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항변(抗辯)
[취재일기] 항변(抗辯)
  • 김유선 기자
  • 승인 2022.05.02
  • 호수 1547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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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선<사진·미디어부> 정기자

 

먼저 고백할 사실이 있다. 사실 한대신문으로부터 도망친 적이 있다. 말이 도망이지 사실 중도 포기다. 아직도 지난해의 여름이 기억난다. 필자는 갓 수습 딱지를 뗀 대학보도부의 기자였다. 생애 가장 치열했고 그만큼 온몸에 화상을 입었던 날들이었다. 메모장엔 지난해 8월 6일에 작성한 글 하나가 있다. ‘학보사는 어렵다’로 시작하는 이 글의 중간에선 “내가 언젠가 ‘문제를 생각하는 내가 문제’란 말을 한 적이 있다. 문제를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데, 문제를 마주한 내가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리가 있나. 매주 내가 공격해야 할 사람을 마주한다. 늘 문제와 함께한다. 감정의 소모는 둘째 치고, 문제를 골몰히 생각하면 사람이 피폐해진다.”고 말한다. 어느 하루는 답답하고 어지러운 마음에 무작정 기숙사 앞을 지나는 4211번 버스를 탔다. 정신을 차려보니 종점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다. 멍하니 내리는 소낙비를 보고 있자니 갈피를 잃은 느낌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새내기가 대학보도부 기사를 쓰기엔 대학에 대해 아는 게 너무 부족했다. 실은 코로나 학번 새내기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인간 ‘김유선’이 아는 게 없었다. 한대신문에서 비대면 시국 속 대학의 ‘대안적 공론장’을 만들겠단 입사 포부는 그저 헛된 이상이자 포부였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기획안 마감일은 밀어닥쳤고, 필자는 무엇이라도 찾아 작성해야만 했다. 새내기였던 필자는 아는 게 없고, 두려움도 많았지만 또 무서운 것도 없었다. 그렇게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무작정 아무에게나 연락을 돌렸다.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전화를 걸 패기가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그 누구보다 상냥한 말투로 인터뷰이를 못살게 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면 무수한 죄책감에 휩싸이곤 했다. ‘이거 다 사람 살기 좋아지라고 하는 일인데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내게 이렇게 시달리고, 난 왜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해야 할까’ 그렇게 온갖 질문에 휩싸일 동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원인에 대해선 스스로 알고 있었으나 해결할 수 없었다. 아는 게 없었던 필자는 기사를 쓰기 위해선 계속 다른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사건(event)을 아는 것은 무용했고, 사건(incident)을 알아야 했다. 결국 무수한 고민 끝에 한대신문을 그만뒀다.

그런데도 돌아왔다. 정확하겐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무슨 낯짝으로 돌아온 거냐’ 물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필자가 알고 있는 대학 사람들은 한대신문 사람들이었고, 진정으로 마음에 담았던 사람들 또한 한대신문 사람들이었다. 밤샘 작업에 힘들고 지쳐도 서로 따뜻한 응원의 말을 전하던 그 사무실이 그리웠다. 한대신문은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 모여 있는 곳이고, 필자는 생각보다 한대신문을 더 애정했기에 돌아왔다. 여덟 지면에 실린 한대신문의 기사들은 독자들에게 있어 절체된 문체로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필자는 총 8면의 지면에 한대신문의 온기가 더 돋보일 수 있도록 힘찬 붓줄기를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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