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우수상]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나요?
[2020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우수상]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나요?
  • 고은정<인문대 국어국문학과 16> 씨
  • 승인 2020.11.30
  • 호수 1522
  • 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혜진의 『불과 나의 자서전』을 중심으로 -

1. 혐오를 멈춰주세요

정부는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취지에서 ‘소셜믹스(social mix)’ 정책을 추진해왔다. 소셜믹스란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를 한 단지 내에서 혼합하는 형태를 말한다. 그러나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분양동과 임대동을 구분하고, 편의시설을 임대동에게 불리한 곳에 있게 하면서 갈등을 야기했고, 원래 목표였던 사회적 통합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아파트를 재산으로 여기는 시각 아래에서 임대주택과의 혼합으로 인하여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이는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리적인 혼합이 어려우며,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뿌리 깊은 임대주택 차별문제는 빈곤에 대한 혐오와 얽혀있다. 과거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학교 가는 지름길을 막아버린 모 아파트의 사례를 떠올리면 아이들에게까지도 혐오 원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빈곤 혐오가 여러 표현으로 표출되면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최근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성별, 성적지향, 인종 등 전통적인 차별금지대상 범위뿐만 아니라 ‘경제적 차별’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사실 주거와 빈곤, 그리고 차별의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부동산은 우리나라의 만고불변한 뜨거운 감자이다. 특히 재개발을 통해 시세차익을 누렸다는 ‘아는 사람’의 소식은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할 만한 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재개발을 둘러싼 욕망에 지속적으로 집중해온 소설가 김혜진은 『불과 나의 자서전』을 통해 문제의식을 본격화한다. 김혜진은 본 소설을 통해 재개발의 옳고 그름과 윤리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불과 나의 자서전』은 경제상황에 따른 위선적 의식이 대를 이어 반복되어 왔으며 경제적 지위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사회에서 진정한 관계의 단절을 초래함을 보여준다. 결국 이 모든 복잡한 관계와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문제로 인하여 발생한 허위의식을 걷어내고 우리의 내면과 마주하게 만든다.
 

2.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

자서전은 홍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홍이는 직장 내에서 따돌림당하는 사람을 챙겨주다가 나중에 같이 따돌림을 당하게 된 상처로 회사를 그만두고, 그로 인하여 얻게 된 알레르기 치료를 받으며 쉬고 있다. 그녀는 원래 남일동에 살았다. 남일동은 늘 재개발에 대한 논의가 바람처럼 떠돌다 사라지는 낙후된 동네다. 그녀의 아버지는 무리하게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 남일동을 벗어나려 하지만, 그의 노력 자체로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홍이가 살던 집이 남일동이 아닌 중앙동으로 편입되면서 남일동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후 아버지는 남일동에 살았던 시절을 완전히 잊은 사람처럼 행동한다.(26쪽) 한편, 퇴사한 홍이는 알레르기가 도질 때마다 남일동에 있는 제일약국에서 약을 타고, 차를 마시며 쉬곤 한다. 제일약국에서 남일동에 이사 온 싱글맘 주해와 딸 수아를 만나게 된다. 만남이 잦아질수록 주해와 홍이는 내적 교류를 하며 친밀감을 쌓고, 홍이는 일을 나간 주해를 대신해 수아를 돌보면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주해는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싱글맘인 그녀를 두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 마을버스를 들여오고, 가로등을 설치하며 마을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나의 자서전은 나와 주해, 그리고 수아가 남일동에서 겪는 일과 어릴 적 내가 실제로 남일동에서 겪은 일을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아버지는 조달청의 하청업체에 근무하면서 많은 돈을 벌어오지 못했고, 홍이네 가족은 남일동에서 가장 위에, 그리고 낙후된 곳에 위치한 달산에 살게 되었다. 아버지의 수입만으로 부족하기에 어머니는 일을 나가셨고, 나는 종종 남일동 아이들, 특히 가게를 운영하는 집 아이들과 종종 놀았다. 어머니는 특히 그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엄연히 홍이는 가겟집 애도 아니고, 보살피는 부모가 없는 애도 아니기 때문에,(22쪽) 홍이가 그 아이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작은 동네 남일동에서도 구별짓기의 논리는 작동함을 보여준다. 홍이네 부모는 남일동에 살면서도 자신은 이 동네 사람들과 다르고 달라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렇기에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살면서 스스로를 지옥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만든 빈곤과 주거의 구획화를 통해 스스로를 남일동이라는 가난한 동네에 살고 있지만, 자신은 아니라는 분열된 의식이 가져온 자기모순과 자기환멸이었다. 부모세대의 인식은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홍이의 무의식에 스며들도록 자극하지만 이러한 차별적 인식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은 그녀의 알레르기라는 반응을 통해 발현된다.

홍이가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보호했던 것은 어릴 적 중앙동에 살았지만, 남일동 출신이라는 이유로 ‘남토(남일동 토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과거와 연유한다. 한편 수아 역시도 중앙동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남민(남일동에 사는 난민)’이라는 멸칭을 가진다. 행정지역을 넘어선 실질적, 정신적 구획화는 유효하게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게 작용한다. 사실 모두 알고 있다. 아이들이 내재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어른들의 수군거림과 차별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을.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가치는 훨씬 더 높은 전염성으로 중앙동에, 중앙동의 멸시를 받아들인 남일동에 팬데믹처럼 퍼진다.

사실 수아가 중앙초(중앙동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초등학교)를 그냥 입학한 것은 아니었다. 거리상으로 중앙초가 명백히 가까웠지만, 남일동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남일동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로 배정된 수아를 중앙초로 배정하기 위해 주해는 교감에게 이것은 부당한 일이며 해결되지 않으면 교육부에 민원을 넣겠다는 으름장을 통해 어렵게 배정된 것이었다.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홍이는 그녀가 아끼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수아가 중앙초에 입학했으면 하는 마음에 놀란다. 그것은 자신의 부모를 비롯한 중앙동 사람들이 비밀스럽게 공유하는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이다.(111쪽) 우리나라의 집값 열풍을 가장 앞장서서 주도하고 있는 ‘학군’뿐만 아니라 ‘못사는’ 남일동이 아닌 ‘잘사는’ 중앙동으로, 상위 계급적 질서로 편입되었으면 하는 내심을 반영한다. 부모는 자식이 자신보다 더 잘 살길 바란다. 이런 부모의 사랑과 경제적 구별짓기의 논리가 결합하여 혼종의 재개발, 부동산의 역사를 형성했다. 차별의 역사는 그대로 아이에게 전승된다.
 

3. 불안은 욕망을 먹고 자란다

최근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 현상은 집값이 계속해서 오르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부동산이 계속 상승하고, 청년들은 지금 사지 않으면 영영 사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무리해서 대출을 받고 집을 산다. 젊은이의 불안감은 홍이 아버지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였다. 아버지는 무리하게 은행 빚을 내는 부담을 감수하고, 경매에 뛰어들고, 무리하게 집을 사고팔며 남일동을 악착같이 떠나가려 한다.(29-30쪽) 그러나 일련의 모든 과정은 단순히 집을 사고파는 물리적인 행위로 설명되지 않는다. 홍이네 집은 경매로 집을 구입하지만 경매로 넘어온 이웃집을 샀다는 이웃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 경매라는 치열하고 정당한 과정을 거쳐 구입한 단독주택이었지만, 홍이는 그것이 누군가의 슬픔과 불행을 목격하는 대가라는 것을 훗날 깨닫게 된다.(81쪽) 주거와 투자가 흑백으로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홍이 아버지는 집이 가족의 마지막 성공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보통 사람이다. 사실 아버지의 노력만으로 남일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행정 구역 개편이라는 운에 따라 중앙동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홍이 아버지는 그것을 운이 아닌 자신의 노력으로 포장하면서 성공 신화로 개편한다.

계급적, 주거 불안을 통해 얻은 집은 그곳에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두려움의 존재이다. 홍이 어머니에게 집은 도무지 손 안에 쥐어지지 않고, 어떻게 해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않으며, 그럼에도 결코 포기되지 않는 존재였다. 집을 둘러싸고 오기와 고집, 집념과 집착이 집을 산 후에도 여전히 어지러이 얽혀있었기 때문이다.(122-123쪽) 즉 집으로 표상된 계급적 욕망은 쟁취하고 싶지만 온전히 쥘 수 없고, 잡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상실의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홍이는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목격했던 불안을 주해에게서도 발견한다. 주해는 재개발 추진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면, 수아가 받는 차별도, 집 없는 불안도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부모에게서 발견했던 욕망을 그동안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교류했던 주해에게서도 발견하자 홍이는 묘한 기시감과 이질감을 느낀다. 그러나 주해는 홍이는 ‘중앙동’에서 온 사람이며 자신은 ‘남일동’ 소속이기 때문에 홍이가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상정한다. 그저 행정구역상 명칭이었던 중앙동과 남일동은 개인의 정체성화되어 진정한 관계의 단절을 초래한다. 혹은 여유가 없는 각박한 사회 속에서 홍이는 주해보다 나은 입장에 있었고, 생존과 양육에 내몰린 주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무언가를 옳다, 그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어디까지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여유가 없이 당장 오늘, 내일만을 궁리하고 있는 사람에게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되기도 한다.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경제적 위치, 정체성 속에 갇혀 소통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다.

홍이가 ‘알고 있던 주해’가 균열되는 지점은 단지 그 사건뿐이 아니었다. 재개발 추진 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던 주해에게 남자들이 찾아와 멱살을 잡고 고성을 지른다. 과거 주해가 간호사로 있던 신생아 병동에서 아기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주해는 수아는 쫓기듯 남일동까지 오게 된 것이다. 주해는 자신이 이혼하고 수아를 혼자 키우는 것이 벌 받는 걸지도 모른다는 말을 통해(59쪽)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보여주지만, 결국 자신은 병원이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150쪽)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부당하다고 느낀다. 이처럼 김혜진은 인간의 다면성을 노래해 왔다. 팍팍한 생활과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발버둥 치는 개인이 늘 옳거나 그른 실체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불안에 흔들리는 개인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욕망’이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제거하고 보면 홍이의 부모와 주해가 가졌던 것은 그릇된 욕망보다 그저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이었다. ‘남들보다’ 현격히 부족하지 않고, 자신의 딸이 모욕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그런 슴슴한 삶 말이다. 그저 남들만큼만, 남들처럼을 외치면서 타자의 욕망을 모방한 삶은 불안과 현실의 불안정성이 결합되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만들게 된다.
 

4.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나요?

결국 시대적 욕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홍이의 알레르기는 물리적인 불길이 되어 남일동으로 번진다. 홍이는 건자재로 남일동에 불을 내면서 불이 남일동 전체를 휩쓸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 안에 똬리를 틀고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던 불안과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 그리고 남일동이 홍이 부모의 가슴 속에 드리우고 홍이에게까지 이어져 왔던 그늘을 지워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168쪽) 이 자서전은 홍이가 불을 내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홍이가 지핀 불길은 극히 일부에서만 번지다가 소화(消火)된다. 이것은 타오르는 불로도 소각하지 못하는 욕망의 씨앗과 잠들지 않는 한국 사회의 불안이며, 나와 너의 구분을 끝내 극복할 수 없었던 불가능성의 포효이다.

주해와 수아는 결국 그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에 쫓겨 머나 먼 곳으로 이주했다. 결론을 바꾸어 만약 주해의 노력으로 재개발이 이루어져 아파트에 주해와 수아가 입주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수아는 ‘남민’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홍이가 얻었던 ‘남토’의 악몽이 다시 반복되었을지 모른다. 상상력을 좀 더 넓혀보자. ‘중앙동’ 사람들은 차별의 주체이기만 하고 객체는 아닌가? 중앙동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동네는 또 다른 계급을 축조하고, 이것은 계속해서 뻗어나가면서 무한한 우월감과 열등감을 형성한다. 주거 환경을 통한 경제적 지위로 얻어낸 우월감은 얼마나 얄팍하고 가냘픈가. 현재 대한민국의 지도는 단지 부자와 빈자와의 관계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역사적으로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부동산(富動産)과 재개발이라는 변수 앞에서 좌절과 희망이 얼룩진 복잡한 관계도인 것이다.

2003년부터 시행된 소셜 믹스(social mix) 정책은 앞서 언급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 보완을 거듭하고 있고, 혐오 표현을 근절하려는 노력은 각지에서 이루어지는 중이다. 그러나 김혜진은 『불과 나의 자서전』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경제적 지위를 비롯한 정체성을 막론하고, 인식적 차원에서의 소셜 믹스는 가능한가? 이제 우리의 가난과 주거환경에 얽힌 뿌리 깊은 편견과 얄팍한 우월, 열등의식의 먼지를 털어내고 이제는 스스로에게, 공동체에게 질문을 던질 차례다.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가 될 수 있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