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 유승협 과장을 만나다
기상청 사람, 유승협 과장을 만나다
  • 김유선 기자
  • 승인 2022.04.11
  • 호수 1546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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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협<기상청> 과장

 

 

최근 인기리에 방영을 마친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실제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리 학교 동문이 있다. 바로 본교 지구해양과학과를 졸업한 유승협<기상청 지진화산국 지진화산정책과> 과장이다. 세계기상기구(이하 WMO)에서 해양기상 및 해양서비스 상설위원회 부의장직을 지내고 있는 그. 유 과장은 지난 2005년, 기상연구사로 처음 국립기상연구소에 몸담아 기상청 해양기상과 기상사무관직과 과장직을 지냈다. 현재는 지진화산정책과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자아낸 그와의 인터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년과 바다
지난 1991년 본교 지구해양과학과에 입학한 유 동문은 새내기 시절 과 수석을 한 경험을 시작으로 졸업 때까지 만점을 놓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해양물리를 가르치시던 나정열<과기대 해양융합공학과> 명예교수의 수업 덕분이었다. “나 교수님은 호인 같은 분이셨어요. 첫 수업 시간에 표면장력을 보여주신다며 책상에 물과 먹물을 붓고 머리카락을 뽑아 올려두셨죠. 학생들에게 머리카락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라며 학생의 얼굴이 물에 가까워지면 손으로 책상을 ‘쾅’ 치시면서 얼굴에 먹물이 튀게끔 하셨어요. 유쾌한 분이셨죠.” 유 동문은 학창 시절 물리를 공부해본 적 없지만, 대학에 와서 물리에 빠졌을 만큼 나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학과 공부에 매력을 느끼고 열정을 다해 공부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연스레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고, 전공에 흥미를 갖게 해준 나 교수를 따라 본교 해양물리연구실로 들어갔다. 그 덕분에 ERICA캠퍼스에 자리 잡고 있었던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협동연구생으로 선발돼 기술원과 대학원을 오가며 석사 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이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그는 돌연 규슈대 대학원에 마련된 박사 과정 국제협력코스를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그는 일본어를 할 수 없었지만 갑자기 타국으로 떠난 이유에 대해 “일종의 돌파구 같은 게 필요했어요. 긴 시간 동안 한 공간만 빙빙 돌며 공부를 하다 보니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죠”라 말했다. 그렇게 규슈대에 도착한 그는 이곳에서 슈퍼컴퓨터를 처음 만지기 시작했다. 
 

기상청 사람이 되다
유 동문은 지난 2004년 국립기상연구소(이하 연구소)에서 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던 같은 과 선배의 권유로 같은 연구소 해양기상지진연구실에 입사했다. 규슈대에서의 박사 과정을 채 끝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일본에서 박사 공부할 당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장례를 치르러 한국에 돌아왔을 때 빈소를 찾아온 학부 시절 선배가 제게 안부를 물었죠. 일본에서 슈퍼컴퓨터를 공부하고 있다 하니, 선배가 마침 근무하고 있는 연구실에서 슈퍼컴퓨터를 조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있다 하더군요. 해양물리학을 전공하며 슈퍼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은 당시 국내에 몇 명 없었어요. 급히 귀국해 연구소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죠.”


그는 박사 과정을 마무리해야겠단 일념으로 입사 후에도 1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생활했다고 전했다. 주중엔 한국에서 일하고 주말엔 일본에서 연구를 이어나간 것이다. 그렇게 유 동문은 지난 2005년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지난 2011년 연구소에서 기상청으로 자리를 옮기며 해양기상과 사무관으로 근무하게 된 유 동문. 그는 이곳에서 재난·재해와 관련한 해양기상과의 업무영역을 확장하고 체계화했다. 연구소와 기상청에서 근무하며 마주쳤던 해양 재난·재해들을 예측하고, 예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2008년 5월 4일 서해안에 위치한 보령 죽도에 해일이 닥쳤고, 이때 9명이 사망했어요. 문제는 기상청이 이 해일을 예측도 예보도 하지 못했단 것이었어요. 이를 계기로 서해안에 봄철마다 이상 해일이 발생한단 것을 알게 됐고 곧 바로 R&D에 착수하게 됐어요, 그래서 밝혀진 게 ‘기상해일’이에요. 저는 여기 해양기상과에서 기상해일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과 모델을 구축하는 일에 참여했죠.”


이뿐만이 아니었다. 유 동문은 여름철 해수욕장의 *이안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예측시스템 개발에도 참여했다. “해운대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이안류 발생지역이죠. 미국 플로리다에선 매년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을 만큼 이안류는 심각한 해상 재해에요. 그래서 저희 해양기상과는 대학의 연구실과 이안류를 예측하는 모델을 마련해 국내이안류 발생 해수욕장에 관측 장비를 설치했죠. 슈퍼컴퓨터를 통해 이안류를 모델링해서 매일 예보하는 시스템은 한국 기상청이 세계 최초예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 2016년 해양기상과의 과장에 오른다.


그는 기상청에서 근무하며 쌓은 경험으로 파랑 및 폭풍해일에 의한 연안 재해 저감을 위한 WMO 해양기상 국제전문가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는 WMO 해양기상 및 해양서비스 상설위원회 부의장으로 선출돼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유 과장. 그는 활동 중 발생한 몇 가지 해프닝을 소개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WMO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 가지 못한 탓에 비대면으로 회의에 참여하고 있어요. 회의 시간이 한국 기준으로 늦은 밤에 시작될 때가 많아요.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회의에 참석하거나 새벽까지 길어지면 졸기도 하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가끔은 소통이 버거울 때도 있어요.”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다
오랜 시간 기상청에 몸담으며 해양기상과의 입지를 다졌던 그는 7년간의 해양기상과장직에 마침표를 찍고, 기상청 지진화산정책과장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전공인 해양기상학과 다른 영역이라 생소하지 않냐는 기자의 물음에 “지진화산과 해양이 결이 다를 수 있겠지만 결국 지진과 해양은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지적인 확장에 도전할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고 답했다. 


과장직을 수행하며 △우리 학교 △이화여대 △인하대 등 여러 대학의 교단에 서기도 한 그에게 기자는 끝으로 학생들에게 조언을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유 과장은 한 고사를 인용해 말을 시작했다. “상투적인 조언이긴 하지만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단 말이 있잖아요. 사회 경험이 적은 학생들에겐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일 테지만 어영부영하기보단 기회를 잡기 위해 무엇이든 준비하란 말을 전하고 싶어요.”


실제로 업무 외의 모든 것에 열의를 다하고 있다. 그는 기상청 최초로 해양기술사를 취득하고, 지난 2018년 전공서 「해양기상학 기초편」과 에세이집 「남들도 다 아는 나만의 이야기」를 집필하기도 했다. 새 부서에서 새로운 출발에 나서는 유 과장에게도 오늘 날씨만큼 따스한 봄날의 기운이 스며들길 바란다.

 

▲ 땅과 바다의 지혜로부터 삶을 꾸려온 유 동문은 ‘땅 지(地)’와 ‘바다 해(海)’ 자를 써 ‘지해의 지혜’ 다섯 글자로 자신을 표현했다.

 

*이안류: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는 것과 반대로 해류가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급속히 빠져나가는 현상이다.

김유선 기자 afa0821@hanyang.ac.kr
사진 제공: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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