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캠퍼스 공간에 담긴 대학의 의미
[단상] 캠퍼스 공간에 담긴 대학의 의미
  • 정채은<인문대 사학과 17> 씨
  • 승인 2021.11.29
  • 호수 1540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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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은<인문대 사학과 17> 씨

얼마 전 유튜브에서 ‘매력적인 캠퍼스란 무엇일까? 건축과 유현준 교수가 말하는 홍대 캠퍼스!’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영상을 보게 됐다. 캠퍼스와 그 주변 환경을 ‘공간’의 측면에서 관찰하고 여기에 담긴 건축적 의미와 함께 인문학적, 사회적 가치를 소개하는 콘텐츠다. 

건축은 건물을 세우는 일에 불과하다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필자는 이 영상을 통해 캠퍼스의 건축 속엔 대학의 지향점까지도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다른 학생들과도 함께 공유하고 싶어 영상에서 소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얕게나마 캠퍼스 건축에 대한 필자의 단상(斷想)을 풀어보려 한다.

캠퍼스 공간 속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단연코 경사를 뺄 수 없다. 대부분 캠퍼스는 비탈진 땅 위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학교 서울캠은 경사가 심한 대학을 기준으로 줄을 세우면 언제나 상위권에 있을 정도로 아주 가파르다. 아무것도 몰랐던 새내기 시절 ‘학년이 높아지면 이까짓 오르막 적응하리라’ 생각했지만, 졸업을 앞둔 지금, 적응은커녕 오히려 숨이 더 가빠진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현재는 마을버스가 학교 안으로까지 들어와 상황이 매우 개선됐지만 말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경사진 캠퍼스도 그 나름의 매력이 충분히 있다고 느낀다. 내려오면 다시 올라가기 수고로우니 한 번 올라가면 오래 그곳에 머물게 된다는 점에서다. 긴 시간 머무르니 구석구석 둘러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발견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필자는 그렇게 서울의 숨은 야경 명당인 인문대 테라스를 알게 되었다. 힘들지만 이따금 애지문에서부터 오롯이 걸어서 인문대나 도서관을 가는 이유는 이런 뜻밖의 발견에서 오는 재미, 재미가 주는 아주 잠깐의 휴식 때문이다. 시험 기간엔 (어쩔 수 없이) 더 오래 앉아 공부하는 것은 덤이다.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
우리 학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강의실, 도서관 등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강의실엔 같은 단과대 소속 사람이 모여있을 가능성이 크고, 도서관은 말 그대로 ‘모여’만 있는 곳이지 서로 간에 특정한 소통이 이뤄지기 힘든 개인적인 공간이다. 유현준 교수는 대학은 ‘교류의 공간’이며 ‘서로 다른 학과끼리 많이 모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Infinite Corridor’를 그 예로 드는데 이곳은 200m가 넘는 복도에 모든 학과의 학생들이 만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라고 한다.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언제부턴가 1인 공간, 개인 공간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다. 카페에는 딱 1명만 앉을 수 있는 작은 책상이 많아졌고, 다른 이들과 철저히 분리된 1인실은 언제나 인기가 많다. 물론 이런 개인화 추세는 시대적 흐름이겠지만 적어도 대학은 같은 공간에 여럿이 함께 있는 것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공간이 제공돼야 한다. 역사를 전공하던 필자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다른 학과 학생을 팀 프로젝트에서 만났을 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고, 분명 많은 걸 배웠다. 우리 학교에서 MIT의 ‘Infinite Corridor’와 같은 공간이 마련되는 건 너무나도 어색하고 멀게 느껴지는 일이지만 언젠가 그런 복도가 생겨 대학이 늘 강조하는 학문적 교류, 진정한 교류가 일어나길 바란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학교는 온라인상에서 존재했고, 1년 반 남짓 실질적인 학교 공간은 텅 비어있었다. 그러면서 캠퍼스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적당한 긴장감과 현장 강의에 대한 몰입도 등을 경험하지 못했다. 분명한 사실은 오프라인 캠퍼스 공간이 갖는 가치는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학교의 건축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 대학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가치를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는 매력적인 형태로 변화해야 한다. 당연히 가야 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학생들이 가고 싶고 한참을 머무르게 만드는 공간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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