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K-방역 돌아보기
[사설] K-방역 돌아보기
  • 한대신문
  • 승인 2020.12.30
  • 호수 1523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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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가 되면 연말 모임으로 북적거리던 왕십리역이 올해엔 한산하다. 대신 확진자 현황 안내문자 수신음은 도처에 요란하다. ‘성동구 확진자 발생, 광진구 확진자 발생, 송파구 확진자 발생···’. 역 하나를 지날 때마다 열차 안 휴대폰들이 동시에 울리는 풍경은 굳이 통계 수치를 들먹이지 않아도 코로나19의 3차 유행을 실감케 한다.

이른바 ‘K-방역’으로 대한민국의 위상까지 드높아지는 듯했던 시절도 옛말이 됐다. 갈수록 잦아지는 안전 안내 문자 속 확진자 수는 K-방역의 한계를 입증한다. 지난해 K-방역의 총론은 난잡했고, 각론은 그에 휘둘렸다.

K-방역을 총괄한 정부는 방역보다도 여론을 의식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가장 최근의 백신 논란에서 대응하는 모습도 그랬다. 전 세계 30여 개국이 2020년 말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접종에 돌입하는 동안 한국은 뒤처졌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내년 가을 전까지 4천400만 명분 백신을 들여올 계약을 맺었거나 맺는 중”이란 공식 발표를 했지만, 실제보다 부풀려 말한 것임이 곧 밝혀졌다. 당시 정부가 손에 쥔 백신은 고작 1천만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비판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안전성을 이유로 신중했던 것”이라 변명했으나 정작 실제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1천만 명분은 임상 시험도 다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방역보다 일시적인 민심과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처신이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을 지급하겠단 정책을 구상한 시기를 떠올려보라. 당시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에선 예산이 부족해 해외입국자를 대상으로 하는 2차 검사를 필수 조항으로 넣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처럼 방역 이외에 중요한 것들이 많았던 정부에게 ‘방역이 곧 정치고, 경제’란 의·과학 전문가들의 조언은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통에 우리나라는 병상 확보, 의료진 확보와 같은 기초적인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로 3차 유행을 맞게 됐다.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였던 때, 정부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겨울철에 감염병 전파가 심해질 것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병상을 확보했어야 했다. 생활치료병상은 물론 중증환자 병상도 모자라 코호트 격리가 된 요양 병원에선 코로나19에 감염된 간호사가 고열과 설사를 앓으면서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감염된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정부가 방역만큼 중시 여겼던 정치, 경제적 부분에서의 성과는 있었는가.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연일 나오고 있으며, OECD가 예측한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 성장률은 또 하향 조정됐다. 모든 것을 얻고자 했더니 모든 것을 잃은 꼴이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지난달 29일 기준 859명이다. 언젠가 연말의 밤거리는 옛 모습을 되찾을 것이지만, 이미 하늘로 간 생명을 되살려낼 방법은 없다. 정부는 더 이상의 사망자가 없도록 방역의 총론부터 재정비하라. ‘사람을 먼저’를 지키는 쪽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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