청문을 받는 후보자의 자세라 할 수 없다.” 민주당의 주장인 것 같지만 놀랍게도 지난 2019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이낙연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측에서 내세운 주장이다. 그때도 민주당은 똑같이 “누가 봐도 이건 새 정부 발목 잡기”라 비난했다. 이처럼 여야 간 상황이 바뀌면 정당들이 주고받는 공수의 언어는 매번 입장만 바뀔 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고질적 문제로, 인사청문이 열리는 때에는 그 문제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 자녀 입시 비리 등 대동소이한 내용의 의혹일지라도, 야당일 때는 일단 후보자를 흠집 내기에 급급하고 여당일 때는 어떻게든 후보자의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본다. 제기되는 의혹은 반복되고 똑같은 데 반해 이를 검증하는 잣대는 자신들이 속한 정당이 여당인지 야당인지에 따라 너무나도 다르게 적용되는 실정이다.

매번 이렇게 흘러가는 인사청문회의 결말은 안 봐도 뻔하다. 거대 정당끼리 서로 목소리만 키우고 공방만 벌이다가 어영부영 잡음 많은 내각이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 없이도 임명할 수 있는 장관들의 경우 인사청문 과정을 성실히 거치지 않은 채로 임명이 강행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이는 과거 정부에서도 우리가 숱하게 경험해본 일이기도 하다.

2000년에 도입된 인사청문회 제도는 ‘국회가 고위 공직 후보자의 업무 수행 능력과 자질, 도덕성 등을 검증함으로써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 행사를 견제’하기 위한 취지에서 생겨났다. 그런데도 보다 철저하고 공정한 인사 검증을 하기는커녕 여야 의원들은 공익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제도 취지를 훼손시켰다.

인사청문회가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검증의 과정이 아니라 서로 편 가르고, 정쟁의 장으로 전락한 데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일뿐더러 결국 국민들의 정치 불신도 커지기 마련이다. 국민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고 미래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 공직자로서의 윤리와 자질은 물론 정책에 대한 전문성과 비전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혹만 덕지덕지 달린 장관들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신뢰를 얻지 못한 장관은 능력과 상관없이 그저 무능할 뿐이다. 

청문(聽聞). ‘듣고 묻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청문회란 서로 면박주고 고성이 오가라고 모이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내실을 담보하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일 테다.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여야 구분 없이 적용할 동일한 검증 잣대를 두어, 인사청문회가 여야의 당리당략이 아닌 상식과 합리가 작동하는 검증의 장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내로남불식 인사청문회도 이젠 그만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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