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기성언론도 여기 취재는 못 왔어요
[취재일기] 기성언론도 여기 취재는 못 왔어요
  • 나태원 기자
  • 승인 2022.04.04
  • 호수 1545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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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원<문화부> 정기자

 

다른 기자들도 그럴 진 모르겠지만, 문화부 기자인 필자는 취재 요청을 할 때 굉장히 저자세로 임한다. 부서 특성상 특정 기업이나 연구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때가 많은데, 그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인터뷰겠지만 필자는 그들의 한마디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 학보사 기자 나태원이라고 합니다. 바쁘실 텐데 번거롭게 해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전문가의 고견이 필요해서…” 이런 식으로 필요한 답을 얻을 수 있을 만한 10여 개의 기관에 메일을 돌리면 대부분은 ‘읽씹’이거나 귀찮은 듯한 반응을 보인다. “저희가 사실 그 정도 전문가는 아니어서 인터뷰는 못할 것 같습니다”와 같은 답변을 많이 받는다. 이런 것들을 다 감안하고 메일을 보낸 것이긴 하지만, 이런 속보이는 거짓말을 몇 번 듣다 보면 기분이 굉장히 언짢아진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지.’

이번 학기 들어서도 이런 식으로 인터뷰 요청과 거절이 반복됐다. 그러다 얼마 전, 이번엔 전화로 인터뷰 요청을 하던 중  뜻밖의 답변으로 거절을 당했다. “굳이 왜 여기까지 오시려고”, “사실 요즘 코로나19가 심각해서 그런 것도 있고요. 다른 메이저 언론사에서도 방문 취재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못 왔거든요.” 이후 뒷말이 더 이어지진 않았다. 

저 말의 저의가 뭐였을까. 그 언론사들이 방문 취재를 하지 못했단 것이 필자 또한 할 수 없단 사실의 근거가 될 순 없는데 말이다. 나름대로 최대한 상대를 배려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런 말이 돌아와 꽤나 당황스러웠다. 마치 “여긴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라고 하는 것 같아 괜한 무력감이 들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최대한 부탁해서 조금이나마 취재를 하려 했겠지만 이땐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뒤에 이어진 몇 초간의 침묵은 그렇게 상황이 끝났음을 암시하는 것 같아 수긍하고 말았다. 반드시 취재가 필요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들이 필자를 무시하거나 안 좋은 의도로 거절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또한 바쁘게 일과를 보내던 중 웬 대학생이 전화를 걸어 방문하고 싶다고 하니 꽤나 귀찮고 번거로웠을 테니 말이다. 코로나19가 심해서 외부인을 받기 껄끄러웠던 것도 이해가 간다. 다른 언론사도 방문하지 못했단 사실도 거짓말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필자에게 방문할 수 없는 이유를 납득시키기 위해 그런 말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지만 어딘가 모르게 묘하게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순 없다. 자기 분수도 모르고 설쳐댄 것 같은 민망함, 앞으로의 취재 요청에 대한 막막함 등이 기분 나쁘게 스멀스멀 올라왔다. 별다른 의미 없이 했을 그 한마디가 필자에겐 생각보다 충격이 심했던 모양이다. 평소에 그렇게, 솔직하게 거절했으면 좋겠다고 구시렁거리다가 막상 마주하니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벌 받은 걸지도 모른다. 앞으론 많은 인터뷰이의 ‘착한 거짓말’을 받아들이며 좀 여유롭게 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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