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대상] 가짜 판별법
[2020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대상] 가짜 판별법
  • 오정우<경영대 경영학부 17> 씨
  • 승인 2020.11.30
  • 호수 1522
  • 6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러 프레임이 겹쳐진 모양의 SNS 앱을 누르고 검색창에 해시태그(#)를 입력했다. “H사”를 검색하자 동시에 “H사”, "H사스타벅스", “H사맛집”, “H사OOO기자” 등이 나열되었다. H사와 관련된 인기게시물을 훑어보며 필요한 정보들을 선별하자 대략적인 회사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강남에서 신사로 가는 대로에 위치한 회사는 정제된 느낌의 커튼월 빌딩이었다. 보통의 건물과는 달리 상층부로 갈수록 끝이 뾰족해 흔히 고딕 양식에서나 볼 법한 첨탑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지하철역에서 5분 내로 도착할 수 있을 거리였기에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화장실이 깔끔해서 점심을 먹고 화장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중 창문이 없이 개방된 중상층에는 개나리와 진달래, 동백꽃과 회양목이 어우러져 화사하게 조성된 정원이 있었다.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되었다는 토막글과 함께 편안한 휴식처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피드가 달렸다. H사만의 독자성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란 우월감에 사로잡혀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 뒤로 해시태그가 남발된 게시물들을 빠르게 넘겨보았다. 직장인들이 근무 후기를 올리지 않아 사내 문화를 알아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더 찾아내는 것은 무리였고, 자연스레 회사 주변 맛집을 검색했다. 여러 칵테일 바와 감성 호프집, 치킨을 취급하는 가게가 난무하는 가운데 회사 바로 앞에 위치한 맛집에 의외로 토스트 가게가 포함되었다. 건물에서 200미터 가량 떨어진 카페는 크로크무슈(croque monsieur)라는 프랑스어에 어울리지 않는 저렴한 가격(2000원)과 내용물을 자랑했다. 보정이나 필터가 없는 사진만 보더라도 싸구려 맛과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벌써부터 크로크무슈(싸구려 토스트)를 달고 출근할 인턴 생활을 그려보니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이상의 게시물들을 보는 건 아무래도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차라리 옷이나 맞춰보자는 마음으로 헹거에 걸린 옷들을 하나씩 걸쳐 보았다. 1시간을 비교한 끝에 무난한 블랙 싱글 정장 한 벌로 결정했다. 1시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다소 차분한 의상 결정한 나는 지갑이나 가방으로 포인트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워섬긴 나머지 옷들을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가방에 눈길을 돌렸다. 그 중 고야드의 패턴이 크게 박힌 핸드백이 눈에 띄었다. 똑같은 문양이 무수히 반복되어 착시효과를 일으킨다는 고야드의 로고를 보며 잠시간 클러치백이 가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사실 고야드백은 진품이 아니었고,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 떠올랐다. 그리고 왠지 방금 전에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혹시나 SNS인가. “#H사”를 검색해보니 스크롤 밑으로 “#H사 장민헌 아나운서”가 있었다. 3년 만에 보는 이름이었다.

소속변경을 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처음으로 한 것은 새로 부여 받은 학번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커뮤니티 속 익명의 글쓴이들이 남긴 소속변경 후기에서 하나같이 ‘학번’을 먼저 확인해보라고 적혀 있었다. 서울캠퍼스와 분교캠퍼스는 입학 시 학번의 첫 숫자가 다르지만, 소속변경을 통해 편입을 하게 되면 그 기록이 말소된다고 적혀 있었다. 떨리는 마음에 와이파이를 끄고 데이터를 틀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2. 여러 번 새로고침을 눌러봐도 2로 시작하는 학번은 바뀌지 않았다. 학사 홈페이지에 전화를 걸기 전 마지막으로 눌렀을 때 오랜 로딩 시간 끝에 학번이 바뀌었다. 1과 서울캠퍼스. 지난 1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그들과 똑같은 숫자로 탈바꿈되었다. 깔끔하게 지워진 숫자는 지난 1년의 추억들을 심지어 아름답게 희석시켰다. 희붐한 빛이 드리운 분교캠퍼스의 생활은 아득한 과거로, 나와 무관한 것 같았다. 감격은 감동을 미루었고 동시에 시련의 설움의 감정이 떠올랐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분교캠퍼스와 관련된 SNS 게시물과 메신저의 프로필을 모두 지웠다. 아직 분교캠퍼스에서 술을 퍼마실 동기들과 과 동아리 후배정도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나의 과거를 기억할 것이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잠시나마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나 자신을 새롭다고, 그들과는 다르다고 여긴다면 그런 흔적은 애초에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나는 이제 예전의 나와는 다르다고 끊임없이 되뇌이고 믿어야만 했다.

커뮤니티에 접속해 소속을 서울캠으로 바꾸고 게시판을 탐독했다. 분캠 게시판과는 달리 인문학적 주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글도 있었고, 현 정책에 대한 뜨거운 논쟁과 댓글이 잇달았다. 나도 익명으로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싼 거 같다는 댓글을 남겼다. 그에 대한 반박과 근거를 요구하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나는 마땅한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으나 합리적인 말이 좀체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학생정보에서 학번을 검색했다. 나는 그들과 같이 1로 시작하는 학번을 가지고는 있었다. ‘가짜’에 대한 낙인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나는 방학 동안 공부를 하고 서울캠 근처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생활양식을 따라하면 그들과 엇비슷해질 수 있을 것이라 다독였다.

개강 전 서울캠을 돌아다니며 가장 좋았던 점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었다. 캠퍼스를 매일같이 돌아다니자 숨은 길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땅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쳐다보며 걷게 되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전과는 달리 책을 빌릴 때 분교캠인 것을 밝히지 않아도 되었고, 그에 따른 은근한 경멸을 받지 않게 되었다. 무시의 눈빛을 분교캠에 돌아올 때에는 서울캠의 학생이 된 나를 꿈꾸고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럴 때마다 오직 나만이 분캠을 탈출할 수 있을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은연중에 성적이 좋지 않은 친구들을 멸시했고,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은 더욱 우스워보였다. 간혹 소속변경을 노리고 분캠에 들어와서 학점을 노리는 나 같은 경우가 있었고 대개 안여돼(안경여드름돼지)나 편입충으로 불렸다. 신기한 것은 놀림을 당하는 쪽도, 그렇게 매도하는 쪽도 서로에 대해 거리감을 두었다는 것이다. 전자는 은근한 경멸에 찬 눈빛을, 후자는 보통 외적인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 중간에 기생해 덕을 본 편이었다. 전자에 속하지 않는 척 문학 독서모임 동아리에 들어갔고, 그 결과로 SNS 팔로워 200명의 숫자를 얻었다. 다만 회식 자리에는 여러 이유로 빠지고는 남몰래 학점관리를 했다. 철저한 위장술과 친목을 바탕으로 한 처세술로 모두를 제치고 1년 만에 학과 1등이라는 결과를 손에 얻었다. 다음 학기 장학금과 학비 전액 면제를 알리는 고지서가 전달된 날, 나는 소속변경을 신청했다. 이튿날 바로 면접을 통지받고 이틀 뒤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막상 교수들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자네는 경영학과에 들어와서 어떤 분야를 전공하고 싶나.’ ‘학과 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학점도 좋구만. 거기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었나’ 등의 뻔한 질문에 과대계상한 가치를 창출해 대답했다. 그들은 흡족해하며 바로 서울캠퍼스에서 보자는 말을 남겼다. 감정은 해묵었으나 이에 대한 해소와 승화의 과정은 길지 않았고, 맥이 빠진 허무가 감정의 공백을 더듬었다.

개강을 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팀플을 하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2명의 조원은 컴퓨터공학과 동기였다. 그들은 나를 사이에 두고 지나치게 서울캠의 공과대학다운 지식을 뽐내며 어려운 용어를 사용했다. 그렇게 아무 말도 못하고 겉돌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은 학교 앞 빙수 카페에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친근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인사치레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어김없이 ‘C언어’로 화제를 시작했다. 나는 이해하지도 못하는 용어의 향연에 나는 무의미한 끄덕거림과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반복했다.

“그런데 연희씨 무슨 과였죠?”

나는 빙수를 한 술 털어 넣으며 “경영학부”라는 말을 삼켰다.

“아 그래요? 혹시 들어올 때 수시로 오셨어요, 아니면 정시로 오셨어요?.”

“저는 정시로 들어왔어요.”

“와 공부 잘했나 보네요. 저는 그냥 학생부로 승부 봤거든요. 정시 진짜 완전 리스펙.”

나는 손사래치며 다들 똑같은 학교인데 그런 게 어디있냐며 점잔을 뺐다.

“아니 요즘 분캠 애들이 무슨 지네 주제도 모르고 I대면 같은 I대지 첫째와 둘째를 차별하는 게 어디있냐고 설쳐대서요. 가끔 알바 같이 하다 보면 분캠인 주제에 I대라고 먼저 말하는 놈들 있어서 꼴볼견이에요 진짜. 커뮤니티에서 주워들은 건 또 많아서 흠 잡힐 만한 건 싹 다 피해서 말하더라구요.”

“그러니까, 나는 특히 논술충이나 특별 전형이 온 애들이 설칠 때가 리얼 극혐이야. 같은 대학 다닌다고 다 똑같은 줄 아나봐. 명백히 수시 정시로 들어온 애들이랑 논술로 들어온 애들은 학력 수준부터 딱 봐도 다른데. 웃긴 건 또 그런 애들이 얼굴은 반반해서 꼭 어디가서 I대 다닌다고 티는 다 내요. 머리 텅텅인 건 안 부끄럽나 봐.”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나머지 빙수를 털어 넣었다. 자취방에서 나는 화장실로 급하게 들어가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머리가 띵했다. 한 차례 더 역류하는 토사물에 입 안이 시큰거렸다. 비릿한 패배감과 동시에 어디에도 끼지 못한 것만 같은 배덕감이 전신에 아른거렸다. 눈앞이 흐려지고 희미한 조명 아래로 거울을 응시했다. 여전히 입에서 알싸한 내음의 토사물이 아른거렸지만, 그럼에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조커처럼, 양 손가락으로 쳐진 입꼬리를 일부러 치켜 올려봤다. 입은 웃고 눈은 우는 기이한 몰골의 섬뜩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이윽고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강혜정이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강혜정을 안고 있는 최민식이 웃는지 우는지도 불명확한 라스트 신. 진실을 알게 된 자의 최후. 부질없는 후회와 허탈함이 묻어나는 나레이션. 웃어라 세상이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계속 치켜올려진 볼이 미어져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그 때 자조하며 웃었던 것일까 처량히 울었던 것일까.

장민헌을 만난 건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을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스 신화와 문화라는 교양은 첫 주부터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영화를 2시간 동안 감상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과제를 요구했다. 갈수록 수업은 일련의 연관성을 갖지 못했다. 매주 바뀌는 주제, 피드백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노교수, 노트북을 킨 채 메신저로 대화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다수의 학생들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유일하게 노교수만이 일관성을 보였다. 그는 매주 후줄근한 검은색 정장과 넓게 뻗친 옷깃의 셔츠를 입고 왔다. 그 쯤이면 학교 연구실에서 숙직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혹시 빨래도 안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집에서도 계속 입고 있나. 분캠 시절 동아리에서 현대미술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누군가 던진 농담이 떠올랐다. “독일 현대미술의 대가인 요제프 보이스는 항상 모자를 쓰고 미술을 했는데 심지어는 섹스를 할 때에도 모자를 썼다”는 요상한 추문을 떠올릴 때 어디선가 내 이름이 불리고 있었다.

“멍 때리고 있는 학생. 뭘 두리번거리나. 그래 자네 이름이랑 과가 뭐지?”

당황한 마음에 나는 ‘1’로 시작하는 학번을 답해버렸다.

“누가 학번을 물어봤나 학과가 뭐냐고.”

“경영학부입니다.”

“⌜오디세이아⌟와 ⌜율리시스⌟의 공통점과 오디세우스가 모더니즘에 미친 영향이 뭔지 말해보게나.”

학생들은 무료한 와중에 가련한 희생물(나)이 쩔쩔매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전전긍긍해 하며 적막이 이어지는 때였다.

“교수님, 요즘 국문과도 율리시스를 읽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학생들도 거의 모르는 것 같은데 혹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자네는 이름이 뭐지.”

“병장... 국문과 장민헌입니다.”

크롭컷의 짧은 머리에 어절마다 분절되는 말투의 장민현은 ‘병장’을 말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쭈그러들었다. 교수는 난데없는 반격에 제임스 조이스와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3대 작가라는 앨리엇과 예이츠를 연이어 설명하며 그들의 우수함에 대한 강론을 늘어놓았다. 수업 내용은 진작에 들리지 않았고 필기를 하는 척하며 이따금씩 장민현 쪽으로 고개를 힐끔거렸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때의 나는 그 역시 무언가 결여된 사람임을 직감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좇아 기다렸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어려웠고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더 고민되었다. 장민헌은, 막상, 꽤 무구한 표정을 짓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데이트에 응했다. 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장민헌과 나는 구내식당의 파스타를 먹었다. 인스턴트 면이 불러오는 더부룩함에 자연스레 커피를 마시게 되었고, 취미와 영화, 독서 등에 관한 한담을 나누다가 매끄러운 곡면을 흐르듯 번호를 교환했다.

처음 한 달간은 장민헌의 모든 것이 좋았다.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잡티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와 가늘고 긴 눈썹은 순정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보는 듯했다. 비록 같은 학년이었지만 3살이 많은 그의 앳된 얼굴은 더없이 어려보였다. 세상 물정 모르는 듯한 눈빛과 대조되어 핏줄이 잔뜩 솟아올라 거친 손등. 무엇보다 민헌은 자기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했고, 그러한 태도가 부러웠다. 부족한 지식에 열패감을 드러내거나 크게 쑥스러워하지 않는 자신감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었고 무엇이든 일단 시도해 보았다. 그의 곁에 있으면 나는 사소한 것이라도 단순히 ‘하지 않음’으로 괜히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더욱 불안해졌다. 그가 옆에 없으면 허전했기에 의지해야만 했고, 같이 있으면 나란히 걸어가다가 이내 나를 두고 성큼성큼 나아갈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났다. 명석하지는 않더라도 매사에 적극인 그는 꿈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고 그런 민헌이 멀리 달아날까봐 쫓아가기 급급했다. 한창 축제를 기획하며 바쁜 5월에도 매일 나는 그의 사랑을 갈급했고 민헌은 지친 몸으로 벨트를 끌렀다. 절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민헌은 대신 ‘허니푸드’인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차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MSG맛이 강렬한 인스턴트 파스타를 먹으며 나는 ‘사랑해?’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물었고 어느 날부터 그는 깊은 손길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대답을 대신했다. 종강이 다가오는 무렵에는 연락을 잘 되지 않았고, 예고 없는 회식에서 잔뜩 취해 온 그를 맞이하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하는 체호프의 총처럼, 우리의 이별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방학이 다가오고 나는 대외활동을 알아보고 있었다. 분캠 시절에는 오로지 소속변경과 학점을 위해 살아왔던 터라 알바나 대외활동 경험이 전무했다. 유튜브에서 관련 동영상을 참고해도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었다. 무조건 첫 인상에 결정되는 만큼 시술을 받거나 경력을 쌓으라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이런저런 시도로 50개의 다른 지원서를 준비했지만 고작 다섯 군데에서 연락이 왔을 뿐이었고 그 중 세 곳은 면접 취소가 당일에 통보되었다. 연이은 실패로 우리 사이의 대화는 단조로워졌다. 언론 고시를 준비하는 민헌과 대외활동에 번번이 낙방하는 나 사이에는 이미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없는 기류가 진동했다.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때 연락처 미상의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민헌이가 사정 사정을 해서 넣어주는 만큼 열심히 해주길 기대한다는 문자가 뒤이어 도착했다. 그 날 우리는 자취방에서 격정적인 섹스를 나누고 여지없이 허니푸드인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먹었다. 상을 물리고 민헌은 회색 클러치백을 조용히 건넸다. 평소 직장인 여성들이 많이 매고 다녀 눈여겨 본 브랜드였다.

“고야드야?”

나는 한층 고조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뜸을 들이며 오랜만에 웃음을 보였다.

“이제 대외활동하니까.” 그는 눈을 바로 뜨며 “진짜 고야드를 사주고 싶었는데 용돈이 조금 부족해서... 지민이가 마침 명품 리셀하는 게 취미라 구해 왔어.”

“근데 이거 진짜 아닌 거 같은데? 안에 가죽 질감도 조금 이상하고 패턴도 조금 다른 거 같고. 이럴거면 그냥 보세에서 사지. 요즘 짝퉁인 거 여자애들은 다 구별하는데.” 나는 볼멘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미안, 나는 잘 모르니까. 그래도 비슷하잖아. 다음에 내가 입사하면 진짜로 예쁜 클러치백 하나 사줄게. 조금만 기다려줘.”

나는 그의 그런 태도가 일순 혐오스러웠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홀로 성공 가도에 도달할 것 같은, 그리고 나의 무능력을 은근히 비난하는 듯한 말투.

“가짜가 무슨 의미가 있어. 너 이러는 거보면 가끔 나 엿 먹이는 거 같아. 내가 분캠이니까, 가짜니까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는 구색 같이 보인다고, 구질구질하게. 그리고 왜 너만 사? 나도 성공해서 내가 살 거야. 꼭 네가 성공해서 사줘야 돼, 너만? 아니면 요즘 다른 사람 만나? 지민이? 그 년은 누군데 또. 출판사 선배한테 부탁할 때처럼 걔한테도 나 뭐 분캠 다녔다고 온 동네방네 소문 낸 거야?”

“아니 왜 항상 그런 식인건데.”

“네가 그렇게 나를 만들잖아.”

민헌은 먹다 남은 파스타를 싱크대에 처박고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몇 시간이 지나도 전화를 받지 않는 민헌에 울면서 메시지를 남겼지만 끝내 답장은 오지 않았다. 연애를 하면서 처음에 느꼈던 행복의 감정은 말미에 불행으로 곡해되어 얼룩졌고 미련만이 큰 낙차를 그려나갔다. 대외활동을 마치고 자취방에 돌아올 때 혼자 걷는 거리가 어색했고, 민헌의 운동화가 차지하는 너비만큼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의 생각이 나서 더 이상 파스타를 먹지 못했고, 자주 끼니를 거르게 되었다.

자신을 인사팀 과장이라고 소개하고 그는 회사 매뉴얼과 사원증을 나눠주었다.

“다들 저번 주에 합격문자를 받으면서 일할 부서도 같이 통지받았을 겁니다. 사원증을 하나 보여줄게요. 김동명씨네요. 김동명씨는 기획팀 인턴으로 적혀있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그는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빨간색 줄의 사원증을 건네받았다. 다른 입사 동기들이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눈치를 보며 스마트폰을 켰다. 분명 합격문자를 받을 때 부서는 적혀있지 않았다. 인트라넷 공지와 문자를 확인해도 별 단서는 없었다.

“사원증을 다 받으셨으면 마지막으로 공지하나만 할게요. 모두 일하는 동안 일종의 평가를 받게 되는데, 그 성과에 따라 사원으로의 계약 연장 여부가 결정될 겁니다. 물론 소량의 성과급이나 상여금도 주어집니다. 잠정적으로는 각 부서 당 한 명 씩 계약이 연장될 거 같은데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 모두 힘내 주시길 바라고 질문 없으면 교육을 마치겠습니다.”

모두가 사원증을 받고 자켓을 걸쳐 입으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회의장에는 다른 여자 동기 한 명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뜯어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차에 교육을 마친 과장이 우리를 쳐다봤다.

“무슨 일들이신가요?”

“아 저는 사원증에 부서가 적혀 있지 않아서 남았어요. 제가 합격문자를 받았을 때는 부서가 적혀 있지 않았고 교육 대상자라고 적혀있었거든요.”

“그 옆에도요?”

‘그 옆’의 나는 대답을 삼키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은 합격 명단이 적힌 엑셀시트를 들여다보며 안경을 고쳐 썼다. 엑셀을 힐끔 보니 두 개의 셀에 ‘#N/A’가 빨간 글씨로 볼드 처리되어 있었다. 실체적인 값이 존재하지 않는 셀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우리를 번갈아 본 그는 전화를 마치고 8층으로 올라가보라고 했다.

“부서는요?”

부서에 끈질기게 집착하는 그녀를 쏘아보고 그는 “가짜뉴스 판별팀”이라는 말과 함께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주섬주섬 서류를 들고 만원의 엘리베이터를 포기했다. 대신 비상계단으로 층계를 올라가며 여러 생각이 교차되었다. 가짜뉴스 판별팀은 무슨 부서일까. 동시에 왜 우리만 부서가 없었을까.

8층에 올라가자 예상보다 초라한 사무실에 당황했다. 아무도 우리를 반기지 않았고, 우리의 자리로 예상되는 책상에는 서류가 어지럽혀 있었다. 복도와 가까워 슬리퍼 소리가 끊임없이 신경을 거슬렸으며 화장실의 방향제 냄새가 코를 찔러 정신이 혼미해졌다. 우리는 나란히 배열된 자리에 아무렇게 앉고 일단 사무비품과 파일철들을 정리했다. 막 정리를 시작할 때 옆에 있던 인사팀 사원은 “쌈바”에 가보라는 말을 넌지시 건넸다.

“쌈바가 뭔가요?”

“담배를 쌈배라고 돌려서 말하는 거구, 담배피는 바(bar)예요. 쉼터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쌈바에 도착하니 사진에서 본 정원의 실체가 드러났다. 꽃들 사이로 자욱한 담배의 연기가 옷자락에 배어 코를 찡그리게 했다. 마치 브라질의 쌈바 축제처럼, 정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담배를 물고 광란의 흡연과 욕설이 오가는 대화를 떠들고 있었다. 목조 갑판을 걷고 있을 때 상아색 파라솔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를 발견하자 가장 어려보이는 남자는 작은 목소리로 부장에게 ‘새로운 인턴’이라고 눈치를 줬다. 부장은 가득 풀어진 넥타이를 고쳐 매며 일부러 텐션을 높였다.

“쌈바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우리 부서에 들어온 거 축하해요. 그래, 일단 여기 좀 앉아봐요.”

김대리가 커피를 타러 간 사이 부장은 회사의 비전과 핵심가치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할 말이 고갈됐는지 입맛을 다시던 그는 우리에게 화제를 돌렸다.

“얼굴은 봤으니 간단히 연희씨부터 차례로 자기소개랑 포부 뭐 그런 거 좀 한번 얘기해볼까요.”

나는 간단히 이름과 학교에 대한 것들을 나열하고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지 말하며 기대감을 표출했다. 옆에 있던 그녀는 갑자기 치마를 한 손으로 잡고 일어나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H사 인턴으로 뽑힌 차시영입니다. 저도 연희씨랑 동문입니다. 저는 사회학과 나왔구, 취미는 당구랑 밤에 산책하고 캔맥주 마시기입니다. 집이 성수 근처여서 오래까지 일하고 더 오래 남아서 마실 수도 있습니다. 불러만 주시면 어디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인턴 차시영에서 사원 차시영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흥미를 보이지 않던 부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옆에서 눈치를 보던 대리와 사원도 덩달아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기보다 한 발 뒤쳐졌다는 데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뒤미처 밀려들었다. 바닥을 보이는 종이컵 속 믹스커피가 유난히 떨떠름했다. 상사들이 남기고 간 종이컵을 버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체계적인 분위기의 인사팀과 여유로운 우리 부서 사이로 우리는 눈치만 가만히 보고 있었다. 2시간에 걸친 잔업과 무관심한 태도에 지쳐갈 무렵 사내 방송이 크게 울렸다. 그러자 부장은 이제야 우리의 존재를 인식한 듯이 법인카드를 건넸다.

“시영씨? 아직 월초니까 너무 많이 쓰지는 말고 점심이나 한 끼 해결하고 와요 둘이. 아 참 올 때 우리 커피랑 빵 좀 사오면 좋고요. 그 이름이 뭐였더라? 여하튼 프랑스어로 된 간판이 있으니까 거기서 사오면 돼요.”

소문의 크로크무슈 가게 앞에 다다랐다. 크로크무슈(를 가장한 싸구려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답게 간판은 “Vous allez Boulangerie”의 프랑스어였다. 누가 굳이 “Vous allez Boulangerie(부잘레불란저히)”라는 어려운 말을 써가며 싸구려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자는 말을 할까. 가게에 들어가자 조악한 기름 냄새가 풍겨왔다. 유동인구와 빠른 회전율을 고려한 탓인지 목조의 딱딱한 월넛 의자가 하나씩 배열되어 있었다. 음악 역시 카페에서 나올 법한 빌보드 차트의 팝송이 아닌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틀어졌다. 모든 요소들이 부조화된 가게에서 유일하게 적합한 가격을 자랑하는 크로크무슈. 우리는 부장의 은근한 눈치를 기억하고 첫날은 빵으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샌드위치와 커피가 나왔다. 먼저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예상했던 대로 합리적인 가격의 맹점이 드러났다. 원샷에 물을 많이 태운 인스턴트 아메리카노였다. 샌드위치는 예상 외로 맛이 괜찮았다. 적당히 잘 구워진 빵의 바삭함과 계피가루가 은은하게 뿌려진 햄과 치즈.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요소들이 겹쳐도 걸작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일까. 시영은 햄과 치즈 사이사이 섞인 양배추를 우적거리며 허겁지겁 커피를 들이켰다.

“연희씨, 혹시 인턴 들어오기 전에 어떤 활동 해봤어요? 동아리나 뭐 대외활동 같은 거요.”

“아 저는 SNS로 출판사 책 읽고 후기 남기는 홍보단 했었어요. 홍보활동 하면서 글 쓰고 올리는 게 재밌어서 여기 인턴 지원했어요.”

“글쎄, 아까 분위기보면 저희 부서 조금 노답인 거 같던데요. 부장은 뭐 야동이나 보는지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도 못 들었어요. 과장이나 대리도 뭐 한 시간마다 담배 피러 가고.”

그녀는 고개를 좌우를 살피며 테이블에 몸을 더 바투 붙였다.

“그래도 저희 부서는 인원도 적고 할 일도 많지는 않아 보이니까 좀만 열심히 하면 둘 다 사원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요? 저는 연희씨랑 같이 힘내서 꼭 사원되고 싶거든요. 페이도 괜찮고 언론사다 보니까 복리후생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서요.”

그녀가 사내 복지에 관하여 장광설을 늘어놓을 때 카페 문이 열렸다. 옆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장민헌은 후배 아나운서에게 다정히 “뭐 먹을래?”라며 지갑을 꺼냈다. 예의 나에게 보였던 그 순진한 눈빛으로. 3년 전보다 한층 안정된 음정의 목소리로 테이크아웃 주문을 했다. 3년 만에 다시 보는 민헌의 모습에 꽤나 위화감이 들었다. 단정하게 포마드를 한 머리, 낮은 목소리, 후줄근한 후드티 대신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까지. 여전한 것은 그의 눈빛뿐이었다. 눈물을 조금 닦아내고 화장을 고쳤을 때 이미 그들은 나가고 없었다. 우리는 부장의 심부름인 빵 3개와 커피 3잔을 테이크아웃하고 1시 반에 맞춰 사무실에 들어갔다.

우리는 포장한 음식을 싸들고 쌈바로 향했다. 대리는 샌드위치를 한 조각 베어 물며 우리의 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짜뉴스 판별팀 매뉴얼’이라고 적힌 제본파일을 넘겨주었다.

“자 인턴들, 편의상 말을 좀 놓을게요. 먼저 가짜뉴스 판별의 5원칙은 꼭 윤독하도록 해. 첫째, 근거나 출처가 제시되어 있는지 확인해라. 둘째, 기사를 작성한 언론사가 신뢰할 만한지, 글을 쓴 기자가 믿을 만한지 유의하라. 셋째, 지나치게 자극적인 표현이나 과장된 수치에는 반드시 의심을 하라. 넷째 선입견이나 정치적 편향성을 보이는지 따져봐라.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의심스러울 경우, 모든 기사를 읽지 마.”

우리는 작게 끄덕이고 제본철을 훑어보았다.

“뒤에는 기사를 작성하는 방법이나 형식같은 거고,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적혀 있으니 다 숙지해서 목요일까지 복습해서 와. 넉넉하지? 내가 인턴일 때는 이런 거는 물론이고 심부름도 다 했으니까 뭐 이번 인턴도 잘 하겠죠? 진짜배기만 뽑았다고 들었으니까 뭐.”

“그럼요. 이 정도면 뭐 내일까지도 다 보겠는데요.”

단면인쇄로 8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덮고 시영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대리의 비위를 맞추었다.

쌈바에서 나오며 시영은 인사팀에도 “고생하시는데 커피 드시면서 하세요.”라며 눈웃음을 지었다. 매뉴얼에 온 신경을 쏟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여기저기 필요한 일을 구하고 있었고, 심지어 생수통을 가는 심부름마저 하고 왔다. 그녀는 힘든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고 연신 “그럼요, 또 시키실 일은 없으신가요”를 입에 달았다.

화장을 씻어내고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따서 한 번에 들이켰다. 첫 출근의 긴장감과 흥분이 전신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안경을 낀 채 매뉴얼의 원고를 하나하나 훑어보기 시작했다. 회사 양식을 지키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제목은 HY헤드라인을 써야 했고 본문은 신명조 10~11pt로 통일되었다. 로고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 중 ‘홍보게시판’에 게재되어 있는 양식모음에 준수하여 사진 크기를 준수해야만 했다. 뒤로 넘어갈수록 더 불가해한 항목이 늘어났다. 주관적인 의견에 관한 단어를 사용할 때에 발언의 수위나 해당 인물의 신뢰도에 따라 ‘주장’과 ‘주창’을 구분해서 사용해야 했으며, 되도록 ‘우리말’을 지양하고 대신 ‘한자’ 단어의 활용을 권장하라는 규율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에 의거하면 ‘여겨진다’ 같은 단어도 ‘간주된다’라는 단어로, ‘빠른’과 같은 단어도 ‘신속한’으로 대체되어야 했다. 기사 작성 매뉴얼 뒤로는 각 부서별 기능과 업무현황에 대해 나열되어 있었다. 그 중 ‘가짜뉴스 판별팀’은 신생 부서였으므로 개요에 대한 설명이 지배적이었다. ‘정보의 범람이라는 격랑에 직면해 언론사는 이를 교정하여 자사가 추구하는 기치를 사실로써 천명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본 부서는 다른 부서에서 작성한 기사를 사전에 검열하여 진실의 여하를 판별하고 검토하는 역할을 수임한다.’ 결국 다른 기사 중 틀린 내용을 정정하고 소셜 미디어에 적극 홍보하면 되는 것이 우리의 업무였다. 시영에게는 수정이나 사실 조사와 같은 간단한 부분을 떠넘기면 됐다. 대신에 나는 SNS로 바로잡은 내용을 홍보하고 결과를 확보하는 것이 경력으로나 실적으로나 유리해 보였다. 결국에 진실은 드러난 것들 중 일부의 것이었으므로, 가시적인 성과와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은 나를 돋보일 수 있을 것이라 미소를 지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영이 SNS를 하지 않거나, 적어도 내가 SNS를 더 잘 활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비상연락망을 통해 얻은 번호로 시영의 계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프로필 사진 대신 꽃이 걸려 있었고, 팔로우는 고작 100명 남짓에 불과했다. 그래도 나이도 똑같고 동문인데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팔로워 명단을 보니 I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스크롤을 내릴수록 분캠 시절 동아리를 하며 알음알음 알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 혹시 시영이 분캠일까? 합리적인 의심과 편향된 기대감 사이에서 나는 잠정적으로 그녀를 ‘분캠’으로 낙인을 찍기로 마음을 먹었다. 혹여 분캠이 아니더라도 사내 서열 상 내가 우위를 점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큰 지장이 있지는 않았다.

기사 작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원칙과 단어를 외우며 일주일을 보내던 중, 시영은 엑셀로 각종 지출비 내역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함수를 하나도 사용할 줄 모르는 눈치였다. 일일이 도움말을 참조하고 있자 대리가 간단히 도움을 주었다.

“이런 VLOOKUP 함수는 유용하니까 익혀둬. 그리고 연희씨, 동기가 고생하는데 시간내서 좀 도와줘.”

“아 제가 바빠서 신경을 못 썼나봐요. 유의해서 가르칠게요. 근데 이거 대학교에서 1학년 때 배우지 않았어요? 우리 대학 필수과목이잖아요.”

“아 제가 수업 때 잘 안 들었나 봐요. 이게 이렇게 어렵네요. 참.”

“시영씨, 별 거 아니라고 생각 들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일할 때 한글이랑 엑셀은 필수인데 모르면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같이 일하는 거잖아요. 한글 단축키 간단한 거는 쓸 줄 아시죠?”

“제가 컴퓨터를 별로 안 다뤄서 그런지 잘 모르겠네요. 혹시 도와줄 수 있어요?”

“시영씨, 여기는 직장이에요. 저도 시영씨도 인턴이고 각자 업무도 있는데 언제 제가 하나하나 다 가르쳐 드려요. 모르시면 퇴근하고 따로 독학을 해서라도 다룰 줄 아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시영씨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 인턴 생활에 일해주셨으면 해요. 놀러온 거 아니잖아요.”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모니터 쪽으로 다시 얼굴을 돌렸다. 다시 하나하나 자판을 눌러보고 메모를 하며 그녀는 자신의 진가를 보이려는 듯 했다. 그 때 부장이 그녀가 타주는 커피가 제일이라며 커피를 주문했고, 그녀는 커피를 일일이 갖다주며 나에게 ‘미안해요, 앞으로 열심히 해서 잘할게요:)’라고 적힌 포스트잇과 믹스커피를 건넸다. 나는 포스트잇을 두 번 접어 간이 쓰레기통에 넣었다.

한 달의 견습 기간을 거친 후 사원증과 함께 업무가 할당되었다. 시영은 각종 매체를 종합하여 자료조사를 한 후에 기사의 내용 중 정정해야하는 내용이나 사회적 이슈 중 팩트체크를 하게 되었다. 그녀가 1차적인 검열 과정을 마치면 나는 추가적인 어휘 교열 후에 소셜 미디어에 카드 뉴스 방식으로 정정 내용을 홍보하고 다시 편집부에 기안하는 역할을 맡았다. 처음에는 익숙한 매체인 SNS를 활용하여 십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여건이 꽤나 까다로웠다. 우선은 시영이 적정 시간 내로 자료 조사를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설사 내용을 정정한다고 한들 한자를 자유자재로 변용하고 대체할 수 있을지 불신스러웠다. 그렇다고 최종 결과물인 ‘홍보’를 통한 성과를 포기하고 그녀에게 넘겨주는 것은 신용의 차원이 아닌 혐오의 대상이었다. 결국은 내가 혼자서 모든 몫을 도맡아야한다는 위기감과 동시에 우수함을 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SNS로 젊은 층을 사로잡을 홍보나 나만의 수사적 표현을 넣어 빼어난 묘사력을 보이고자 했다.

오전 11시, 첫 기사가 회사 인트라넷 메시지로 도착했다. 예상대로 시영은 제목부터 뻔한 실수를 저질렀다.

“시영씨.”

시영은 기지개를 피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거 성공리 대신에 성황리라고 써야 되는데.”

“아 무슨 차이죠? 둘 다 어쨌든 잘 끝났다는 의미는 같지 않나요?”

“아니죠. 다르죠. 좀 더 크게 행사가 열렸으니까 성황리라는 표현을 써야죠. 좀 더 풍성한 느낌을 주잖아요. 모르시면 찾아보세요. 그리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표현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는 표현이 올바르겠죠? 매뉴얼에 분명 한자를 최대한 지향하라고 적혀 있는 거 확인 안 했죠?”

“아 그 부분은 대리님께 물어봤더니 저희가 그런 관용어구를 많이 쓴다고 하셔서 그렇게 한 거예요. 매뉴얼을 보긴 했는데 한자 사용이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다음부터는 주의할게요. 고마워요.”

“아니 시영씨 이건 고마워할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그쪽이 잘못 보내주면 제가 한참 동안이나 교정하고 다시 손본 후에 SNS에 올려야 되는 거잖아요. 본인의 실수가 본인만이 아니라 저랑 여기 전부한테 피해 준다는 거 몰라요? 여긴 조직이에요 시영씨.”

“아 죄송합니다. 제가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열심히만 말고 잘해야 되잖아요. 열심히 한다고 사원되는 거 아니고, 성과급 타는 거 아니잖아요, 남들보다 눈에 띌 만큼 잘하고 유일해야 되는 거죠. 못하겠으면 그냥 제가 하라는 대로만 좀 따라 해주세요. 많이 안 바라고 저만 따라 오세요. 괜히 더 뭐 하려고 하지 말고요.”

시영은 혼잣말을 주물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기죽은 그녀가 더욱 부담감을 느끼게끔 큰 타자소리와 한숨을 섞으며 카드 뉴스를 완성했다. PDF파일로 변환한 후 내 이름으로 기안을 올린 후 부장님의 검토와 편집부의 결재를 기다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직전 연락이 왔다. 중간 검토 후 기안이 반려되었다. 편집 어휘 부적합이 그 사유였고, 부장은 문서를 확인하고 나와 시영을 불렀다.

“다른 게 아니라, 우리 회사가 자주 쓰는 관용구가 몇 가지 있어. 예를 들어 ‘비판이 나오다, 들려온다’ 같은 거. 물론 이런 건 매뉴얼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기사를 내보내고 있으니 그렇게 하도록 해. 비판을 제기한다는 표현은 너무 직설적이잖아. 우리 회사가 그런 의견을 낸 거 같은 뉘앙스도 있고 정치적으로도 꼬투리 잡힐 수 있고. 비판이 나오고 들려오는 거는 뭐 출처도 모르고 누구나 그냥 지나가다가 한 말일 수도 있는 거잖아. 특정성도 없고. 얼마나 좋아. 대중의 생각을 충실히 반영하고 그런 사실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보도한다. 그게 진실인 거고 그게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라 이거지. 진실이란 게 뭐 대단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입맛을 채워주되 과하게 MSG만 안 뿌리면 되는 거야. 다른 언론들이 듬뿍 넣은 MSG를 줄여서 좀 더 먹음직스럽고 그럴듯한 기사를 내보내는 게 우리 부서의 일이고. 점심 먹으면서 한번 생각해봐. 우리 팀이 어떤 걸 하는 건지.”

“네 다음부터는 저희가 그런 실수 나오지 않게 해보겠습니다.”

“그래 우리가 간만에 사람 제대로 뽑은 거 같애. 시영씨 봐봐. 뭐든 열심히 하는데 표정도 싹싹해. 연희씨도 점심 먹고 기사 고친 다음에 다시 기안해 올려 놔. 시영씨 열심히 하는데 보조도 잘 하고. 다들 점심 먹고 옵시다.”

사내식당은 리모델링 기간이라 밖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미니 크로스백을 어깨에 걸치고 나가려던 때에 시영은 조심스레 앞머리를 넘기며 다가왔다.

“연희씨 미안한데...”

“아 아니요. 제가 잘못한 건데요 뭐.”

“그게 아니라, 제가 오늘 사원증을 깜빡하고 놔두고 와서... 출입은 어떻게든 하면 되는데 저희 식비는 사원증 보여주고 영수증 끊어오면 공제되잖아요. 그래서 혹시 죄송하지만 사원증 한 번만 빌릴 수 있을까요? 정말 미안해요. 빨리 다녀올게요.”

이게 무슨 병주고 약주고인가 싶어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약 5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차라리 혼자서 기사도 수정할 겸 사원증을 목에서 뺐다. 반려된 공문의 의견란을 보니 ‘단어 사용 부적합’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의 입장에서 적합하지 않은 것일까. 의문을 거듭했지만 내 능력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문제 같아 보였다. 문장을 한 줄씩 읽고 고쳐나갈 때 한 두 명씩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 스쳐지나갔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반이었다. 이대로는 점심도 못 먹을 것 같아 옆 부서의 동기들에게도 연락을 넣어봤지만 이미 식당이라는 답장만 줄줄이 도착했다. 다른 팀 동기들에게도 연락을 보내봤지만 메시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 벌써 점심 시간은 4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여전히 사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주린 배를 잡고 접속 중인 인원의 명단을 확인하다가 순간 멈칫했다.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민헌이 접속해 있었다. 시간이 계속 흐르고 나는 얼떨결에 메시지를 보내고야 말았다.

“시간 나면 밥 사줄래?”

크로크무슈 가게와 보세의 옷 가게 사이 골목에는 파스타 가게가 자리하고 있었다. 검은색 양옥집의 파스타 집은 덱(Deck)에 이어진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문으로 들어서자 올리브 오일 냄새가 진동했고, 자리에 앉자 우리는 동시에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시켰다. 물과 에피타이저가 서빙될 동안 우리는 침묵을 유지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에 바람이 부는 소리를 감상했다. 공허함을 찢는 서늘함에 불현 듯 먼저 물꼬를 틀었다.

“잘 지내?”

“그대로지 뭐. 예뻐졌다?”

“나야 그대로지 뭐.”

적막 사이에 찰리 푸스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We don't talk anymore>. 해묵은 감정과 이별의 시간이라는 낙차만큼 우리의 관계는 멀리 떨어진 것 같았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3년 즉 1000일에 가까운 시간을 서로를 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처럼 보였고, 그에 준하는 어색함이 부유하고 있었다.

“여자 생겼어? 샌드위치 먹으러 같이 있던데.”

“아... 그냥. 친한 후배야. 신하영 아나운서. 카드 안 들고 왔다고 해서 점심 때우는 김에 같이 갔어.”

“친한 후배?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거지 뭐. 밥도 못 먹고 일하는데 너무 불쌍하잖아.”

“아 그런 거였어?” ‘나에 대한 감정도 겨우 동정이었어?’

“어, 아직 어리니까.”

“아나운서 되더니 목소리랑 머리도 바뀌었네. 옛날에는 완전 군인머리였는데 꼭 다른 사람 된 거만 같아.”

“너도 기자되면 더 예뻐질 거야. 괜찮은 사람이랑 선도 좀 보고. 기자되면 괜히 이상하게 집적거리는 남자들 많아질 거야. 나중에 소개시켜 줄까?”

“너는?”

“나는 뭐.”

주문한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가 나오자 우리는 대화를 멈추고 식사에 열중했다. 올리브 향이 새우와 면에 깊숙이 배어 있었다. 한 가닥씩 신중히 고르며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옛날에 네가 만든 거보다는 간이 좀 싱거운데. 그거 맛있었는데.”

“내 거는 불량이었잖아. MSG 넣은 유사 파스타. 원래 진짜 음식 잘하는 곳은 담백해. 미슐랭 3스타도 사실 다 자극적인 맛보다 미각의 본질을 꿰뚫는 맛이어서 미식가들한테만 잘 팔리잖아.”

“그렇긴 해도 나는 아직 싸구려가 입에 맞나봐. 민헌아.”

“어?”

“안 외로워?”

“외롭지. 가끔 새벽에 퇴근하고 주말에 생방도 하고, 행사도 가고 힘들 때 외롭긴 하지. 근데 슬프지는 않아. 좋아하는 일이니까 점점 더 성장하는 거도 느끼고. 아침 6시에 항상 집 앞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데 정자에 올라가서 경치를 보면 경건한 마음도 들고 괜히 사람이 웃게 되더라고. 왜 웃음이 나오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딱히 혼자 울 거나 그러지는 않은 거 같아.”

“그래 그랬구나.” 괜히 웃음이 터져 나왔고 오랜만에 우리는 격의 없이 웃게 되었다. 입가의 미소가 아닌 눈으로 짓는 웃음. 그 후로 이따금씩 근황과 새로운 취미 등을 묻다보니 파스타를 거의 먹지도 못하고 자리를 비웠다.

1시 반이 다 되어 민헌이 계산을 하고 그의 사원증으로 별도의 출입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내로 복귀했다. 3년 만에 먹은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는 끝 맛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다른 언론사에서 쏟아지는 가짜 뉴스를 선별하며 팩트와 허위를 감각적으로 구별하게 됐다. 가령 수치가 제목에 드러나거나 언뜻 보기에 제목부터 자극적인 기사는 대개 가짜 뉴스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데이터를 살펴보면 극히 일부의 수치를 과대하게 해석하거나 교묘하게 다른 지표와 섞여 있었다. 때로는 사설처럼 기자의 의견이 사실적 표현에 가미되어 마치 그것이 원래의 발언이었던 것처럼 작성된 것도 많았다. 대부분의 신생 언론사나 언론사를 사칭하는 가십 찌라시를 다루는 사이트는 선정적인 사진이나 성적인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 사실상 조회수를 높이고 대중의 선택을 받아 많이 읽히게 하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저널리즘이었고, 그것은 어떤 의미로서는 사실이었다. 알 권리를 침해시키지 않고 충실히 모든 정보를 어떤 형태로든 알려주는 것에 혈안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온갖 수단을 활용해서라도, 심지어는 그것이 가짜 뉴스일지라도, 조회수를 높이려 했다. 이러한 기사 가운데 화제성이 두드러지거나 ‘바람직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사를 선정하라는 가이드라인이 제공되었다.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결국 우리도 선택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재를 받기 위해서는 회사의 기조와 동일한 방향의 주제를 선정해야 했고, 하나의 주제로 다른 언론사와 경쟁적인 팩트 체킹을 벌이게 된 해프닝도 있었다. 다른 하나는 ‘바람직한 가치’에 대한 해석이었다. 나와 시영은 이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고 어렴풋이 ‘회사가 원하는 방향’ 정도로만 짐작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전날 마무리하지 못한 기사를 수정하고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차창 밖 푸른빛이 완전히 가시기 전에 화장도 못한 채 홀로 기사를 수정하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카메라 1대와 기획팀 동기가 나를 찍으며 다가왔다.

“제 동기인 차연희 인턴입니다. 가짜 뉴스 판별팀이라는 신생 부서에서 팩트 체크를 하는데요,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정말 뼈빠지게 일하고 있습니다. 열정이 대단한 거 같아요.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나는 당황했으나 “아 괜찮아요, 다 힘든데 열심히 해야죠.”라며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컷 소리가 나자 기획팀 동기는 사내 브이로그 기획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해줬다.

“나 완전 민낯인데. 말이라도 해줬으면 간단하게 화장이라도 하는 건데.”

“뭘 그래도 예쁜데 뭐. 꼭 자기 예쁜 줄 아는 애들이 더 극성이더라. 암튼 재밌게 편집해줄게. 나중에 유튜브에 올리면 보내줄게.”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EP 01-H사 인턴의 하루”라는 영상으로 올라와 있었다. 처음에는 화제성이 있을지 전혀 예상을 못했다. 며칠 후 집에서 영상을 봤을 때 인기가 급상승하여 자체 알고리즘 추천 영상으로 떴다. 영상에서 내가 나온 부분만을 돌려보고 혹시 나에 관한 댓글이 있을지 호기심이 들었다. 5번째로 좋아요가 많은 곳에는 나의 미모에 대한 감탄과 더불어 팩트 체크를 하는 SNS 게시물들의 링크가 달려 있었다. 대댓글로는 나의 SNS 계정이나 학력 같은 사적인 정보가 적혀 있었다. 나는 이것을 좋아해야 할지 화가 나야되는지 난감해 어지러웠다.

처음에는 사내 브이로그에 부정적이었던 부장들도 유튜브 사이트에서 관심이 쏠리자 일순 태도를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내 SNS 계정의 팔로우는 점차 늘어나게 되었으며, 전보다 많은 조회수가 카드 뉴스 게시물에 기록되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두 달을 보내고 중간 평가 결과 역시 기획팀 동기들이 가장 좋은 평가를 얻게 되었다. 우리 팀은 3등에 준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물론 중간평가는 팀별 평가여서 인턴별로 점수가 책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시영보다 빼어난 활약상을 보인 것은 자타공인된 사실이었다. 공지가 있은 다음 날 시영이 다들 고생했다며 준비한 도시락을 한 명씩 나눠주었다. “남자친구가 호텔에서 요리를 해서요.” 라며 수수하게 웃었다. 나한테는 특별히 새우와 등심이 크게 들어간 도시락을 수줍게 건넸다.

“연희씨 이때까지 너무 힘들게 했죠? 제가 연희씨보다 한참 부족해서요.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힘든 일 있으면 저한테 맡겨요. 제가 버텨내는 건 또 잘 해요.”

“아 감사합니다. 시간 나면 같이 도시락이나 먹어요.”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밥만 먹었고 잠깐 전화를 하러 밖에 나가자 더욱 적막했다.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가며 언뜻 들리는 시영과 남자친구의 대화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랄까. 나에게는 없는 것들이 왜 나보다 떨어져 보이는 이들에게는 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런 것들을 갖지 못했을까.

기획팀 동기가 마련한 자리에서 동기들은 500cc 맥주 한 잔씩을 마셨다. 그 중에서도 회식을 주도한 동기는 사내 브이로그를 찍으며 봤던 부장들의 성대모사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한창 달아오를 때 즈음, 시영은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비웠다.

“시영씨, 취한 거 아니죠? 내가 데려다줄게요.”

“시영씨 남자 친구랑 약속 있어서 가봐야 한대요.”

나는 살짝 취기가 감돌아 굳이 그녀가 택시를 타는 데까지 배웅했다. 자리에 돌아오니 시영에 관한 뒷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조금 어이없었던 게 아니 시영씨 I대 분캠이던데? 어떻게 그 학벌로 여기 들어왔는지 몰라.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진짜 학벌 안 봤나. 아니 근데 또 그게 말이 안 되는 게 여기 인턴 사람들 태반이 I대 출신 아니야?”

“그건 그렇지. 근데 넌 그거 어떻게 알았냐.”

“아니 딱 보면 그냥 알지. I대인데 oo불백 모르는 게 말이 돼? 아니 그리고 무슨 DTI LTV를 몰라서 브이로그 찍을 때 편집 오지게 했어.”

“민준씨, 그래도 그런 건 모를 수 있죠. 그걸로 어떻게 분캠이라고 단정지어요.” 나도 모르게 그녀를 감싸자 민준은 더 목소리를 높였다.

“연희씨, 같은 팀이라고 지금 편드는 거예요? 엄밀히 말하면 걔랑 우리는 다른 신분이고, 다른 세상이에요. 분캠 놈들이랑 우리가 마시는 공기 자체가 다르다구요. 학벌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서 뭘 같이 할 수가 없다구요. 말을 꺼내면 무식한 게 티가 나니까 어떻게 눈칫밥으로, 시다바리처럼 몸으로 때워서 똑같아지려고 악을 쓴다니까요.”

다른 동기가 그의 말을 끊으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그런 새끼들이 제일 싫은 게 어떻게든 기어오르려고 한다니까. 무슨 기생충 같은 벌레야 벌레. 우리 학교 후광 받아서 같은 학교 다니는 것처럼 행세하잖아. 막말로 학번 까라고 하면 아무 거도 못할 놈들이. 말 나온 김에 다들 학번 1로 시작하죠? 시영씨 학번 아는 사람? 아, 아니면 연희씨가 내일 시영씨한테 은근슬쩍 옛날 사진 보고싶다고 학생증 보여주면서 학번 한 번 떠봐요. 백퍼 2로 시작할 걸요?”

“그 정도로 안 친해요. 그리고 요즘 조금 힘들어 보여서..”

내가 한 마디 하자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연희씨 아까부터 왜 그래요? 혹시 분캠이에요? 학번 한 번 까봐요.”

내가 학생증을 자신 없이 꺼내자 그들은 내 학생증을 낚아채 가며 서로 돌려보았다.

“우와 연희씨 경영학부였어요? 아 미안해요. 술 마셔서 좀 흥분했네요. 와 근데 대학생 때 미팅 좀 다녔겠어요? 미인이지, 공부도 잘 하지. 저는 어때요?”

다른 동기들도 학생증을 보며 법석을 떨 때 나는 괜히 불안해져 조용히 맥주만 들이켰다.

“뭐 어쨌든 그런 분탕 종자들은 애초에 싹을 잘랐어야 했는데. 뭐 사실 분캠이 아니어도 중요한 건 우리 사이에서 찍혔다는 거지 뭐. 앞으로 동기 평가도 안 좋을 수밖에 없고. 아 쪽팔리게 좀 I대 티 내지 말고 좀 조용히 묻어가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괜히 나대니까 우리만 더 손해보는 거 같아.”

“그래도 좀 불쌍하지 않아요? 옆에서 같이 일할 때 제 말 따라서 열심히는 하던데.” 나는 은근히 떠보았다.

“우리 중에 열심히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I대 다니는데 뭐 열심히 안 산 사람 있나. 그에 맞는 대가를 누리면서 사는 거지. 분캠 놈들은 그럴 자격도 없고, 그냥 밑바닥 깔아주면 되는 거죠 뭐. 애초에 같은 시각으로 볼 수도 없을 만큼 차이가 나니까요. 연희씨는 그럼 그런 애들이 연희씨 같은 초엘리트랑 똑같은 취급 받는 거 좋아요 싫어요?”

“그건 아니죠. 아니 그러면 안 되는 거죠.”

12월이 다가오고 마지막 공지가 통보되었다. 각 부서 당 한 명이 정식 사원으로 공채되거나 업무 성과가 미비한 부서는 채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와 시영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희망적인 부분은 기획팀의 사내 브이로그 덕분에 가짜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덕분에 중간 평가에서 상위권을 유지했기에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나간다면 사실 정규직이 될 가능성은 있어보였다. 공지가 된 이후로 암묵적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반목하게 되었다. 시영은 전보다 의견을 적극적으로 건의하고 가짜 뉴스를 선별했다. 시영은 SNS를 시작했고 나와 분야를 달리하여 자체적으로 카드 뉴스를 홍보하기도 했다. 점차 나는 경제, 사회 현상과 관련된 기사를 다루게 되었고 그녀는 문화와 연예 분야에서 강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서로 업무를 협업하지 않게 되었고 대화도 자연스레 줄게 되었다. 야근을 하는 날이 늘어났고, 주말에도 주중에도 업무를 자처하게 됐다. 회사에서는 간만에 충성심 높은 진짜배기 신입들이 들어왔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채용 정원은 한정되어 있었고 예외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변은 없었다. 대리는 “그럴 줄 알았다”며 나를 반겼고 파란 색 목걸이의 사원증이 새로 주어졌다.

“내년부터는 이거로 출입 찍어요. 사원증 뒤에 RC칩 있는 거 보이죠? 이거로 회사 제휴한 곳에서 할인도 되고 복지 포인트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사원증을 손에 쥐어주며 부장은 성과급은 차후에 계좌로 지급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이건 보너스. 연희씨가 최종 평가에서 아깝게 2등을 했는데, 뭐 사실상 신생 부서에서 이 정도면 1등이라고 봐야지. 얼마 안 되지만 받아둬.”

나는 5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 2장이 들어 있는 흰 봉투를 받으며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다들 처음에 입사할 때부터 느낌이 남달랐다며, 내가 사원이 될 거 같았다며 입을 모았다. 모두가 오로지 나를 축하해줄 때 시영만은 조용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연희씨 축하해요. 연희씨 옆에서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혹시나 방해됐다면 미안해요.”

“뭘요. 시영씨도 고생했어요. 다음에 밥이나 같이 먹어요.”

시영은 말없이 고개를 꾸벅이며 소리 없이 문을 빠져나갔다. 처음 봤을 때에 비해 어깨가 축 처져 힘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모든 것이 끝났다. 인턴의 끝과 동시에 새롭게 정규직으로서의 시작이 예정되었다. 그 끝에 도달한 정상에서는 희열이 가득찰 것 같았다. 마치 분캠에서 서울로 상경했던 그 때처럼. 하지만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았고 비릿한 느낌과 석연치 않은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웃었지만 행복에서 절로 나오는 웃음은 아니었으며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한 음울함이 잔존하는 듯 했다. 왠지 기쁘다기보다 슬픔이 지배적인 날이었고 괜히 감상적인 기운에 공허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SPA 가게들을 지나쳐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평소에 사고 싶었던 고야드 숄더백이 크리스마스 할인 중이었다. 거기에 회사 할인을 더한다면 방금 받았던 상품권으로 충분히 구매할 수 있었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원하던 색상의 숄더백을 고르고 창밖의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웃는 사람들과 우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섞인 광경은 혼란스러웠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정품 고야드 숄더백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원래 매고 다녔던 숄더백보다 안가죽의 질감이 더 꼼꼼하게 재봉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로고가 더 선명해보였고 왠지 모르는 아우라가 풍겨지는 듯했다. 거듭 보게 되자 내밀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차이가 두드러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또 누가 그렇게 세세하게 남의 가방을 쳐다보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까. 사람들은 남들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가짜에 신경을 쏟을 만큼 배타적일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때문일까. 민헌이 처음으로 모조품의 숄더백을 사줬을 때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물론 그 때는 그 가짜라는 사실에 불만이었고 히스테리로 작용해 이별의 단초가 되었지만. 적어도 그 때의 나는 하나의 진리를 몰랐던 것 같다.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잃어야 하는 것 역시 많다는 것을. 그 고통의 관문을 넘어 도달한 세계가 사실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았음을. 아니 어떻게 보면 관문을 넘기 전이 생생한 현실 같았다는 그 위화감을.

캔맥주를 따고 SNS에 고야드 숄더백과 함께 정규 사원이 되었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금세 나를 축하하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분캠 친구들과 서울캠 친구들 그리고 팔로우되지 않은 사람들의 축하 행렬이 이어졌다. TV를 켜고 회사 8시 뉴스를 틀었다. 민헌은 ‘팩트 체크’ 코너에서 내가 홍보한 기사를 다루고 있었다. 한층 가장된 목소리가 더해지자 더욱 진실된 느낌이 묻어 나왔다. 채널을 돌리자 종편에서는 민헌이 게스트로 초대된 예능이 나왔다.

“비율도 좋고 머리도 좋은 H사의 자랑, 장민헌 아나운서입니다. 아나운서 되시기 전에 인기 많았겠어요?”

“없지는 않았죠. 하하.”

“첫 사랑은 언제였어요?”

“군대 다녀오고 대학 다닐 때 여자를 사귀었어요. 콤플렉스가 많아서 서로에게 아픈 사랑을 했던 거 같아요.”

“상처를 많이 받으셨나 보네요. 그래도 어떤 면을 사랑했던 거 같아요?”

“음, 글쎄요. 특유의 억척스러움이라고 할까요. 노력하는 모습이요. 필사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에 반했던 거 같아요.”

“그럼 지금은 여자친구가 있다 없다?”

“있으면 좋겠어요 워낙 바빠서요.”

“첫사랑 생각은 안 나세요?”

“제가 사랑을 하며 느꼈던 건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은 과거에 놔둬야 한다는 거예요. 너무 행복했으니까. 반대로 현재 다시 그 좋았던 추억은 왜곡되고 다시 불행해진다는 거예요. 그러면 내 기억에 너무 미안하고 불쌍하잖아요. 그래서 좋으니까 굳이 생각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철학적이시네요 역시 대표 아나운서답습니다. 다음 질문은 요즘 하시는 팩트체크입니다. 장민헌 아나운서의 저널리즘 철학이 있으신가요?”

민헌이 대답하는 영상을 보며 어느새 눈물을 함께 허탈한 웃음을 삼키는 나를 발견했다. 여전히, 나는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그 경계는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남에 의해서라도 명확히 규정될 수 있을까. 내 감정에 대해, 모호함에 대해, 허구성에 대하여. 모든 가짜 같은 진실된 감정에 대하여,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