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 맛’ 에 빠져든 사람들
‘마라 맛’ 에 빠져든 사람들
  • 이재희 기자
  • 승인 2021.03.21
  • 호수 1526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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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디자인대 산업디자인학과 20> 씨는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현실에선 불가능한 전개로 재미를 느끼게 해 자주 보는 편”이라며 “시청 후엔 SNS로 소통한다”고 답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막장에 열광하는 추세다. 박기수<국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아침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자극적인 장면들이 담긴 막장을 이젠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편성해 더 많은 사람이 시청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막장이란?
미디어 콘텐츠는 △감상성 △관능성 △선정성 △해학성 등의 요소들로 구성돼있다. 박 교수는 “막장에서도 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특히 관능성과 선정성의 특정 요소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막장은 드라마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최근 막장과 결탁한 예능이 대세다.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예능이 그 예다. 실제로 외도와 불륜, 도박 등 자극적인 주제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부부 예능 「1호가 될 순 없어」에선 “바람피우는 것도 성실하고, 도박도 성실하고, 성실의 왕자!”라는 말이 나온다. 이에 남편의 외도, 도박 같은 심각한 문제를 너무 가볍게 다뤘다는 시청자 반응이 일기도 했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내 콘텐츠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유튜버들은 조회수를 위해서라면 선정성 있는 제목과 섬네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수많은 유튜브 콘텐츠 속에서 눈에 띄기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양산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 막장
이처럼 막장은 여러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막장이 이토록 흥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엔 OTT 서비스의 영향이 적지 않다. 김연수 문화평론가는 “OTT 서비스로 손쉽게 해외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시청자들이 막장을 즐겨 보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며 “범죄자와 교수가 벌이는 인질극을 담은 「종이의 집」이나 수감된 여성범죄자들의 이야기인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등의 해외콘텐츠는 우리나라에선 쉽게 보기 어려운 다양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비해 소재의 다양성과 높은 표현 수위를 갖춘 해외콘텐츠들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시청자는 더 강한 마라맛 콘텐츠에 익숙해지고 이에 이끌리게 된 것이다.

현실의 허황된 꿈이 실현되는 곳
또한 막장은 터부시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지난 2019년 한국주관성연구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드라마 시청 유형 중엔 ‘대리 만족형’이 있다. 시청자가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 동경해온 환경 등을 드라마를 통해 경험함으로써 대리만족하려는 유형이다. 이들은 동시에 막장 속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 학교폭력을 당하는 아이 등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장면을 보며 공감한다. 비현실성과 현실성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나아가 이들은 현실에서 핍박받는 인물이 범죄를 통해서라도 성공을 취하는 장면들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사회가 힘들수록 올라가는 막장의 인기
대중들이 감정 해소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시기에 막장은 더욱 인기를 누린다. 막장드라마의 시작을 열었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은 43%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당시에 우리 사회는 금융위기 등 여러 어려움이 존재했다. 해소하지 못한 감정들, 풀리지 않는 현실 속에서 대중들에게 막장은 앞뒤 가리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콘텐츠였다. 최근 막장이 인기인 이유도 우리가 처한 사회현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공희정 문화평론가는 “장기화된 코로나19의 여파,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 계급의 양분화와 극단화돼가는 사회, 예측할 수 없는 경제 상황과 불투명한 미래는 사람들이 막장에 주목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막장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
막장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김 문화평론가는 “막장이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막장 콘텐츠를 기우로만 볼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중이 막장을 TV, OTT 서비스, SNS 등 다양한 매체로 향유하는 모습은 시청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더불어 악의 실체나 부적절한 사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권선징악으로 결말을 맺는 막장은 시청자들에게 큰 쾌감을 주고 도덕적 가치를 전달한다. 이는 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오며, 대중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배출구가 돼주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부정적인 영향이 더 우세하다는 입장도 있다.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 평론가는 “막장이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된 시청자들은 현실감과 도덕성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계속될 막장의 미래는
대부분 전문가들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시청자의 관심을 가장 잘 끌어내는 장르가 막장인 것을 부정할 순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장이 콘텐츠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과도하게 선을 넘는 막장은 콘텐츠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막장이 현재 수준에서 나아가 콘텐츠로서의 완성도와 개연성을 더 보완한다면 막장의 미래는 생각보다 밝을 것이다.

도움: 공희정 문화평론가
김연수 문화평론가
박기수<국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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