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대신문 문예상 시 가작] 더 런드리(The Laundry)
[2021 한대신문 문예상 시 가작] 더 런드리(The Laundry)
  • 김수현<인문대 국어국문학과 20> 씨
  • 승인 2021.11.29
  • 호수 1540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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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곳에서 누구보다 가지런히 앉아 있습니다 기관총의 총성 사이로 들리는 간헐적인 기침이 꼭 안부 같아요 저편에서 자꾸만 응답 없는 잔기침이 새어 나오고 우리는 서로를 모릅니다

흰옷에 튄 얼룩처럼 간결한 죽음 투명한 원 너머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어요 낙하했다가 튀어 오르며 거품이 되어 갑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보다 슬프지는 않아요 때에 맞춰 넣어주는 샤프란이 가장 다정한 방식의 애도라면 기꺼이

종전을 알리는 알람은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생경한 진동이 고막을 울리니까요 아직 방아쇠에 손을 걸고 있는 이가 누구인가요 명찰 없는 군복을 입은 그는 이제

더 무거워졌다는 사실이 조금 무서워집니다 젖어있으면 쉽게 더러워지니까 바닥이 두렵습니다 지금 아무리 달큰한 향기라고 해도 조심히 집어 옆으로 옮겨야 해요 과신은 금물

이봐요 당신의 손은 당신 생각보다 작다고요 이런 말을 속으로만 삼키죠

온기와 열기 사이 어딘가가 생()의 온도라서 옮겨간 죽음은 회전하며 말라갑니다 삶과 죽음은 같은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저 드럼통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본 적 있나요 그곳에는 당신의 명찰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떼어낸 흔적만이 남은 자리를 만지작거리다 떠올렸는데

깨끗해지지 못할 자욱은 잘라냈습니다 이를테면 잃어버린 이름과 닳아버린 감정 그 사이에도 감침질이 필요할 테죠 실은 내게 있습니다 바늘은 당신에게 있습니까 당신의 끝맺지 못한 안부가 계속해서 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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