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대신문 문예상 시 대상] T
[2021 한대신문 문예상 시 대상] T
  • 이가인<인문대 국어국문학과 21> 씨
  • 승인 2021.11.29
  • 호수 1540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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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가 사라진 후
나는 손가락을 감추기 시작했다

집 앞을 나설 때에도 텅 빈 가방을 들고 나섰다
가방을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오면
T가 없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렇지만 가방은 계속 내게 매달려 있고
나는 거울 앞에서 끊임없이 가방을 확인한다
그러다 문득, T가 두고 간 것이 비출 때가 있다
가방은 여전히 텅 비어 있고
혼자선 아무것도 담을 수 없고
담기 위해서만 있고
가방은 혼자서 문을 열 수 없다
가방에 손가락을 보관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가방 안에 굴러다니는
열 개의 약속을 생각하니
차라리 서랍을 메면 어떨까
나는 서랍과 함께 방구석에 가만히 서있고
안에 든 물건은 흔들리지 않고
토하지 않아도 되고
이별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건 없다고
T라면 솔직히 말하겠지만
T는 지금 없다
그것이 이제 낯설지 않다
다만 거울은 지나간 걸 붙잡지 않고
아무리 잡아도 내가 잡은 흔적들만
내가 닦지 않으면 그대로 묻어 있고
잡고 있던 나를 불쌍해하고
다시는 바라보지 않고
열 손가락은 여전히 내게 매달려 있다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어
가방 대신 주먹을 들고 나섰다
가방을 힐끗거리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주먹을 세게 쥘수록
손가락은 나를 파고들지만
손을 아무리 말아 쥐어도 빠져나가는
애초에 잡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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