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나와라 뚝딱! 국민정서법의 두 얼굴
법 나와라 뚝딱! 국민정서법의 두 얼굴
  • 임윤지 기자
  • 승인 2021.05.02
  • 호수 1529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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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 있다”는 말을 듣곤 한다. ‘국민정서법’이란 국민 정서나 여론에 강하게 의존해서 만들어진 법을 말한다. 국민정서법은 관용적으로 사용돼 온 표현으로 우리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윤해성<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 정서’는 ‘법 감정’이란 단어보다도 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라며 “국민 여론이 법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빗대서 표현한 단어가 국민정서법”이라 전했다. 여기서 국민 정서는 △문화적 수준 △사회 통념 △역사적 배경 등에 기반해 형성된다. 즉, 이는 옳고 그름을 떠나 시대를 반영한 우리 사회의 목소리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국민 정서가 법체계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온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19년 아동 성폭력범 조두순의 출소일이 다가오자 국민들의 공분은 거세졌고 이에 지자체와 국회에서 각종 조두순 관련법을 마련한 사례가 있다. 또한, 지난해 3월에도 가수 유승준(스티브유)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함에 따라 다시 한국에 들어올 수는 있게 됐지만, 정부에선 국민 정서를 이유로 비자발급을 거부하기도 했다.

최근엔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특정 이슈에 대한 국민 여론이 더욱 활발하게 형성돼 입법 작용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나 각종 사건·사고에 대한 SNS 해시태그 운동 등으로 사람들이 직접 의견을 개진하고 법안 발의와 개정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국회의원들은 이런 국민적 경향에 발맞추기 위해 국민의 관심사를 그때그때 파악하고 입법에 반영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생기고 2개월 동안 관련 이슈에 대한 법안만 150여 건에 이르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 사회 현안에 따른 국민 정서를 토대로 입법에 반영하는 경우는 점점 더 잦아지는 추세다. 이를 방증하듯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 임기 동안 발의된 의안 건수는 2만4천여 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국가에 비해 사건·사고 이후의 국민 정서가 법체계에 반영되는 속도가 더욱 더 빠른 것으로 드러났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018년 시행된 ‘윤창호법’은 사건 발생 이후 2개월 만에 마련됐지만, 미국의 아동 성범죄 처벌법인 ‘메건법’은 시행까지 2년여 시간이 걸렸다”며 “똑같이 한 사회 내 파장이 컸던 사건이라 해도 여론이 공론화되고 입법에 반영되기까지 그 속도가 우리나라에선 유독 빠른 편”이라 전했다.

법은 법적 안정성을 위해 자주 변경돼선 안 되지만 시대적 정의에 부합하도록 그 흐름에 맞게 변화하기도 한다. 한편에선, 자칫 사회 현안에만 급급했다간 법안을 충분히 검토하지도 못한 채 ‘보여주기식 법안’이 나올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김은수<국문대 한국언어문학과 17> 씨는 “여론이 법 제정에 반영되기 위해선 우리나라 국민들의 도덕성이나 판단력이 높아야 하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 시민의식이 발전한 것 같진 않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면에, 국민 여론을 완전히 도외시하기도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 학교 학생 A씨는 “법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어느 정도 국민의 정서와 공감대를 반영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며 국민정서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국민 여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국민정서법’. 국민의 여론은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어 낼 만큼 강력하다. 그러나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고 변화만을 외쳤다간 오히려 우리 사회에 부작용만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국민정서를 반영하는 것이 우리 눈높이에 맞는 법안을 만드는 데 일조할지, 법체계에 혼란만을 가져올 지 그 이면을 알아보자.

도움: 윤해성<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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