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열등감을 바라보는 관점
[칼럼] 열등감을 바라보는 관점
  • 이해수<사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 수료
  • 승인 2022.01.03
  • 호수 1541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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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수<사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 수료

친구 사이인 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 중 한 친구가 먼저 취직을 하게 됐다. 한 친구는 먼저 취직한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시기적으로는 뒤처졌지만 더 열심히 노력해서 본인도 빨리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면, 다른 친구는 자신도 곧 취업할 예정이라며 거짓말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취직한 친구보다 학력이 낮아 취직을 못 했다고 생각하며 몇 달간 좌절한 상태로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는 열등감을 성공의 동력으로 삼느냐 열등감의 노예로 사느냐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열등감을 왜 느끼는 것일까?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회 속에서 개인은 타인의 존재를 항상 인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장단점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에 열등감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우리가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열등감의 결과가 다른 것인가?

우선 열등감을 성공의 동력으로 삼는 사람들은 오히려 열등감을 통해 삶의 목표를 설정한다. 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자기평가하는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결과에 따라 열등감을 극복하려 하며, 이에 상응하는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사람들은 장점을 보완하고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게 된다.

반면, 열등감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왜소하고 열등한 존재로 느낀다. 과도한 열등감은 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단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지나친 열등감은 반사회적인 태도를 갖거나 병적인 권력욕과 우월욕구를 갖게 만든다. 이러한 욕구를 확보하려는 과도한 행동으로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는 데만 급급해 공동체감이 결여된다. 궁극적으로 허영심, 교만 그리고 타인을 압도하려는 적대감을 낳게 된다.

정리하면 열등감은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구체화한단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과하면 병적인 권력욕과 우월욕구를 갖게 만드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전술했듯이 개개인의 욕구들이 충돌해 경쟁이 벌어지는 사회 속에서 열등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열등감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중요하다.

열등감을 극복한 대표적인 인물로 헬렌 켈러가 있다. 그녀는 생후 19개월 때 시청각 장애인이 됐다. 그러나 그녀는 신체적 장애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건설적인 활동으로 승화했다. 일례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할 무렵에는 5개 국어를 습득했다. 그리고 수많은 기고문과 함께 13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에 그녀는 지난 1964년 미국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미국 자유 훈장을 받았다. 신체적 열등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과 태도로 사회의 모범이 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인간 이해」의 저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완벽해지긴 어려워도 조금은 더 완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냥, 객관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고 수용하자. 분명 이를 극복해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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