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살이의 설움, 국외 문화재
타국살이의 설움, 국외 문화재
  • 맹양섭 기자
  • 승인 2020.11.30
  • 호수 1522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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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미술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백제금동관음보살상’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지금은 일본의 한 사업가가 소장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환수 비용으로 42억 원을 책정했으나, 소장자는 매매가 150억 원을 제시하면서 환수는 잠정적으로 중단됐고, 이에 지난 23일 국회에선 ‘백제금동관음보살상’ 등 국외 문화재 환수를 위한 예산 확보와 법 개정 등의 논의가 나오기도 했다.

문화재를 환수해야 하는 경우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해외 21개국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는 올해 기준 약 19만 점에 달한다. 강임산<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 부장은 문화재 환수 대상을 크게 3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불법으로 반출된 경우’다. 우선 강 부장은 “부당하게 반출된 문화재는 무조건 환수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는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거나 문화재가 희소한 경우’가 있다. “문화재의 △문화적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클 경우 별도로 환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 부장은 말한다. 마지막으로 ‘국외에서 우리 문화재의 본래 가치를 잃고 왜곡된 경우’ 문화재도 환수 대상이 된다. 일례로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기록이 적힌 ‘북관대첩비’는 일본으로 반출돼 승전 사실이 왜곡되기도 했지만, 결국 2005년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본래의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해외의 우리 문화재는 환수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김동현<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 부장은 “환수가 필요해도 △소장자의 의사 확인 △수사 공조 △협상 등 현실적인 문제로 단시간에 환수가 이뤄지긴 매우 어렵다”고 답했다. 우리는 외규장각 도서를 프랑스의 일방적인 약탈이라 규정하지만, 프랑스에선 이것을 조선과의 전투에서 *노획한 전리품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강 부장은 “환수를 위해선 객관적 증빙이 필요하지만, 나라마다 문화재에 대한 △대응 △인식 △해석이 달라 환수가 쉽지만은 않은 실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환수의 대안, 보존과 관리 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문화재를 되돌려 받기 어렵다면, 국외의 문화재를 일단 보존하는 것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 강 부장은 “지금부터라도 국외 문화재를 보존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환수하려 할 때 문화재 수리 비용이 더 들거나 회복조차 안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보존 사업이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위스 리트베르크박물관의 한국 불화 ‘추파당대사 진영’은 액자에 넣거나 족자 형식으로 걸어둬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훼손도 심하고 전시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설립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현황을 파악하고, 보존과 관리가 필요한 곳을 선정해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엔 역부족이다. 어디로 흩어졌는지 파악할 수 없는 우리의 국외 문화재의 소재는 물론 수량조차 파악되지 않아 보존 및 관리를 기대하기란 힘들다.

또한 문화재 보존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강 부장은 “문화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림 같은 경우 가로 7m, 세로 2.5m 정도면 보존처리에 대략 1년 6개월이라는 시간과 1억 5천만 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데 특히 해외에서 주류가 아닌 우리 문화재는 보존 및 관리를 위한 예산 책정 우선순위에서 더욱더 밀리게 된다”고 한탄했다.

더욱이 우리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인력 또한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강 부장은 “한국엔 문화재 전문가의 수도 부족하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구조차 없는 상황”을 지적하며 “나라마다 보존 및 관리 기술이 다른데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일본이나 중국의 방식으로 보존 및 관리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타국살이의 설움을 겪는 문화재를 지키려면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선 예산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그 중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펀딩제도’다. 강 부장은 “펀딩은 우리 문화재가 원활히 관리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답했다. 그러나 펀딩제도를 시행할 때 어떤 문화재를 환수할 것인지 구체적인 목표를 명시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강 부장은 “펀딩제도를 공개적으로 진행하면 문화재를 소장한 사람이 일부러 가격을 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람들에게 올바른 문화재 교육을 진행하고, 문화재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재 교육을 하고 인식을 재고하기 위해 오는 2024년까지 ‘문화유산 과학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박영만<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는 “문화유산 과학센터는 문화재 보존의 구심점 역할과 국내·외 박물관 보존 체계 지원 등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 부장은 “대학이나 기관에서도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국살이에 지쳐 빛을 잃어가는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예산과 전문가 그리고 전문기관의 부족이라는 걸림돌을 극복해 타국에서 설움을 겪는 우리의 문화재가 해외 박물관에서도 빛날 수 있도록 조명을 켜줘야 한다.


*노획: 싸워서 적의 물품을 빼앗은 것을 뜻한다.

도움: 강임산<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 부장
김동현<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 부장
박영만<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
안태연 수습기자 terry0407@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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