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장산곶매]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 임윤지 편집국장
  • 승인 2022.03.02
  • 호수 1542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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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지<편집국장>

사랑,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고 욕구하는 내면의 근원적인 감정이지만 연인 간의 그것은 복잡 미묘해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알랭 드 보통의 저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운명을 믿지 않던 남자 주인공은 989.727분의 1의 확률로 한 여자를 만났다는 낭만적 운명론에 빠져 사랑을 시작했지만, 결국 그 끝은 이별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그 날 이후, 주인공은 이별의 아픔을 견디고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결코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란 질문은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란 질문만큼이나 대책 없다고 말한다. 어떠한 속성이나 특성 때문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에 빠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 이성적으로 통제가 안 되는 감정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 또한 사랑하는 이유만큼에서나 없다. 이 질문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히게 한다. 그 부딪힘은 사랑의 역설이면서도 사랑을 이끌어가는 힘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랑과 이별이 한 번씩 필자를 지나갈 때마다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점점 더 진하게 맴도는 문장이 하나 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짧고 슬픈 명제, ‘만남은 곧 이별이라는 것.’ 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하고 있고 그 모든 이별에는 만남의 본질이 담겨 있다. 이 명제를 좀 더 넓게 보면 내 삶도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우연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만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랑’이 현재, 지금 이 순간의 일이라면 ‘이별’은 과거의 순간의 일이기도 하고 미래 어느 순간의 일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도 우연한 인연이 겹치고 겹쳐 나와 만나게 된 것이고, 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국 나와 이별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나와 네가 어떠한 계기로 점점 더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가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이별하는 것 역시 결국엔 특별하고 유일한 줄 알았던 우리의 사랑이 사실은 단순한 화학적 작용이자 그저 나만의 합리화였단 걸 깨닫는다.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과 사소한 말다툼부터 화해하기까지 그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후 나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까지, 결국 순간 순간마다 상황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사랑은 비슷하게 귀결된다는 사실에 괜히 안도감을 느끼며 또 다른 사랑이 오기를 기다린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이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 사랑을 경험하면 경험할 수록 그 불확실함과 불안을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갈구한다. 견고하고 안정적인 관계 안에서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근본적인 욕구를 부정할 수 없기에, 그 계속되는 불안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망과 두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 상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다시금 내본다. 

우리는 결코 이 사랑의 딜레마로부터 멀리 벗어날 수 없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오듯 사랑은 또 그렇게 새롭게 우리 삶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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