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교육엔 섹스가 없다
우리나라 성교육엔 섹스가 없다
  • 이휘경 기자, 정다경 기자
  • 승인 2022.01.03
  • 호수 1541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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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드라마「오티스의 비밀상담소」 중 한 장면이다.
▲ 넷플릭스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상담소」 중 한 장면이다.

여기 비밀상담소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화제작 「오티스의 비밀상담소」. 한 고등학교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학생들 간 성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드라마다. 여기엔 성 상담소를 운영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의 성 고민을 해결해주는 주인공 오티스, 그리고 그의 친구 메이브가 나온다. 이들은 친구들이 말하기 어려워하는 섹스, 자위 등 성행위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준다. 그 과정에서 학교의 규탄을 받기도 하지만 성 상담에 대한 수요는 끊이질 않는다.

이처럼 많은 청소년이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유아기에 거쳐 청소년기에서 배우는 성에 대한 지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월경을 생리라고 에둘러 말하는 등 쉬쉬하는 분위기다. 김지학<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부끄럽다고 여겨져선 안 된다”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성기와 같은 성감에 관련된 부위에 대한 이야기를 쉬쉬하는 경향이 있어 제대로 된 성 지식을 배우기 어려운 분위기”라 전했다. 자신의 몸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성장기의 필수적인 과정이 입시 등을 중시하는 한국 교육 분위기에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폐쇄적인 교육 방식으로 인해 학생들은 그릇된 성 인식을 키우게 되고, 이는 성범죄 증가 등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성교육, 교육부 지침 무색해
교육부는 초·중·고교에 학년 당 의무적으로 연간 15시간 이상 할애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한 보건 교사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교사에게 성교육을 받을 기회는 초·중·고 통틀어 4시간이 전부라고 토로했다. 초등학교를 제외한 중·고교의 경우, 성교육이 포함된 보건 과목은 선택 사항이고, 성교육을 위한 별도의 시수조차 마련되지 않아 기존의 교과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어렵게 마련된 성교육 시간조차 미진한 부분이 많다. 대부분 난자, 정자 얘기뿐인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는 일회성 성교육에 그치거나, 피해 예방에 초점을 둔 성폭력 예방과 대처 방안 등을 배우고 있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학생 A씨는 “보건 시간에 배운 것 같긴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규은<동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발달과정에 따라 성교육을 익히고 성인이 됐을 때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그런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몇 년째 같은 자리인 성교육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2013년부터 성교육 표준안 제작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돼 2015년까지 3차례 개정을 거쳐 지금의 표준안이 만들어졌다. 이후 보급된 표준안을 기반으로 지도안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교사의 자율성에 완전히 맡겨져 있다. 하지만 교사 또한 학생에게 성 의식을 가르칠 만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성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성 관념을 가르칠 만한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서도 성교육을 가르칠 수 있는 소양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성교육 표준안 마련의 근간이 되는 헌법 또한 매번 반발에 부딪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가 한차례 성 관련 법령 용어를 개정하려 시도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양성평등’이라는 용어가 헌법 제36조에 포함돼 있어, 이를 성평등으로 수정하려 했지만 보수 정당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성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성의 제대로 된 가치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 교수는 “공교육 특성상 반발을 최소화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만 담아낼 수밖에 없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부분만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사회의 흐름에 맞게 헌법도 변화를 거쳐야 하지만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범죄 예방이 성교육?
학교라는 공간의 구조적 문제뿐만 아니라 성교육 내용 자체도 문제가 많다. 학교의 성교육을 들여다보면 △가정폭력 △성매매 △성폭력 △성희롱이라는 4대 성범죄 예방을 중심으로 성교육이 진행되는 경우가 다수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는 성희롱, 성폭력 등 성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가르친다”며 “이로 인해 성교육을 받는 남성은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로 서술돼 불편함을 느끼고, 여성은 피해자가 돼야만 목소리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다”라 강조했다. 올바른 성 의식이 확립되기 전부터 성범죄 예방 차원의 명목만으로 성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어떤 성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에  학생 B씨는 “실제로 성 경험을 하게 됐을 때 배운 지식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며 “학교에서 가르치는 생물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성 경험이라는 큰 범주에서 심리적 측면, 욕구 등에 대해서도 가르쳐줘야 실생활에서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 전했다. 기존의 이론적인 내용만 가르칠 것이 아닌 관계 정립부터 시작해 실생활에서 응용 가능한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섹스의 경우 단순히 삽입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으로 시작해, 몸에 대한 탐구와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 성관계 후의 대화까지 전반의 과정을 포함한다. 이러한 전반적인 성관계 맥락이 성교육에도 필요하다.

자신의 몸에 대한 탐구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우선이다. 김 소장은 “자신의 몸을 탐구하고 자위 등을 통해 어떨 때 내 몸이 만족감, 따뜻함을 느끼는지, 무엇을 할 때 편안한지 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획일적으로 성기 모양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각자가 다른 몸을 각자가 다른 몸의 모양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성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과 상대방이 모두 존중되고 성관계 속에서 서로가 평등하다는 인식도 명확히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삽입의 과정을 거칠 때 한 사람이 아픔을 느끼고 불편하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 두 사람 모두 만족감을 느낄 때 비로소 건전한 성관계가 맺어지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이같은 성을 둘러싼 실질적인 내용이 성교육에 반드시 포함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에서 하반신 마비인 이삭의 성감대를 찾아주는 메이브의 모습이다.
▲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에서 하반신 마비인 이삭의 성감대를 찾아주는 메이브의 모습이다.

성(性), 음지에서 양지로
우리나라에서 특히나 쉬쉬되는 성(性). 폐쇄적인 성문화로 인해 성교육 또한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다. 인간에게 있어 성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제대로 된 성교육이 동반된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잠을 자는 것처럼 삶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행위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기부터 올바른 성 인식을 갖고 자신의 몸과 타인과의 관계로 시작해 성에 대해 알아갈 수 있도록 성교육의 현주소를 재고해볼 때다.

도움: 김지학<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이규은<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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