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잔혹함과 통쾌함 사이 아찔한 줄다리기
[장산곶매] 잔혹함과 통쾌함 사이 아찔한 줄다리기
  • 정채은 편집국장
  • 승인 2021.05.02
  • 호수 1529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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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채은<편집국장>

잔인한 범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거나, 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전하는 포맷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은 최근 들어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들의 놀라운 취재력과 분석력은 많은 사람을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서 나아가 종종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범죄-추적-처단’ 소재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이 같은 소재로 지금 방영 중인 프로그램만 해도 여럿이다. ‘범죄자의 악행을 찾아 벌하고, 사회에 평화를 내리는’ 흐름의 드라마는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악을 벌하는지’ 그 방법에 있어선 최근 드라마에서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범죄자의 악행이 커질수록 이를 처단하려는 수위 역시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는 것이다. 

‘선으로 악을 이겨라’ 성경의 한 구절이다. 이처럼 선과 악의 대립 구도가 소개되고, 결국엔 선으로 악을 이기며 마무리되는 것이 추적 스릴러 드라마의 ‘클리셰’였다. 그리고 정형화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선이 악을 처치하는 과정에선 거의 대부분 ‘적법’이 전제된다. 이를테면, 오랜 고생 끝에 경찰서에 넘긴 범인, 며칠 뒤 포승줄에 묶인 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오는…. 이 모습을 TV로 지켜보며 미소 짓는 주인공, 익숙하다. 이 과정에서 징악(懲惡)은 권선(勸善)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요즘 드라마에선 악은 악으로 무찌른다. ‘다크 히어로’로 불리는 것들이다. 필자도 놓치지 않고 보는 드라마가 있는데, △내용 △연출 △출연자보단 그저 적을 어떻게 응징하는지 더 관심이 간다. 그걸 볼 때면 묵은 체증이 깔끔하게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인공이 악당을 더욱 처참하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이 과정 그 어디에서도 적법성을 찾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필자 같은 시청자에게 주인공들의 과격한 행위는 범죄를 저지른 인물에 대한 ‘정당방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는 이런 폭력적인 콘텐츠에 우려를 드러낸다. 본지 1526호 4면에선 ‘막장’과 관련된 소재를 다룬 적이 있는데 한 전문가가 ‘막장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모습은 시청자의 현실 감각과 도덕성을 무너뜨린다’고 지적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현실에서 다크 히어로는 또 다른 형태의 범죄자이며, 이들이 출현하는 콘텐츠는 모방 범죄의 위험성 역시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드라마가 등장하고 인기를 끄는 건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나 병들었고,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법의 심판, 그에 대한 많은 사람의 분노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일종의 거대한 사회적 경고의 메시지로도 읽힌다. 

SBS 드라마 「모범택시」에서 악당을 처단하는 주인공이 같은 사건을 쫓고 있는 검사를 향해 ‘애초에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했으면 내가 여기서 이런 얘기 할 필요가 없었겠죠’라고 화를 내는 이 장면은 다시 한번 어두운 우리 사회에 경종처럼 울려 퍼진다. 머지않아 진짜 다크 히어로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잔혹한 지금의 현실 속에서, 잔혹함과 통쾌함 사이 아찔한 줄다리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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