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전시회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하나의 전시회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 이다영 기자
  • 승인 2022.04.04
  • 호수 1545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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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정갈함이 가득한 공간, 이곳은 박물관이다. 흔히 박물관이라 하면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속 장면처럼 거대한 공룡 화석이 진열돼있는 모습, 혹은 정적이고 지루한 공간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박물관은 알고 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고고학적 자료 △역사적 유물 △예술품 등 다양한 분야의 학술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은 물론 전시회를 통해 유물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는 공간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 분청자기 백자실에 전시되고 있는 국보 제1437호 백자항아리의 모습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 분청자기 백자실에 전시되고 있는 국보 제1437호 백자항아리의 모습이다.

최근 특색 있는 전시회가 열리면서 박물관은 트렌디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유물 자체를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시도가 이전보다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로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있는 ‘달항아리 공간’을 들 수 있다. 옴팡지고 아담한 이 공간엔 밤바다에 달빛이 비치는 영상을 무대삼아 희고 둥근 백자 달항아리가 놓여있다. 달을 보고 멍을 때리는, 이른바 ‘달멍’하게 되는 해당 전시공간엔 감상 전용 의자도 놓여있다. 이는 관람객이 차분히 영상과 항아리를 보고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전시공간을 기획의도에 맞게 구상하고 유물을 연구 및 분석하는 직업이 있다. 바로 ‘학예연구사’다. 큐레이터(curator)란 용어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이 직업은 유물 및 작품을 수집해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담당한다. 기자는 지난해에 열려 지금까지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을 총괄한 신소연 학예연구사를 만나 전시회 기획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수많은 노력으로 빚어진 전시회
전시를 기획하고 완성하는 일은 크게 △전시 기획 △전시 준비 △전시 관리 과정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먼저, 기획 단계에선 전시 △규모 △기간 △예산 △장소 △주제 등을 정하고 작품을 선정한다. 혹은 전시할 작품을 먼저 정한 후 전시 공간을 기획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선 전시할 작품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업무 형태가 천차만별로 달라지지만, 공통적으로 사전 조사와 연구 진행이 병행된단 점에서 어느 과정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 ‘사유의 방’과 협업한 건축가인 최욱원오원아키텍츠 대표가 전시회 기획을 위해 스케치한 설계도 모습이다.
▲ ‘사유의 방’과 협업한 건축가인 최욱<원오원아키텍츠> 대표가 전시회 기획을 위해 스케치한 설계도 모습이다.

사유의 방은 건축가와 협업한 국내 최초의 전시로 입체적이고 웅장한 전시공간을 선보여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신 학예연구사는 “박물관이 보유한 최고 국보라 할 수 있는 반가사유상 두 점을 한 공간에 배치해 국립중앙박물관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브랜딩하고자 기획했다”며 “이러한 의도에 맞게 공간을 기획할 수 있는 건축가를 섭외하는 데 주력했다”고 전했다. 

전시회를 마라톤에 비유했을 때 출발선에 대기하는 상태인 기획 단계가 끝나면,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는 ‘준비 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에선 전시회가 처음 기획했던 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작품이 손상되진 않았는지를 살피며 작품을 설치하고 점검한다.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불교조각실에 위치한 ‘사유의 방’에서 전시되고 있는 반가사유상의 모습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불교조각실에 위치한 ‘사유의 방’에서 전시되고 있는 반가사유상의 모습이다.

사유의 방은 건축가와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수시로 피드백을 받으며 기획의도대로 공간이 구현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 준비됐다. 그 결과 사유의 방은 우주를 연상시키는 천장과 집중력을 높여주는 듯한 은은한 조명이 완성돼, 전시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중앙에 자리 잡은 반가사유상 두 점에 눈길이 꽂힐 수밖에 없도록 구성될 수 있었다. 신 학예연구사는 “새로운 시도가 많이 이뤄졌던 전시였기에 힘든 점도 많았지만, 지난 1년 동안 매일같이 전시공간을 점검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 있었기에 관람객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전시회는 폐막 뒤에도 완전히 막을 내린 것이라 볼 수 없다. 작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추후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작품을 관리하는 업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작품의 경우 손상 여부를 파악하는 절차를 거쳐 유물 보관소인 수장고로 옮겨야 한다. 해외 작품의 경우 전시물을 안전하게 포장해 이송한 후 정산작업을 진행한다. 신 학예연구사는 “전시가 끝난 후에 오히려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사유의 방의 경우 1년 단위로 작품 손상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관람객의 반응을 정리해 추후 개선해야 할 점을 전시공간에 반영했다”고 전했다.

박물관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전시회는 단순히 전문 지식뿐만 아니라 현실 구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오랜 기간 갈고 닦아 만들어진다. 특히 최근 박물관 내 전시회 기획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점은 ‘누구의 시선으로 전시물을 해설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전시물마다 달린 해설은 관람객에게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로서 전시에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때 학예연구사는 해설 작성 담당자로서 누구의 시선으로, 무엇을 전달할 것인지 고심하는 과정을 거친다. 신동욱<한양문화재연구소> 연구위원은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유물에 대한 설명은 편파적이어서도 안 되고 오롯이 유물에 대한 설명이여야 한다”며 “최대한 많은 전문가가 참여해 검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박물관이란 공간은 단순히 과거 유물만을 전시하고 교육하는 고루한 방식에서 벗어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사회현상에 질문을 던지며 시대와 적극적으로 호흡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기 위해, 전시회와 박물관 내 여러 부속시설은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는 것이다.

더 많이, 더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박물관은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임과 동시에 현재 우리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박물관의 기획의도가 ‘일상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반추하며 지혜를 얻는 문화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박물관에선 더욱 재밌고 유익한 전시회를 관람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유익함과 신선함으로 가득한 박물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 박물관의 의미와 전시회에 숨은 노력들을 곱씹으며 전시회를 즐겨보길 바란다.


도움: 신동욱<한양문화재연구소> 연구위원
신소연<국립중앙박물관 미래전략관> 학예연구사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SBS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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