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로부터 삶을 배우다
죽은 자로부터 삶을 배우다
  • 임윤지 기자
  • 승인 2021.04.05
  • 호수 1527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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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을 돌려라. 그리고 머지 않아 죽을 것이라 생각해 보라.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를 그대가 아무리 번민할 때라도 언젠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번민은 곧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여 의무란 무엇인가, 인간의 소원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가 곧 명백해질 것이다.”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의 말이다.

국과수 관계자를 비롯해 국내 법의학자들은 그동안 수많은 시체를 부검하며 목격한 사람들의 죽음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법의학자로 살아온 이들이 말하는 잊히지 않는 기억과 죽음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원규<의대 의학과> 교수
20여 년간 1천 건 가까이 부검했던 시체들엔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이 담겨 있었다. 특히, 신장이 1m 남짓한 어린아이가 학대를 당해 멍투성이에 담뱃불로 지져진 채 싸늘하게 누워 있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때 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큰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 또한, 돈 문제로 칼부림 당해 사망한 사람을 본 후엔 욕심을 경계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또,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며 가끔 삶이 회의적으로 느껴지더라도 더 건설적으로 살아가야겠단 깨달음을 얻었다. 

유성호<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
자살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은 대개 유서를 남긴다. 많은 유서를 봐 왔지만, 그중 어떤 엄마가 폐 질환으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글이 가장 안타까웠다. 자신의 빚이 얼마인지 자세히 기록하고 갚을 방법도 적은 뒤 마지막엔 자식에게 어릴 때 때려서 미안하다고 쓴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부유한 사람들과 달리 일반 서민들의 유서들을 읽어보면 뼈아픈 내용이 많다. 아울러, 여러 죽음을 보면서 태어날 때 축복받고 웃은 것처럼, 죽을 때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담담히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주변인들에게 사랑한단 말을 아낌없이 전하며 말이다.

최영식<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 원장
평소 국과수에 부검을 요청하러 자주 오던 경찰관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검을 하려고 보니 그 경찰관이 사망한 상태로 있었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병이 깊어져 가는지도 모른 채 일만 하다가 과로로 사망한 것이다. 본인의 몸 상태마저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을 그를 보고 비애감에 사로잡혔다. 일면식도 거의 없는 사람만 부검해 오다가 곁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을 부검하면서 나 역시도 삶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도움: 박지민 수습기자 femin03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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