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환경보호가 ‘빅뱅이론’만큼 재밌진 않겠지만
[단상] 환경보호가 ‘빅뱅이론’만큼 재밌진 않겠지만
  • 이휘경<대학보도부> 정기자
  • 승인 2021.09.27
  • 호수 1536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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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경<대학보도부> 정기자

요즘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을 다시 정주행하고 있다. 여기엔 쉘던이라는 물리학자가 나오는데 틈만 나면 어떤 주제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늘어놓는다. 이를테면 이웃 페니가 수제 머리핀 사업을 시작하려 하자, 제품 생산 라인의 역사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식이다. 만약 필자가 드라마 속 으로 들어가 “요즘 내가 환경에 관심이 많은데, 환경을 지키려면 텀블러를 써야해”라 말한다면, 쉘던은 아마 전 세계 환경 이슈를 속속히 설명할 것이다. 텀블러 사용이 환경 보호에 아주 미미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까지 지적하며 말이다. 이 장면은 명실상부 최고의 시트콤답게 굉장히 재밌을 것이 분명하지만, 쉘던이 설명하는 환경 얘기는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느닷없이 빅뱅이론으로 운을 뗐으나 필자가 단상(壇上)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이 환경에 대한 것이다. 환경과 무관한 시트콤으로 시작한 이유는 필자의 단상(斷想)이 따분할 수도 있지만 잠시나마 이목을 집중 시켜 보고자 함이다.

필자는 하늘과 땅 사진을 즐겨 찍는다. 하늘은 구름이 예쁜 날 자주 찍고, 땅은 길 위의 낙엽 등 자연의 사물이 나뒹굴거나 나뭇잎의 그림자가 얼기설기 드리워져 있을 때 찍곤 한다. 이렇게 필자를 둘러싼 환경은 매번 아름다운 모습으로 펼쳐지며 두 눈에 들어온 순간 ‘나의 주위’로서 필자와 연결된다.

올해 초 필자는 방학이 끝나기 직전 잠시 혼자 제주로 떠났다. 어김없이 제주에서도 하늘과 땅 사진을 핸드폰에 담았고, 금상첨화로 드넓은 바다까지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등대로 향하던 도중 바다 위 넘실대는 플라스틱 조각들과 불꽃놀이의 흔적, 나뒹구는 일회용 커피 컵들이 눈에 띄었다. 그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고, 동시에 그간 소비해온 플라스틱들이 떠올랐다. 필자의 손을 떠난 플라스틱이 필자가 보고 느끼는 주위 모습의 일부로 돌아오고, 이것이 여행의 유쾌하지 않은 한 장면으로 들어섰다는 생각이 스쳤다.

환경이라고 일컬어지는 필자 주변의 공간은 필자를 비롯한 여러 관계 속에서 새로이 태어나고, 나타나고, 변형된다. 공기가 인간과 인간이 만든 사물을 거치면서 탁해지고, 여러 화학제로 토양유기물이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며, 버려진 컵이 플라스틱 바다라는 새로운 바다를 탄생시킨 것처럼 말이다.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물과 무생물이 구성하는 집합의 바탕으로 자리 하는 환경은 부분 집합들과의 다양한 관계 맺기를 통해 끊임없이 비가역적으로 변형 되는 상태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다시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주위’가 되어 나타난다. 그러니까 우리와 우릴 둘러싼 환경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 속에서 닮아가고 있으며, 비가역적 변형이 축적돼 우리 자신과 환경의 모습을 바꾸고 서로에게 또다시 달라진 모습으로 경험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는 환경보호가 사실 우리의 삶의 모습을 지켜내자는 구호일지 모른다.

이번 학기 듣고 있는 환경법 수업에서 교수님이 환경과 생태계의 차이를 설명해 주셨다. 환경을 뜻하는 ‘environment’에서 environ은 ‘둘러싸다’를 의미해 환경은 나와 주변이 주종 관계임을 나타낸다. 한편, 생태계는 상호작용의 의미를 내포해 나와 주위가 대등 관계임을 나타낸다. 그래서 교수님은 우리가 얘기하는 환경이 실제론 생태계라고 표현돼야 더 적절하다고 말씀하셨다. 앞서 필자가 얘기한 환경은 더 정확한 의미론 생태계이며, ‘나’와 ‘나를 둘러 싼 것’은 사실 유기적 관계를 맺은 대등 관계임을 역설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환경과 관련된 어떤 영상은 플라스틱 대신 텀블러 사용을 권하는 반면, 다른 영상은 텀블러 자체도 플라스틱인 것이 많고 여러 번 재사용하지 않는 한 환경보호 효과가 매우 작다고 얘기한다. 그럼에도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 꾸준히 실천 할 때야 말로 우리는 눈뜰 때 맞이하는 밝은 햇살과 푸른 나무, 우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키고 있음을 매 순간 인지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환경’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지루하게 여겨지지 않는 데도 더 도움이 된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삶을 지키는 아름다운 환경보호와 친해져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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