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느냐 베이느냐, 익명 커뮤니티의 양날의 검
베느냐 베이느냐, 익명 커뮤니티의 양날의 검
  • 정채은 기자, 나병준 기자
  • 승인 2021.03.21
  • 호수 1526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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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종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학교 폭력(이하 학폭)을 당했다는 폭로가 잇따르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익명 커뮤니티에서 폭로된 유명인의 학폭 이슈는 가해자에 대한 비판을 넘어 학폭을 대하는 우리의 경각심을 높였다. 이처럼 개인의 이야기가 폭로된 익명 커뮤니티는 공론장이 됐고, 익명 커뮤니티에서 폭로된 개인의 이야기는 여론이 됐다. 이젠 이것에 대해 사회적 성찰을 요구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익명 커뮤니티를 먼저 찾는 이유
개인이 누군가와의 갈등 상황에 놓이거나 피해를 겪었을 때 일반적인 해결 방법은 공권력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계속되는 학폭 폭로는 일반적인 방식과 다른 양상이다. 본지가 시행한 익명 커뮤니티를 바라보는 한양인의 인식조사(이하 인식조사)에서 ‘법적 절차를 밟기에 앞서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주된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라는 물음에 72.8%가 ‘단시간 내 큰 파급력’이라 답했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 13.2% △‘보복에 대한 두려움’ 4.4% △‘법적 절차의 복잡함’ 3.5%가 뒤따랐다.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대중의 상식과 배치되는 사건은 즉각적으로 언론사 메인을 차지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에 이른다. 이른바 익명 커뮤니티의 ‘화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갈등이나 범죄 피해에 대한 공권력의 대처에 어느 정도 신뢰하는지’에 관한 물음에 △제도상의 허첨 △미약한 처벌 △공권력의 의미 상실 등의 이유로 35.1%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4.4%는 ‘매우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윤상철<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권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엔 공정하고 신속한 처리에 불신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익명 커뮤니티의 순기능은 ‘익명성’에서 비롯한다. 논문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방안 연구-익명적(anonymous) 커뮤니케이션 규제 문제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익명 커뮤니케이션의 장점 6가지에 △자아 보호 △개인 사생활 보호 △구속 회피를 포함했다. 익명 커뮤니티에서 누군가는 익명성을 방패 삼아 그들이 겪은 아픔을 호소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들이 겪은 부조리를 토로하는데 이들에게 익명 커뮤니티는 최후의 보루일 수 있다.

윤 교수는 정보사회에서 익명 활동의 순기능에 대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억압으로 인해 실명 공개가 어려운 개인의 피해 사실이나 사회적 모순 등을 폭로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확인하고 사회의 진보적 발전과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고 설명했다. 

허위 사실에 가려진 구원의 목소리
그러나 익명 커뮤니티를 통한 폭로는 순기능만 있진 않다. 앞서 언급했던 ‘익명성’은 역설적으로 부작용이 되기도 한다. 익명이란 가면 뒤에 숨어 문제를 과장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불분명한 사실관계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와 가해자로 지목받은 이 사이의 공방전이 계속된다.

조작과 편집이 쉬운 온라인 시스템은 도리어 많은 이에게 신뢰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누구든 상황을 지어낼 수 있고 개인에게 유리하게 사건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계 학폭과 관련한 ‘거짓 학투(학폭 미투)’가 늘어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현실은 익명이라는 특성과 더해져 대중들이 명백한 증거 없는 폭로를 대중으로 하여금 불신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런 문제의 반복은 진정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소외되는 문제를 낳았다. 사회 전반에 걸친 연이은 학폭 보도로 대중들은 이미 상당한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다. 이에 대중은 이와 유사한 논란에 무감각해지고, ‘증거 없인 믿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익명 공간에 기대 고통을 털어놓으려는 피해자들의 호소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치는 것이다.

과도한 여론재판… 피해도 만만찮아
익명 커뮤니티를 통한 폭로는 감정이 앞선 여론재판으로 흘러갈 우려도 있다. 이런 여론재판은 오래전부터 그 위험성이 입증된 바 있다. 소크라테스 등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은 여론재판으로 희생됐다.

최근 미디어가 발달하며 대중이 사건에 대한 내용을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이에 따라 익명에 기댄 폭로가 가진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정 사건과 관련된 여론이 과거보다 쉽고 빠르게 형성돼 그 악영향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피해자는 법의 심판을 받기 전부터 ‘유죄’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심한 경우 비난의 범위는 당사자의 가족과 지인에게까지 확대돼 그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준다. 이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꿀 정도로 여론재판의 영향력은 크다. 감정적 여론재판이 만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윤 교수는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하는 법적 시스템과 개개인의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이 함께 요구된다”고 말했다.

폭로의 성격은 당신의 손에
이제 폭로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보편적 행위로 자리 잡았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확산과 미디어의 발달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익명 커뮤니티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본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조리 고발의 성토장 △뱉은 말에 책임질 수 있는 공간 △자유로운 소통 창구처럼 순기능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무분별한 폭로의 집합소 △선동과 혐오가 팽배한 공간 △거짓 폭로로 인한 무고한 이들의 무덤 등 부작용이 더 심해질 것이란 의견도 존재했다. 익명 폭로를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위한 용기 있는 외침으로 만들지, 사회에 불만을 가진 자의 단순한 감정적 대응으로 만들지는 익명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우리의 손에 달렸다.

도움: 윤상철<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참고 문헌: 구교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방안 연구-익명적(anonymous) 커뮤니케이션 규제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2010, 3권, 1호, 43-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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