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꿀벌들은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그 많던 꿀벌들은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 나병준 기자
  • 승인 2021.09.06
  • 호수 1534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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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6만 마리에 뒤덮인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 이 사진은 지난 2017년 국제연합(UN)이 지정한 ‘세계 벌의 날’을 기념해 촬영된 화보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매년 5월 20일로 정해진 이 날은 전 세계 식량 생산과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정됐다.

이처럼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꿀벌이지만,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GBIF)에 따르면 이들의 개체 수는 1990년대에 비해 약 25%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오는 2035년엔 이들이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꿀벌, 작지만 강한 곤충
알고 보면 꿀벌은 인류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곤충 중 하나다. 식물이나 농작물 등의 *수분 활동을 돕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꿀벌은 꿀을 얻기 위해 여러 꽃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꽃가루를 몸에 묻혀 다른 식물에 옮기는 ‘수분’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꿀벌 자신은 꿀을 얻고, 식물은 열매를 맺으며 성장해 번식에 성공한다. 수분 활동을 돕는 건 △나비 △바람 △새 등이 있지만 대다수의 식물과 농작물은 꿀벌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꿀벌의 역할은 상당하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꿀벌은 100대 농작물 생산량의 약 70%에 해당하는 농작물의 수분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아몬드의 경우엔 오로지 꿀벌의 수분 활동에만 의존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꿀벌이 가지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꿀벌이 생산하는 벌꿀이 가지는 가치도 주목해볼만 하다. 벌꿀은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아미노산 등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피로회복 효과도 있어 ‘신이 주신 선물’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벌꿀을 가공해 만든 △로열젤리 △밀랍 △프로폴리스 등 역시 풍부한 영양소와 다양한 쓰임새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국내 벌꿀 시장의 규모가 약 5천억 원으로 예상되는 만큼, 벌꿀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는 다른 농수산물 못지않음을 알 수 있다.

기후 변화와 도시화가 잡은 발목
하지만 꿀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 이유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지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를 손꼽았다.

우선 예측할 수 없는 기후 변화를 첫 번째 요인으로 지적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는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꿀벌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30도가 넘어가는 폭염은 온도 변화에 민감한 벌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정철의<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고온이 지속되면 꿀벌이 먹이활동보단 벌집 내부 온도 조절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므로 원활한 번식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기온이 높아지는 시기엔 꿀벌의 천적인 말벌이 왕성히 활동하고,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철엔 벌집에서 기생하는 해충의 밀도가 높아져 번식에 악영향을 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각종 대형 시설이 들어서는 것 역시 꿀벌이 설 자리를 잃게 한다. 꿀벌의 *밀원이 되는 과수가 줄어들어 굶어 죽거나 심지어는 집 자체가 파괴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꿀벌은 집을 잃고 헤매다 죽거나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대기 오염이 꿀벌 개체 수를 감소시키는 또 다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꿀벌은 태양을 나침반 삼아 비행하는데 대기 중의 초미세먼지와 같은 미세 입자가 늘어나면서 꿀벌이 집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방향감각과 귀소본능을 상실한 꿀벌은 점점 늘어나고, 이는 결국 개체 수 감소로 이어진다.

꿀벌 사라지면 악순환 이어질 수도
그렇다면 꿀벌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전문가들은 식물의 수분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해 식물이 결국 죽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식물 군락지의 면적이 줄고 이를 먹이로 삼는 여러 곤충과 동물에게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특정 지역의 환경상태를 측정하는 기준인 ‘생태지표종’으로서 꿀벌의 사라짐은 곧 지역 생태계 파괴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이에 따라 다양한 작물의 수확량 역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5년 하버드 공중보건대학교 연구팀은 꿀벌이 사라지게 된다면 전 세계의 △견과류 △과일 △채소의 생산량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에 따른 피해는 양봉 농가와 낙농업계, 식품업계에도 전해진다. 이들은 대부분 과일, 채소 및 견과류를 사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식량 가격의 폭등과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밀원식물 심고, 도시양봉 시도하고
이처럼 꿀벌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국내외에선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봉 농가와 전문가 사이에선 우선 밀원식물을 다양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이유로 1960~70년대 아까시나무를 대규모로 심으면서 아까시나무를 통한 꿀 생산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최근 이마저도 지나친 도시 개발과 수명이 다 된 이유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에선 지난 2019년부터 국유림을 중심으로 밀원수를 심는 작업에 착수했다. 일부 양봉 농가에서도 꿀벌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한곳에서만 활동할 수 있도록 개화 시기가 다른 밀원식물을 심는 등 자체적인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정 교수는 “아까시나무를 대신할 수 있는 밀원의 보급은 물론 꿀벌의 활동기인 봄~가을철에 적합한 밀원수의 보급과 다양성 증대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꿀벌이 사라지는 원인을 제공했던 ‘도시’에서 양봉을 함으로써 사라져가던 꿀벌의 보금자리를 되돌려 놓고 있기도 하다. 김지영<비컴프렌즈> 대표는 “도시양봉은 꿀벌의 개체 수를 늘리는 목적의 활동”이라며 “꿀벌 개체 수 증가는 도시 생태계의 복원을 향한다”고 도시양봉의 순기능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도시화로 설 자리를 잃은 꿀벌이지만, 역설적으로 도시는 꿀벌의 생존 활동에 유리한 환경이기도 하다. 고온 건조한 도시의 기후는 꿀벌의 활동에 가장 적합한 기후일 뿐더러 도시는 살충제와 농약의 피해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도시양봉은 최근 국내 여러 장소에서도 활용되는 추세다. 지난 2016년 아모레퍼시픽은 여의도 한국 스카우트 빌딩에 ‘마몽드 꿀벌 정원’을 조성했으며, 최근 국회에서도 국회도서관 옥상을 활용해 약 90만 마리의 꿀벌을 양봉하고 있을 정도로 도시양봉은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숲 내부의 꿀벌정원이다.
▲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숲 내부의 꿀벌정원이다.

 

벌 한 마리가 세상을 바꾼다
이러한 노력에도 고려해야할 점은 산적해 있다. 정 교수는 “특정 밀원에 의존할 경우 꿀벌의 영양소 부족이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며 먹이의 다양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어 “지역마다 기후적·지형적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식물을 다양한 지역에 배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도시양봉에 대해 김 대표는 “학교나 공공기관의 옥상 등 공유공간을 활용하거나 뜻이 있지만 양봉하기에 어려운 이들도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더욱 보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꿀벌은 생태계 유지는 물론 인류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꿀벌이 사라지면 4년 내 인류도 멸망할 수 있다’란 말이 있듯이 이들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분: 꽃을 피우는 식물의 수술 꽃가루가 암술에 묻는 것
*밀원: 벌이 꿀을 빨아 오는 근원

도움: 김지영<비컴프렌즈> 대표
정철의<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
사진 출처: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photography/article/angelina-jolie-fearless-before—b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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