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재난의 순환론
[장산곶매] 재난의 순환론
  • 배준영 편집국장
  • 승인 2021.11.08
  • 호수 153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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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준영<편집국장>

“주머니 막 뒤지면 돈 나오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내건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한 대선 공약에 김부겸 국무총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 후보는 국민 고통을 줄이는 차원에서 약 16~17조 원의 초과 세수를 투입해 국민 1인당 30만 원 이상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단 의지를 연일 내비치고 있다. 여당 원내대표는 “후보가 던진 화두는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지원사격에 나섰고, 기획재정부는 반발하고 있다.

재난지원금. 지난 팬데믹 상황 속에서 가장 큰 이슈였음엔 분명하다. 정치적으로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논의가 불거졌고, 국민의 혈세로 모이거나 혹은 그것으로 메워져야 할 지원금이 주어졌다. 지원금의 지급 대상자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기도 했으나 이를 전 국민의 88%에 지급할 것인지, 100%에 지급할 것인지는 사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재난지원금이 ‘재난’을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정치적 저의에 따라 거론되고 있진 않은지에 대한 고민이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 시행과 함께 4분기 소비가 일부 증가할 것이며, 재난지원금 등의 정책효과가 이 시기의 성장률에 반영될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이에 반(反)하는 입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안동현<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난지원금과 같은 정부의 재정지출은 GDP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한국개발연구원(KDI) 측은 공급자 측 요인에 의해 물가가 오르면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며 재난지원금을 향후 성장률의 하방 요인으로 꼽았다. 물가 상승을 야기할 수 있는 원인으로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지난 다섯 차례에 걸쳐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지적했다.

근래의 각종 경제 지표는 마치 이들의 우려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형세다. 지난 9월부터 11조 원의 5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됐음에도 3분기 경제 성장률은 0.3%에 그쳤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동기간보다 3.2% 상승해 9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물류 차질과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 고물가이지만, 국채까지 발행해 현금을 찍어낸 것은 물가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더라도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다. 단순히 돈을 풀어서 해결될 일이 아님에도 돈 풀기를 강행하는 이들의 저의엔 진정 ‘민생 살림’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이처럼 범정치권에까지 파급효과를 몰고 올 재난 지원금 정책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초과 세수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국가채무 상환이나 특정계층에 대한 손실보상금 추가 지원에 투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의 공약이 실현될 경우 최소 16조 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연간 문화·체육·관광 예산이 10조 원 미만이며 국방 예산이 52조 원인 것으로 미뤄보면 이 일회적인 조치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피해 본 국민에 대한 지원은 이뤄져야 하지만, 그에 투입되는 비용 역시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통해 처리돼야 한다. 재난 지원금의 의도가 다른 곳에 있다면, 서둘러 그 의지를 철회하고 현실과 미래의 문제를 직시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고선 우린 ‘어떤 목적을 위해’ 찍어내는 재난지원금이 불러올 새로운 재난과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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