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언 (Wangsimnian), 한양시장에 가다!
왕십리언 (Wangsimnian), 한양시장에 가다!
  • 김유선 기자, 이예빈 수습기자
  • 승인 2022.05.02
  • 호수 1547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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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언’은 왕십리에 자리 잡고 있는 한양대의 지명을 일컬어 학생들이 자신들을 부르는 옛 호칭이다. 기자는 왕십리언이 돼 한양대 앞의 한양시장을 알아보고자 한다.

 

한양시장이 뭐예요?
서울캠 학생들에게 한양시장은 다소 모호한 공간이다. 어디인지 정확하게 아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그런 곳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입학 후 대면 학사를 만끽하는 22학번 새내기에게 한양시장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차형규<인문대 영어영문학과 22> 씨는 “왕십리에 자주 가서 동기들과 어울려 놀지만 전혀 모른다”며 “우리 학교 앞에 그런 곳이 있었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한양시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에 기자는 한양시장을 직접 찾아 나섰다. 학교가 위치한 ‘왕십리로’에서 ‘마조로’로 접어들자 도로에서 ‘한양대 앞 상점가’라고 적힌 팻말을 찾을 수 있었다. 한양대의 상징인 사자가 붙어 ‘사자마조’라고 적힌 문구 아래, 한양대 앞 상점가의 지도가 보였다.

 

▲ 마조로에 위치한 한양대 앞 상점가 팻말이다.

 

▲ 한양대 앞 상점가 팻말에 있는 지도를 통해 한양시장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지도를 확인한 후 한양시장으로 들어섰다. 달걀노른자처럼 생긴 한양시장에 들어가는 방법은 다양했다. 한양시장을 둘러싼 건물들 사이 골목골목이 모두 한양시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양시장으로 들어서자 내부의 건물들이 보였다. △더 구공탄 △육지고기 △이모네 생고기 등 고깃집이 즐비한 이곳이 바로 한양시장이다.

 

▲ 기자가 이른 오후 시간 찾은 한적했던 한양시장의 모습이다.

 

“내가 아는 한양시장은…”
한양시장은 언제부터 ‘옛 구(舊)’가 붙어 고깃집밖에 남아있지 않은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됐을까. 한양시장의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 학교 동문과 사근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주민의 증언을 들어봤다.


이항선<연극영화과 89> 동문
한양시장에 관해 묻자 이 동문은 “한양시장은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기자가 한양시장의 위치를 설명하자 그는 “그곳은 한양시장이 아니라 사근시장으로 불렸다”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한양시장이라고 불리던 곳은 제가 학교를 다녔던 8~90년대 초 사근시장이라 불리던 곳입니다. 그땐 동네 시장의 모습이었는데, 할머님들께서 시장에 나와 나물 같은 걸 소쿠리에 담아 팔곤 하셨죠.” “당시 학생들은 점심에 가판에서 파는 떡볶이나 순대 등 분식을 먹으러 갔었고 저녁엔 막걸리, 소주를 파는 주점에 가서 끼니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곽소영<철학과 15> 동문
기자가 한양시장을 기억하냐 묻자 곽 동문은 “식사나 회식을 위해 많이 찾던 공간이었다”며 “특히나 학과나 동아리 회식을 위해 한양시장의 고깃집을 즐겨 찾았다”고 설명했다. 다른 점포도 많지만 학생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에 대해 그녀는 “학과 혹은 동아리 회식은 단체로 가기 때문에 왁자지껄하고 시끄러운 경우가 다반사인데, 한양시장의 고깃집은 넓은 공터에 테이블을 차리고 노상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가게 사장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떠들며 놀 수 있었고 2~30명 정도가 모이게 되는 회식에 딱 맞는 규모였단 점도 좋았다”고 답했다. 곽 동문은 “여름밤에 노상 테이블에서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즐길 수 있었던 게 한양시장만의 매력”이라 전했다. 고깃집 주변으로 위치한 밥집의 수요도 많았다고 전했다. “한양시장의 오래된 분식집에 자주 점심을 하러 갔는데, 떡볶이나 순대 어묵을 파는 게 아니라 1개에 3, 4천 원 저렴하게 알밥 등 식사류를 팔던 가게가 있었어요. 오래된 밥집은 수요가 많았죠.”


김혜경<왕십리토박이부동산> 대표
기자는 동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양시장의 옛 모습을 또렷이 그려 보고 싶었다. 이에 이곳에서 나고 자란 김 대표를 찾아가 한양시장의 옛 모습은 어떠했으며,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물어봤다. 김 대표 역시 “예전엔 사근시장이라 불렀다”고 답하며 종이에 지도를 그려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네모 안에 또 다른 네모를 작게 그리더니, 큰 네모를 가리키며 “사근시장은 크게 시장의 네 면을 둘러싸고 다양한 점포가 위치했다”고 설명했다. “도배가게나 생선가게 등 여러 가게가 즐비했다”며 말을 이어 나간 김 대표는 “물론 점포가 있는 곳엔 한양대 학생들이 자주 가는 막걸릿집, 소줏집이 있어 학생들이 자주 오갔다”고 전했다. 이어서 작은 네모를 가리킨 그녀는 “이곳은 작은 가판대가 모여 있어 떡볶이나 순대 등 분식을 판매했다”며 학창 시절 당시 이곳에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 먹던 모습을 떠올렸다. 사근시장이 온전한 시장의 모습을 하고 있던 20세기 말, 1980년대와 1990년대 무렵의 일이다.

 

▲ 김 대표가 그려준 한양시장 도식이다. 바깥쪽 네모의 위치엔 점포가 위치해 있고, 안쪽 네모엔 가판대가 위치해 있다.


사근시장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 건 한창 대학생들이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으로 어수선해진 동네를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하면서다. 김 대표는 “당시 한양대가 서울권 대학 중 데모를 강하게 하기로 유명했어요.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데모하다 보니 온 마을에 최루탄 가루가 날리기 부지기수였고 마을이 어수선해지다 보니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씩 이사를 가기 시작했어요. 덩달아 사근시장의 상인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뺐죠.”


그렇게 공터가 된 사근시장에 다시 상인들이 들어와 장사를 시작한 건 2000년대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재개발 논의가 끊이지 않았던 사근시장 터는 부지를 가진 주인들이 땅에 건물을 세우며 형성됐다. 현재 우리가 알고 부르는 한양시장의 모습은 이때 만들어졌다. 건물에 새로 들어선 가게는 학생들을 상대로 값싼 고기를 팔았고, 한양시장은 늘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찾는 학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양시장은
기자는 사전 조사 중 지난 2012년 한양시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발견했다. 첫 번째 사진을 보면 다른 건물에 비해 우뚝 선 건물이 보인다. 왕십리역으로 가는 길, 족발 가게가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을 기준 삼아 같은 장소를 찾아 나섰다. 우리 학교 동문회관 건너편에 있는 ‘한양약국’의 모퉁이를 돌자 사진 속 건물이 보이는 거리가 나타났다. 곧이어 옛 사진에 보이는 정육점의 간판 또한 볼 수 있었다. 10년 전 사진과 비교해 그대로인 가게가 있는 반면 아닌 가게도 있었다. 사진 속 ‘대원정육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했고, 미용실이 있던 자리엔 음식점이 새로 자리를 꿰찬 모습이었다. 사진 속 멀리 노란색 메뉴판을 세워두었던 ‘소나무식당’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현재는 노란색에서 하얀색으로 그 색을 달리해 메뉴판을 세워 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지난 2012년 촬영된 한양시장의 모습이다.
▲ 지난달 26일 기자가 직접 촬영한 시장의 모습이다.

 

발걸음을 옮겨 다른 사진이 촬영된 두 번째 장소로 이동했다. 옛 사진 속 초록색 둥근 간판에 김치찌개로 유명한 ‘장어구이’가 적혀 있는 모습으로 장소를 유추할 수 있었다. 대원정육점이 있는 거리에서 조금 전진하자 우측에서 장어구이 별관을 발견했다. 이곳은 현재도 많은 학우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가게를 확장한 듯 보였다. 주변을 더 어슬렁거리다 발견한 초록 천막이 있는 골목. 그렇게 초록 천막을 쫓아 가보니 멀리 장어구이의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변함없이 둥근 간판에 초록빛이 나오고 있었다. 장어구이는 10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서 여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어구이를 제외하곤 그 경관이 많이 변했다. 노란색 간판을 달고 있던 충남기름집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프랜차이즈 주점이 들어섰다. 빨간 대야에 담긴 마늘을 물레에 빻아 팔던 방앗간도 종적을 감췄다. 대신 주점이 생겼다.

 

▲ 지난 2012년 촬영된 한양시장, 사진 중간에 장어구이가 있다.

 

▲ 지난달 26일 기자가 직접 촬영한 시장의 모습이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한양대생을 반기는 한양시장
늦은 시간에도 한양시장을 찾는 학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저녁 식사를 고기로 배불리 채우고 닭강정 한 컵을 사서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물론 한양시장에 있던 가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생기고 사라지며 생멸의 고리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한양시장은 수십 년이 넘게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학생들을 반겼다. 이제 코로나19의 시대가 지나가고 다시 대학가가 청춘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풍파가 있을지언정 한결같이 학생들의 곁을 지킨 한양시장이 더 오랜 시간 학생들 곁에 머무를 수 있길 바란다.

 

▲ 늦은 밤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한양시장 앞길의 모습이다.

 


도움: 김혜경<왕십리토박이부동산> 대표
사진 출처: 두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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