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상에서 가장 절박했던 투쟁이 현실의 벽에 막히지 않길
[사설] 세상에서 가장 절박했던 투쟁이 현실의 벽에 막히지 않길
  • 한대신문
  • 승인 2021.09.27
  • 호수 1536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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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새벽,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과 보건복지부의 협상이 타결됐다. 이로써 산별 총파업은 무산됐고 코로나19 사태 속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노정 합의가 실현되기 전까진 이 사건을 끝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31일부터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인 처우 개선과 공공의료 확충을 요구하며 정부와 교섭을 이어왔다.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OECD 평균의 절반도 못 미치는 인력으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왔다. 또한 전체 의료기관의 10%가 채 안 되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보건의료인의 헌신과 희생에 맹목적으로 의존해왔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지급됐던 생명안전수당도 보건의료인이 아닌 병원에 전달돼 직접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노정 합의 후 정부는 △감염병 대응 인력기준 마련 △공공병원 확충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합의사항일 뿐, 실현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정부가 의료계의 협조를 끌어내지 못해 관련 의료법 개정 심사에 있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국의사 총파업 당시 추후 논의하기로 한 내용이 이번 노정 합의안에 먼저 포함됐다. 이는 정부가 의정 합의를 위반한 것이다. 해당 내용에 대해선 우선적으로 의정 논의를 거친단 전제조건이 달렸지만 의료계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더불어 예산 확보도 난제다. 다음해 예산안은 이미 책정됐기 때문에 합의문 이행을 위해선 다른 곳에 지원될 예산을 줄여야 한다. 더군다나 다음해 공공의료 관련 예산은 그 규모가 줄어든 상태다. 반면 합의문엔 자원이 투입돼야만 해결되는 사안이 수두룩하다. 생명안전수당은 국고로 전액 지원할뿐더러, 감염병 대응 인력기준 마련도 인력 충원을 위해선 재정적 문제가 얽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추후 예산 편성에 있어 각 부처는 여러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당정 협의나 국회 논의 등에 따라 여러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변경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결국 이번 노정 합의안은 단순히 파업을 무마하기 위한 공수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보건의료노조뿐만 아니라 의료계와 함께 이해관계를 절충시킬 수 있는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투입되는 예산 역시 보건의료인들의 노고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확보해야 한다. 여기서 제 삼자인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보건의료인들을 향한 감사 인사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그들의 처우가 개선되는지 확인하고, 정부와 병원의 태도를 감시해야 할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은 열세 번의 협의 끝에 일단락됐다. 우리는 기나긴 협상을 통해 극적으로 타결된 교섭인 만큼 합의안이 온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보건의료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보건의료노조의 절박했던 투쟁이 현실의 벽에 막히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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