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성적 희롱을 당하는 피해자를 지켜주세요
게임에서 성적 희롱을 당하는 피해자를 지켜주세요
  • 맹양섭 기자
  • 승인 2021.03.07
  • 호수 1525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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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다가 ‘○까라’라는 말을 들었어요. 이런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고 양승진<공학대 전자공학부 20> 씨는 말했다. 정지원<경상대 경영학부 20> 씨 역시 “게임에서 나의 부모님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온라인 게임 속 만연한 성적 희롱
지난해 8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0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중복응답가능, 이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6.7%가 ‘게임 내에서 성적 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피해 방식은 △문자 채팅(70.9%) △음성 채팅(33.4%) △게임 내 특정 역할 요구(28.9%) △성적 사진·동영상 전송(19.9%) △연락처 및 오프라인 만남 요구(16.2%) 순으로 나타냈다. 한소망<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주로 팀플레이로 진행되는 게임에서 성적 희롱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성적 희롱이 만연한 상황은 익명성에서 비롯된다. 현실에선 마땅히 지켜야 할 언어 규범일지라도 익명성이 보장된 게임에선 규범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김여진<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 팀장은 “현실에선 사회적 평판 때문에 성차별을 하지 못하더라도 게임에선 이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성차별적인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가해자 처벌은 녹록지 못해
성적 희롱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필요하지만, 현실은 솜방망이 처벌로 그칠 때가 많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게임회사가 성적 희롱을 한 가해자에 대한 처분으로 채팅을 일시 제한하는 경우가 64.4%였고, 신고하더라도 41.5%는 게임상 처벌마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가 심각한 성적 희롱이라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특별법) 제13조에 따라 법적 처벌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고소하긴 매우 어렵다. 피해자가 게임회사에 문자 채팅 기록에 대한 열람을 요청할 때 제한적인 정보만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게임회사 관계자는 “수사 기관에서 협조 요청이 발생했을 땐 협조에 최대한 노력한다”면서도 이외의 경우엔 “다른 이용자의 채팅 기록은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음성 채팅을 위주로 하는 게임의 경우엔 처벌이 더더욱 힘들다. 음성 채팅이 기록으로 남지 않아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게임에선 음성 채팅 신고 시스템조차 제공되지 않고 있다. 한 활동가는 “경찰에서도 성적 희롱 사건을 심도 있게 파헤치지 않아 성폭력특별법으로 신고하지 못하고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고소하는 실정”이라고 한탄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이런 가해마저도 처벌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성적 희롱으로 게임 이용자가 명예훼손을 당했을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따라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 이때 온라인 명예훼손 *구성 요건인 △공연성 △모욕적 언사 △*특정성이 성립해야 하지만, 온라인에선 성적 희롱의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게임 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았다면 피해자 특정성을 쟁점으로 수사 기관의 처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실은 실태조사에서 성적 희롱에 ‘한 번도 대응한 적 없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34.9%나 차지했던 이유를 짐작게 한다.

숨어있는 피해자를 도와야 할 때
온라인 게임에서 성적 희롱을 근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게임회사에서 성적 희롱 피해 처분 기준을 강화하고 자체적으로 금칙어를 설정해야 한다. 우리 학교 학생 양 씨는 “잘못을 사후에 처벌하는 것보단 사전에 규제해야 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지난 1월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발표한 ‘2020년 한국 게임이용자 조사’에선 게임에서 금칙어를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무려 75.8%가 인정하고, 여기에 게임회사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엔 72.9%가 동의했다.

또한 온라인 게임 속 성적 희롱에 관한 구체적인 법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에선 현실에서 보다 가해자를 규제하는 데 있어 더 큰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활동가는 “성적 희롱을 강력하게 처벌할 성폭력 관련 법을 제정해 가해자를 명확하게 제재해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또한 김 팀장은 “신고가 접수되면 게임회사는 가해자의 임시 신상정보만이라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 희롱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규제에서 나아가 이들의 인식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성적 희롱은 단순히 언어폭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겐 △심리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는 성폭력임을 게임 이용자 스스로가 깨우치고 자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활동가는 “국가가 성폭력 관련 법을 제정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꿔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학교 학생 정 씨 또한 “법이 표지판이 돼 성적 희롱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올바른 언어문화의 정착이 필요한 지금, 가해자에 대한 적극 처벌과 게임 이용자의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 할 때이다. 이로부터 도움받을 수 없었던 피해자가 외진 곳에서 억울하게 숨어 지내지 않도록 말이다.


*구성 요건: 가해자를 처벌할 때 전제요건이 되는 행위를 말한다. 
*특정성: 모욕적 언사를 당한 피해자를 지칭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도움: 김여진<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 팀장
한소망<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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