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부 특집 #2] 우리 학교 농구부를 가다
[운동부 특집 #2] 우리 학교 농구부를 가다
  • 박용진 기자
  • 승인 2020.11.08
  • 호수 1520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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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관심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대학 스포츠와 리그를 취재해 보면서 얻은 내용을 나누고자 시작한 운동부 특집. 그 두 번째 순서는 농구부다. 실업팀과 대학팀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 ‘농구대잔치’가 인기를 끌던 80년대와 90년대, 농구는 대학 스포츠 종목 중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하지만 농구부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한 학생들의 함성으로 경기장이 가득 찼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학 농구는 학생들에게  외면 받는 실정이다. 지금 한창 2차 전국 대회를 치루고 있을 우리 학교 농구부, 본지와 함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농구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농구부의 역사속으로
1964년 창설된 대학농구연맹과 이에 맞춰 1년뒤 1965년 우리 학교 농구부가 창단됐다. 이후 56년이라는 시간동안 꾸준히 대학 농구의 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대학 농구 리그에서 우리 학교 농구부의 첫 우승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71년, 창단 6년 만에 우리 학교 농구부는 ‘전국 대학 농구 연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또한 1974년 열린 ‘춘계 대학 농구 연맹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대학 농구 강자로 올라서는 계기를 마련한다. 1974년을 마지막으로 우승과 인연이 없던 우리 학교 농구부였지만, 1987년 3관왕을 차지하면서 대학 농구 정
상에 다시 올라선다. 

1971년, 우리 학교 농구부는 창단 7년만에 ‘제8회 추계 남녀 대학농구 리그’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본다. 당시에도 대학 농구 강호로 평가받던 연세대를 결승전에서 만난 우리 학교 농구부는 91대 78로 연세대에게 승리를 거둔다. 사진은 결승전 후 시상식에서 당시 주장이었던 최명룡 선수가 우승기를 받는 모습이다.

그러던 중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대회 ‘농구대잔치’가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 학교 농구부는 농구대잔치와는 인연이 없었다. 물론 당시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기아자동차 실업팀을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꺾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은 우리 학교 농구부는 대학 최강이라 평가 받던 고려대와 연세대보다 한 수 아래의 팀이었다.
대학 농구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80년대와 90년대. 대학 농구 전체를 향한 인기와 별개로 암흑기를 겪던 우리 학교 농구부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다시 대학 농구 정상을 위협하는 팀이 된다. 신입생 양동근<체육학과 00> 선수를 중심으로 ‘달리는 농구’를 통해 2003년 전국대회 결승전에 올랐고, 연세대와 맞붙는다.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다. 정상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우리 학교 농구부는 ‘달리는 농구’ 또는 ‘육상 농구’로 불리면서, 이런 스타일은 우리 학교 농구부만의 팀 컬러로 자리 잡는다.

최강 실업팀 격파
실업팀과 대학팀 최강자를 가리는 농구대잔치는 총 14번 열렸다. 그 중 농구대잔치에서 대학팀이 실업팀을 누르고 우승한건 딱 두 번에 불과하다. 그만큼 아직 완성되지 않은 대학팀들이 실업팀을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대학팀과 실업팀의 대등한 경기 내용에 열광했다. 1994년 여름, 우리 학교 농구부도 그러한 경기를 했던 팀 중 하나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1994년 농구대잔치 당시 기아자동차 실업팀은 △강동희 △한기범 △허재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비한 최강팀이었다. 반면 우리 학교 농구부는 예선에서 1승 4패에 머물면서 대학팀 중에서도 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 학교 농구부는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기아자동차 실업팀을 이기는 기적을 연출했다. 당시 4학년이었던 정재훈<농구부>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가는 길이 우리 학교 선수들을 보려는 관중들로 꽉 들어차, 버스까지 걸어가는데 10분 이상 걸렸다”며 “비록 그 대회에서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관중들이 기적을 연출한 우리 학교 농구부에 열광했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대회 우승은 기아자동차가 차지한다. 우승팀 기아자동차에 유일한 패배를 남긴 팀이 우리 학교 농구부다. 그래서인지 우리 학교 농구부가 보여준 기적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2000년대 초 우리 학교 농구부는 ‘육상 농구’를 팀 컬러로 다시 한번 강팀의 반열에 올라선다. 당시 양동근(왼쪽) 선수와 조성민 선수가 육상 농구의 중심이었다. 졸업 후에도 각자 팀과 국가대표에 헌신한 둘은 우리 학교 농구부가 낳은 최고의 스타 선수들이다. 

농구부의 현재 그리고 미래
현재 우리 학교 농구부는 과거 우리 학교 농구부 출신인 정 감독의 지휘 아래 15명의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1학기 모든 대회가 취소됐으나, 지난달엔 1차 전국대회가, 지난 7일엔 2차 전국대회가 개최됐다.

또한 오는 23일에는 ‘2020-2021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가 열린다. 우리 학교 농구부에서는 △4학년 송수현 △3학년 오재현 △3학년 이근휘 선수가 참가한다. 정 감독은 “3명 모두 능력 있는 선수들이다. 송수현 선수는 부상이 있었으나 팀의 주장으로 최선을 다했고, 오재현 선수는 비시즌 때 프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관심 있는 팀들이 많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근휘 선수의 경우 3점슛이라는 자신만의 무기가 확실히 있어서 프로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향한 믿음을 드러냈다.
대학 농구 연맹의 추진으로 ‘대학 농구 리그전’이 시작된 201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학교 농구부는 우승 경력이 없다. 지난달 열린 1차 전국대회에서도 최종성적 6위에 그쳤다. 그럼에도 많은 선수들이 첫 우승을 위해 구슬땀을 흘려가면서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도 있겠지만, 여전히 대학 리그전이 열리는 농구 경기장은 관중의 함성소리보다 코치들과 감독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진다. 제대로 된 홍보도 이뤄지지 않아 학생들조차 경기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부터 농구부 선수들은 학교를 대표해 학교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학내 구성원으로서 우리부터 먼저 농구부에 관심을 갖고 우리 학교 농구부의 활약을 기대하고 응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에서 대학 농구 리그 2차 대회가 개막했다. 사진은 대학 농구 리그 2차 대회에 참석하는 우리 학교 농구부 선수들의 모습이다. 총 12개의 대학이 참여하는 이번 대회에서 우리 학교 농구부는 △고려대 △명지대 △중앙대와 2장의 6강 진출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됐다. 지난 1차 대회에서 아쉽게 6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우리 학교 농구부가 이번 대회에서 더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박용진 기자 joseph21@hanyang.ac.kr
사진 제공: 예체대 체육학과
사진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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