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보다 나은 정치사회를 위한 제언
[장산곶매] 보다 나은 정치사회를 위한 제언
  • 배준영 편집국장
  • 승인 2021.09.27
  • 호수 1536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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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준영<편집국장>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분위기가 뜨겁다. 여야 할 것 없이 다수의 정당은 연일 대선 경선 토론회를 벌이고, 하루가 멀게 언론은 정당의 대표 주자 내지는 정부가 얽힌 크고 작은 사건을 보도한다. 

좌파 진영을 옹호하는 국민과 우파 진영을 옹호하는 국민은 곧 적이 되어 살기를 품은 채 각종 매체로 전쟁에 나선다. 중도를 표방한 정치인과 그의 옹호자는 부표(浮漂)처럼 설 곳 잃은 채 진영의 가운데서 좀 처럼설 곳을 찾지 못한다.

정치가 더이상 정치가 아니게 된 것은 오랜 일이다. 어쩌면 정치는 그 정의를 올곧이 실현할 수 없으며 정치의 잃어버린 본질은 태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날의 정치는 추상적이지만 동시에 실재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싸움판’이다. 좌우로 극명히 갈린 여야의 정체성은 그들이 표방하는 ‘국민을 위한다’는 가치를 훼손하고, 그 가치의 존재 의의마저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다수의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됐고, 상호 간의 이해와 존중은 어느 영역에서도 이행되지 않았으며 사회 질서는 법이란 사회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위태로운 기세로 무너져 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래 정치계는 그야말로 볕 들 날이 없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연일 폭로되는 비리 문제 및 조작과 날조, 정치인 개개인 및 일가친척의 사생활 문제까지 쏟아졌다. 누군가에 의해 제기된 한 가지 의혹은 연쇄적으로 새로운 의혹을 낳고, 증거로 쏟아진 일련의 사건은 다시 새 사건의 기점이 되어 또 다른 증거가 요구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정치계가 빚어낸 논란이 쌓여가는 와중 민심은 왜곡된 형태로 표출된다. 타자에 대한 분노와 불신, 타자와 ‘나’의 분리. 나아가 비정상적으로 분리된 타자 간의 집단 결속과 그 집단 사이의 대립이 이어져 사회는 기형적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이분법적으로 짜인 정치판 위에서 우리는 그들이 짠 각본에 충실하며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방향 감각은 잃은 지 오래다. 배의 키를 잡은 조타수의 지휘하에 이뤄지는 위태로운 항해 속에 우린 언제 침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만 커지고 있다.

정치란 전적으로 국민에 의해 성립되어 발현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임무는 끊임없이 조타수를 구속하는 것이다. 사회란 큰 배의 머리를 어디로 돌려 항해할 것인지, 항해 도중 예상되는 난항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관심 갖고 살펴야 한다. 조타수의 자격이 없는 자라면 망설임 없이 내칠 줄 아는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정치와 사회에까지 감정의 논리를 들이밀어선 안 된다. 최소한의 사회적 공감과 관념적 합의 하에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의 영역으로 존재해야 한다.

정치인은 선민의식을 내려두고, 그들의 본분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개인의 도덕성 진단이 선제 되어야 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사명에 대해 지속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본인의 오판이나 동지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숨지 않고 목소리 낼 줄 아는, 강단 있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국민과 정치인은 이해관계 속에서 합리적인 담론을 벌일 수 있다.

정치인의 고민은 ‘어떻게 내 배를 채울 것인가’가 아닌 ‘왜 어제 죽은 청년을 살리지 못했나’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필요하다면 본인의 배를 채우지 않고도 국정에 힘쏟는 정치인을 갈망한다. 이 갈망을 뒷받침하는 성숙한 국민의식 가운데서 우리 사회가 이상적인 정치사회로 도약할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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