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트로트 열풍, 과유불급이거늘
[아고라] 트로트 열풍, 과유불급이거늘
  • 나병준 기자
  • 승인 2021.04.11
  • 호수 1528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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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병준<사진·미디어부> 정기자

유행은 빠르게 변한다. 방송가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0년 방영한 Mnet 「슈퍼스타 K」를 필두로 유행하기 시작한 오디션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은 어느 순간 쿡방과 관찰 예능, 육아 예능과 같이 하나의 장르로 변화했다.

그 변화는 이제 트로트로 옮겨간 듯하다. 지난 2019년 TV조선에서 방영한 「미스트롯」이 불어온 트로트 열풍은 여전히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청률도 연일 고공 행진이다. 지난해 방영한 TV조선 「미스터트롯」은 시청률 35.7%를 기록했다. 이는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한 예능 가운데 최고 시청률임과 동시에 비지상파와 지상파를 통합하여 집계한 이후 최고 시청률이다. TV조선 「미스트롯 2」 역시 32%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필자 역시 트로트를 즐겨 듣기에 이러한 열풍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이젠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트로트 열풍이 시작된 지난 2019년부터 현재까지 방영했거나, 방영 중인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만 무려 스무 편 남짓이다. 일회성으로 트로트를 다룬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편성표에서 차지하는 재방송 비율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편성표를 살펴보면 사실상 트로트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적다. 실제로 4월 둘째 주 TV조선2의 주간 편성표를 보면, 트로트 프로그램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성돼 51회에 이르렀다.

프로그램의 취지와 상관없이 트로트와 관련된 인물을 출연시키거나 불필요하게 편성을 나누어 시청률 상승을 꾀하는 모습도 보인다. 지난해 4월 JTBC 「뭉쳐야 찬다」엔 축구와는 전혀 관련 없는 미스터트롯 출연진이 2주에 걸쳐 나와 대중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한 △JTBC 「아는 형님」 △MBC 「구해줘 홈즈」 △MBC 「라디오스타」 △Olive 「밥블레스유 2」는 트로트 가수들이 출연한 방송분을 이례적으로 2~3주에 걸쳐 편성해 시청률 올리기에 혈안된 방송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방송사는 이익집단이다.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가 최근 유행하면서 TV를 보는 이들이 줄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낮은 시청률의 프로그램은 제작진과 방송사에 치명적이다. 그런 점에서 안정적인 시청률이 확보되는 트로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는 것을 시청자들은 용납할 리 없다. 이는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포털사이트에 ‘트로트’를 검색하면 ‘트로트 지겨워’라는 연관 검색어가 뜨겠는가.

방송사의 수익 창출 및 관계자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하루아침에 트로트 프로그램 제작을 멈추라고 하기엔 무리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원한다. 그러한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다양성과 독창성이 결여된 채 유행만을 쫓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 경향은 아쉬울 따름이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획일화된 장르, 어디선가 본 듯한 주제와 소재의 반복에 이미 이골이 난 많은 시청자가 있음을 방송사들은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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