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부디, 꽃다운 우리의 청춘을 즐길 수 있길
[아고라] 부디, 꽃다운 우리의 청춘을 즐길 수 있길
  • 이재희 기자
  • 승인 2021.05.09
  • 호수 1530
  • 1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희<문화부> 정기자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연애, 고시 준비, 직장생활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로 구성된 이야기다. 주인공 혜원은 차가운 도시로부터 도망치듯 시골로 내려와 겨울부터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으며 삶을 되돌아본다. 혜원은 필자와 무척이나 닮은 인물이다. 어쩌면 혜원은 다신 오지 않을 20대를 지나고 있는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 그건 아마 작품이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가며 때론 지쳐 쓰러지고,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특히, 20대는 답답함과 고충의 시간을 겪고 있다. 청년과 우울. 이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실은 우리 사회에서 무엇보다 단단하게 얽혀있는 존재다. 이들이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엔 피로, 즐거움이나 희망이 없다는 것 등이 있겠지만, 필자는 정말 이것만이 20대를 우울감에 갇히게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청년이 느끼는 우울감과 절망감은 한 곳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20대의 극심한 우울감은 사회‧경제적 불안 요인이 수년간 이어져 온 결과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끝없이 경쟁해야 한다.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남아 결국 목표를 손에 쥐게 되더라도, 이게 끝은 아니다.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또다시 스펙과의 전쟁이다. 스펙 전쟁에서 승리해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취업 준비로 이어진다. 운 좋게 취업하게 되더라도 그 기쁨은 잠시일 뿐 직장에선 또 다른 사회의 문이 열리게 된다. 첫 시작부터 오로지 성공만을 바라보며 실패에 면역이 생길 틈조차 없이 달려온 청년층은 인생의 실패를 겪을 때, 보다 더 깊은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이렇듯 심각하게 불거진 청년 우울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우울감에 대한 지원 방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을 하곤 한다. 하지만, 필자는 ‘지원책을 내놓는다 해서 과연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학점 경쟁과 학자금 대출, 고용절벽으로 점점 사회에서 내몰리고 있는 청년층에게 정말 필요한 건 그들의 불안을 야기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청년층의 우울함이 한 곳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듯, 그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려면 당연히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도 우울감에 갇혀 청춘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걱정’과 ‘실패’로 가득 찬 삶이지만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것을 믿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놈의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계속 자라난다. 걱정도 자꾸 다시 자라난다.” 영화 속 대사다. 우리는 걱정을 뽑아버리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엔 뽑아낸 걱정이 지나가면 또 다른 걱정이 다시 자라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걱정 없는 세상은 없다는 것 역시 안다. 이런 걱정들이 돌고 도는 삶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매번 새로움을 주는 계절이 온다. 언젠가 다가올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며, 모든 청년이 우울과 절망에서 벗어나 밝게 웃으며 젊음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올 수 있길 바라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