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가족이란?
당신에게 가족이란?
  • 이다영 기자
  • 승인 2021.11.22
  • 호수 1539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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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족이 될 수 있어.”

이 대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서로를 향한 끈끈한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가족의 탄생」 속 대사다. 이 영화처럼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가족처럼 살아가는, 혹은 이미 가족이 된 사람들이 있다.

가족의 스펙트럼은 넓어지고 있다
일상에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최근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 「용감한 솔로 육아-내가 키운다」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홀로 육아를 하는 부모의 일상을 보여주며 이혼 가족, 한부모 가족 등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해당 방송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도 △가족을 잃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과 로봇이 새 가족이 되는 모습이 담긴 영화 「승리호」 △지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이 함께 가족으로서 살기 위한 과정을 그린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한국에서 동성결혼을 올린 이야기를 풀어낸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등 새로운 가족 형태를 담은 작품들을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김영미<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급변하는 시대 속 누가 나의 가족인지, 가족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전통적 가족 개념이 해체되고 그 정의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현재 우리나라는 가족을 ‘△입양 △혼인 △혈연으로 이뤄진 집단 또는 그 구성원’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이성애로 결합한 부모와 아들 하나, 딸 하나로 구성된 핵가족 형태는 ‘정상가족’이라 일컬어지며 모든 가족제도의 근간이 되고 있다. 법적으로 정상가족에 대한 별도의 정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민법 제779조에 의하면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와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가족의 범위로 규정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혼인이나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만을 정상가족이라 인정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정상가족 외에도 수많은 가족이 존재한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0 가족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문화가족 △비혼 공동체 △조손 가족 △청소년 부모 △황혼 동거 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가족의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그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정상’과 ‘표준’만을 지향하는 가족제도에서 벗어나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가족일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
이런 가족제도로 인해 가족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각종 사회제도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이들은 기댈 곳 없이 △관공서 △우체국 △은행 △학교 등 각종 사회제도가 요구하는 기초적 단계인 ‘가족 증빙’ 과정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연구 분야와 관심사가 같아 서로 함께 공부하며 살기 시작한 지 13년 차에 접어든 A씨와 B씨는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니란 이유로 법적으로 가족 관계를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씨는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세금 납부 등에 서로 개입할 수 없을 뿐더러 응급실에서 긴급 치료가 필요했을 때 상대방이 법정대리인으로 인정되지 않아 수술동의서를 작성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적 있다” 며 “서로 돕고 싶을 때 돕지 못하는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당시 상황의 안타까움을 전했다.

가족을 가족답게, 생활동반자법
법적으로 규정된 협소한 가족 범위로 인해 많은 이들은 사회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정치권에선 이들의 가족구성권을 보장할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에 관한 논의가 7년 만에 재논의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이란 성인이 된 사람은 당사자의 협의에 따라 생활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법으로,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뤄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의 법정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이는 과거 동성애 조장과 전통적인 가족관계 파괴를 이유로 거센 반대를 맞았지만 시대적 변화로 가족구성권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됨에 따라 논의 선상에 오르게 됐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생활동반자법은 성소수자들만 위한 법이 아니라 모두의 인권과 행복권을 위해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라 전했다. 용혜인<기본소득당> 의원 역시 “생활동반자법은 시행되기까지 거쳐야 할 논의들이 많지만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모든 동반자 관계의 권리가 인정되기 위해 필요한 법”이라 설명했다.

해당 법은 우리나라에선 아직 논의 중인 상태지만 해외에선 이미 생활동반자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한 사례가 많다. 영국은 지난 2004년부터 성에 상관없이 △동거 △부부 △사실혼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지난 1999년부터 결혼 관계가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동거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법적으로 배제되지 않도록 시민연대계약을 도입한 바 있다. 프랑스의 경우 해당 계약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개선되고 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생활동반자법을 실시함으로써 해당 국가 사람들은 사회에서 소외될 걱정 없이 관계 중심의 가족을 꾸릴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노인 △보호 종료 청소년 △성소수자 △장애인 등 많은 사람이 법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첫 발걸음으로써 포용 사회로 나아가는 법이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관계 중심의 가족을 향해
결국 가족을 정의하는 데 있어 정상, 비정상이란 없다. 지난해 6월, 여성가족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69.7%가 혼인, 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이어 응답자의 70.5%는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 차별 폐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가족은 혈연, 혼인 관계로 맺어지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과 추억을 통해 만들어지는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족 형태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젠 정상성을 기준으로 가족을 평가하는 잣대를 거두고, 가족이 무엇인지, 가족을 무엇이라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법적인 그늘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고통이 사라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도움: 김영미<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용혜인<기본소득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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