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부터 새로움을 창조하다
비움으로부터 새로움을 창조하다
  • 나병준 기자
  • 승인 2021.04.05
  • 호수 1527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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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철린<칸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한국 건축사의 획을 그은 김수근 문하에서 그의 건축 사상을 이어받은 후 약 30여 년간 건축계에 몸담은 이가 있다. 본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방철린<칸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학창시절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본교 건축공학과에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지금의 설계 사무소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건축에 바쳤다. △미제루 △매송헌 △제주스테이 비우다 등의 작품으로 각종 건축분야 상을 거머쥐기도 한 그. 그가 남긴 건축가로서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하나의 그림에서 시작된 건축가의 꿈
그는 학창시절 미술에 소질을 보였지만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부모님 때문에 아쉽게 미술을 배울 수 없었다. 이에 상심한 그는 훗날 학교 복도에 걸린 하나의 그림을 보고서 불현듯 건축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검은 배경에 흰 선이 그려진 투시도였어요. 자연스레 건축이 떠올랐죠. 마침 미술 외에 수학과 물리도 좋아했던 터라 건축을 배운다면 내가 좋아하는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저와 건축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그렇게 본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건축학도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전공 외에도 건축 동아리인 ‘세미나 건우회’에서도 활동했다는 그는 방학 즈음엔 합숙하며 작품을 만들고 외부에 전시하기도 했다. 건축 관련 서적이 없었던 것은 물론 설계 도구도 열악했지만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즐겁게 작업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건축가로서 꽃을 피우다
졸업 후 입대하게 된 그는 마지막 휴가일에 걸려온 한 선배의 연락으로 누군가의 설계 부탁을 받게 됐다. 영문도 모른 채 설계를 도왔던 그는 훗날 부탁했던 이가 김수근 건축가가 대표로 있던 ‘공간사옥’의 실장이었음을 알게 됐다. 이 일을 계기로 공간사옥에 들어가 김수근 문하에서 건축을 배운 그는 이를 두고 “최고의 영광”이었다고 전했다. 김수근의 대표작인 ‘공간사옥 프로젝트’를 맡기도 한 그는 “김수근을 빼고선 한국건축을 논할 수 없다”며 그를 독보적인 존재로 치켜세움과 동시에 은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건축에 대해 심오한 고민을 했던 김수근의 사고방식이 방 대표의 성장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1990년 결성한 ‘4.3그룹’을 또 하나의 성장 동력으로 꼽기도 했다. ‘건축에 관해 토론하는 모임을 갖자’는 제안으로 결성된 이 모임을 통해 그는 서로의 작품을 설명하고 부족한 점은 비판하는 시간을 가졌다. “건축의 모든 요소엔 이유가 필요해요. 서로의 지적에 분명한 이유를 대기 위해선 매순간 집중해야만 했죠.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많이 성장했다고 느껴요. 실제로 4.3그룹에서 활동하기 전과 후의 작품을 보면 성장했음이 느껴지죠.”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설립한 지금의 칸 종합건축사사무소는 설립이념과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을 강조한다. 그는 “건축은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이를 생각하다 보니 노자가 주창한 ‘무위자연’이 떠올랐다”고 답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무위(無爲)는 허(虛)와도 이어지는데, 수많은 것 중 불필요한 것을 빼고 본질에만 집중하자는 개념이 ‘허’이거든요. 그런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저와 제 사무소가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미제루’를 꼽았다. 1999년 설계한 미제루는 그가 강조하는 ‘무위자연’의 개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설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연의 소리와 내음을 느낄 수 있도록 다락을 만들고 사용자 간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도록 ‘ㅁ자’ 형태로 집을 구성해 매력을 더했다. 그만의 건축관이 집약된 이 작품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까지 알려졌다. 그 결과 △아시아건축가협의회 금상 △한국건축가협회 특별건축상 아천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등을 수상해 여러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많은 이에게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답했다.

▲ 1999년 방 대표가 설계한 ‘미제루’의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방 대표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숲 속 한가운데 주택을 설계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하는 방 대표의 건축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성실히 한 길만을
올해로 일흔이 넘은 그는 건축가로 지내오면서 느낀 건축의 매력에 대해 “늘 새로운 걸 창조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답했다. “어떤 직업에도 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 주변 친구들도 이 나이까지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걸 부러워할 정도니까요. 다시 태어난대도 저는 이 직업을 택할 겁니다.”

끝으로 학생들에겐 “한 우물을 파고 주어진 일에 성실히 임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가 공간사옥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러한 삶의 태도가 맺은 결실이었다는 것이다. “뭐든 성실히 임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드시 잡았으면 좋겠어요.”

건축가로서 보낸 시간이 증명하듯 그의 집엔 그가 작업한 모델과 수상 기록이 즐비했다. 그간의 작업물들을 보며 건축가로서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는 방 대표. 그가 지향하는 가치와 곳곳에 남아있는 작품은 한국 건축사에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

건축계에 오랜 시간 동안 몸을 담았던 방 대표는 건축을 미학과 과학은 물론 역사와 지리 그리고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연결된 소우주, 즉 ‘문화의 꽃’이라 표현했다.
▲ 건축계에 오랜 시간 동안 몸을 담았던 방 대표는 건축을 미학과 과학은 물론 역사와 지리 그리고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연결된 소우주, 즉 ‘문화의 꽃’이라 표현했다.

사진 제공: 방철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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