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몸짓 속 섬세한 감성, 고이 접어 나빌레라
힘찬 몸짓 속 섬세한 감성, 고이 접어 나빌레라
  • 나병준 기자
  • 승인 2021.05.02
  • 호수 1529
  • 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관중<예체대 무용학과> 교수

남성 무용가로서 활동하기엔 환경이 척박했던 시절이 있었다. 본교 무용학과 출신의 손관중 교수는 그러한 불모지에서의 어려움을 딛고 남성 현대 무용가로선 입지전적인 자리에 올랐다. 한국무용과 발레에 이어 현대무용까지 섭렵한 그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나비, 장자의 꿈」 △「인간나무」 △「적(跡)」 등의 작품을 내놓으며 그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현재 예술 감독과 교수로서 활동 중인 그는 미래의 무용가를 양성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예순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지치지 않고 활동하는 그를 만나보았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예비 무용가
학창시절부터 △권투 △태권도 △허들 등 다양한 예체능에 두각을 보인 그는 호기심에 이끌려 한국무용 학원에 간 것을 계기로 무용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유연한 신체와 강렬한 인상이 발레 쪽에 더 어울리지 않겠냐는 학원 선생님의 조언에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에 뜻이 없었던 그는 대학 대신 국립발레단 연수 생활을 택했고, 입단 이듬해인 1980년 공연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데뷔하게 됐다.

그가 활동을 시작할 당시엔 사회적으로 남성 무용가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무용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무용계에선 연극계나 체육계와는 다르게 남자를 찾아볼 수 없었어요. 가방 깊숙한 곳에 타이즈 넣고 몰래 배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만큼 남자가 무용을 배우는 것이 각박한 시절이었죠.”

국내 1세대 남성 현대 무용가가 되다
군 전역 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주변인들의 충고에 본교 무용학과 발레 전공으로 느지막이 입학한 그는 돌연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꾼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걸 만들 수 있고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현대무용의 매력에 이끌렸다”고 답했다. 이로써 한국무용과 발레, 현대무용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게 된 그는 ‘전천후 무용가’로 성장하게 됐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다는 건 큰 강점입니다. 최근의 무용 트렌드도 하나의 장르만 정통해선선 빛을 보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한테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장르의 무용에 도전할 것을 권하고 있어요.”

주로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는 영화나 사진 역시 창작의 모티프가 된다고 답했다. 특히 그는 ‘사랑’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영감을 바탕으로 그는 △「나비, 장자의 꿈」 △「인간나무」 △「적(跡)」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그중에서도 「적」 시리즈를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았다.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을 두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1995년 서울무용제에서 「족보」라는 작품으로 안무상을 수상하고 지원금을 받았어요. 그 덕에 뉴욕으로 유학을 가게 됐죠. 그렇게 뉴욕에 도착해서 하루는 길을 거니는데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지내더라고요. 그것도 무표정한 얼굴로요. 그렇게 홀로 6시간 동안 빗속을 거닐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에 대해서 고민했죠. 귀국해서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환갑에 이르렀지만, 그는 여전히 무대를 누비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용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묻자 그는 ‘중독성’이라고 답했다. “무대를 준비하기 전까진 많이 힘들지만 제 무대에 박수를 쳐 주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 그간의 괴로움이 다 씻겨나가는 듯합니다. 일종의 마법이라고 생각해요.”

▲ 손 교수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은 「적」 시리즈 중 여덟 번째 작품인 ‘공간 플러스’ 공연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도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역동적인 모습을 함께 느낄 수 있다.
▲ 손 교수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은 「적」 시리즈 중 여덟 번째 작품인 ‘공간 플러스’ 공연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도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역동적인 모습을 함께 느낄 수 있다.

 

▲ 손 교수의 「적」 시리즈 중 아홉 번째 작품인 ‘푸른 침묵’ 공연 장면이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삶을 표현하고자 창작한 이 작품에서 그는 실제로 흙을 뒤집어쓰고 연기를 하는 실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 손 교수의 「적」 시리즈 중 아홉 번째 작품인 ‘푸른 침묵’ 공연 장면이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삶을 표현하고자 창작한 이 작품에서 그는 실제로 흙을 뒤집어쓰고 연기를 하는 실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술가보다 교육자로서
그러나 ‘이젠 예술가이기보단 교육자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밝힌 그는 앞으로 본교 교수로, 그리고 예술 감독으로 후진 양성에 전념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어느덧 30여 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 학교 무용학과 교수로서 재직 중인 그는 ‘수업은 재밌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지금도 학생들과 함께 무대를 누비고 있다. 또한 그는 젊은 학생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평소에도 무용을 꾸준히 연습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등산하는 등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을 SNS로 공유해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소통을 하며 세대 격차를 줄이는 데 노력 중이기도 한 그다.

무용학과 교수로서 느끼는 아쉬움은 없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최근 부족한 금전적 지원으로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이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무용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힘들단 걸 알 수 있어요. 전공자 수에 비해 국가에서 해주는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낮엔 무용 연습하고 저녁엔 일하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원이 더 활성화되길 바랄 뿐이에요.” 오랜 시간 무용계에 몸담으며 많은 학생과 제자를 지켜본 그의 우려와 진솔한 바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처음 입학했던 1984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학교 근처를 떠난 적 없다는 손 교수. 인터뷰 시간 내내 무용에 대한 그의 진심 어린 애정과 함께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전해졌다. 끝으로 그는 학생들에게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조금만 참고 견뎠으면 좋겠다’며 독려했다. “모든 삶은 동굴이 아닌 터널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겐 긴 터널일 수도 있고 짧은 터널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결국 끝이 있고 빛을 보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학생 여러분들도 빛을 볼 그날을 생각하면서 조금만 견뎠으면 좋겠어요.”

예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그는 누군가를 가르치고 누군가에게 배우며 살아가는 즐거움이 삶의 행복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삶의 태도에 대해 스스로를 ‘나는 만학도’라고 표현했다.
▲ 예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그는 누군가를 가르치고 누군가에게 배우며 살아가는 즐거움이 삶의 행복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삶의 태도에 대해 그는 스스로를 ‘나는 만학도’라고 표현했다.

사진 제공: 손관중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