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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휘경 기자
  • 승인 2022.04.11
  • 호수 1546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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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휘경<대학보도부> 부장

‘사람 인(人)’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모양새를 그린 것이란 이야기는 듣기 지겨울 정도다. 하지만 실제로 우린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삶을 채워나간다. 어떤 울타리 안에서만큼은.

지난 여름, 더운 지하철 공기를 마시며 새벽반 영어 학원에 다녔다. 첫 시간은 리딩 수업. 지문을 읽어주시던 선생님이 ‘manifest’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man이 인간인데, 인간은 무조건 보이잖아. 여기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고, 없는데 있다고 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나타나다’란 뜻이지.” 

설명이 그다지 납득되지도 않았고, 내 머릿속 manifest는 개발할 때 숱하게 봐 온 자동생성 파일명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대충 끄덕였다. 그리고 강남역으로 돌아가는 길, 필자는 저 멀리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돈을 구걸하는 노숙인을 보게 됐다.

그를 가운데 두고 수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지나갔다.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혹은 보여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스쳐 갔다. 어떤 이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그 앞에 놓인 상자에 집어넣었을 때야 필자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이어갔다.

선생님 말씀은 틀렸다. 세상엔 분명 있는데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많다. 거리에 나앉거나 떠도는 사람들, 누구의 돌봄도 없이 자란 사람들, 경계 바깥의 사람들. 필자가 따뜻한 집에 앉아 타자를 두들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의 시선에 전혀 걸쳐지지 못한 채 싸늘하게 웅크린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이들을 끌어안을 울타리는 없다. 

지난 2020년 방배동에선 자폐증을 가진 아들을 홀로 돌보다 죽음을 맞이한 채 몇 개월 간 방치됐던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또, 우리나라는 매해 가출 청소년이 몇만 명씩 집계된다. 최근 지하철 시위로 이슈가 됐던, 외출할 때마다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하루를 버텨내는 교통 약자도 다수다. 그림자에 가려 광장에 등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수도 없이 많다. 

환대가 부재한 세상이다. 세상은 날 때부터 큰 목소리에만 주목한다. 그래서 방치해 둔 채 조용했던 목소리가 꿈틀거리면, 귀찮아한다. 시끄러워한다. 어차피 나 하나 불편하게 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소시민적 태도로 일관한다. 자신이 밝은 세상에 사는 건, 이들이 그림자에 가려진 건 전혀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우리는 우리가 어떤 땅을 밟고 어떤 하늘 아래 살아가는지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건 자신의 육체만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점점 그늘의 경계가 또렷해지고 있다. 여럿의 30분이 한 인간의 삶 전체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겨진다. 인간은 어느 시간, 어떤 장소에서 한순간에 그 경계선 위에 설지도, 바깥으로 튕겨 나갈지도 모른다. 사방치기 게임이 끝나면 발로 모래를 흩뜨려 선들을 허물 듯이, 누군가를 끊임없이 ‘없음’으로 몰아가는 경계를 지금 무너뜨려야 한다. 인간으로서 세상의 무대에 나타날 권리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그 사회의 표정을 만든다. 사막이 늘고 있다. 물을 길러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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