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지역인재는 지역인재가 아니다
[장산곶매] 지역인재는 지역인재가 아니다
  • 이예종 편집국장
  • 승인 2020.11.08
  • 호수 1520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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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예종<편집국장>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검도 대회에 출전하고 싶지만, 장비를 구매할 수도 배울 수도 없다. 이를 위해 협회가 나서서 장비를 지원하고, 교육비는 전액 삭감해준다. 그리고 대회에 출전하는 비용까지도 지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첫 라운드에서 패배한다. 이에 협회는 그에게 더 가볍고 긴 죽도를 준다. 두 번째 라운드에서도 패배하자, 이번엔 경쟁자가 다음 라운드부터 출전하지 못하도록 퇴장 조치한다. 그리고 협회 측은 무승부를 선언한다. 이것은 공정한 게임인가. 

어떤 사회도 기회의 평등에 대해 완전히 합의하지 못했다. 기회의 평등이란 애초에 무한한 변수들로 인해 달성할 수 없는 신기루다. 단지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그곳을 유토피아처럼 상상하고 그곳에 최대한 수렴하려 노력할 뿐이다. 그 과정이 너무 고단해 수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끝없는 합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달 30일, 이낙연<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 비율을 50%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역인재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우대 정책이 아니라, 경쟁자의 지원 자격을 박탈 해버리는 정책이다. 일부 50%를 강제로 할당하는 우리 정부의 정책은 무승부를 선언하는 협회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지난 2일, 국민청원에는 지역인재 할당이 수도권 대학교 학생들을 역차별하는 정책이라는 입장의 글이 올라왔다. 단순히 제도 자체에 대한 논쟁도 해소되지 않는데, 납득이 불가능할 정도의 허점도 존재한다. 십수년간 지방에서 자란 진짜 ‘지역인재’들도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면 지역인재가 될 수 없다. 다분한 노력을 통해 지역 간 교육격차를 넘어서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역인재가 될 수 없다. 모순이다. 더구나 서울 출신 고등학생들이 지역인재 전형의 허점을 이용해 지방 의대에 입학하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의 쇠퇴를 막는 동시에 지방대를 살리려 지역인재 정책을 시행했다. 물론 지방의 몰락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소멸위험지수 2019’에 따르면 전국 226개 시군구 중 39%에 달하는 89개 지역이, 3천463개의 읍면동 중에선 43.4%에 이르는 1천503개 지역이 소멸위험 지역이다. 인구 감소가 계속되면 지역의 사업 수익성이 떨어지고,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기에 교육이나 의료 등 기본적인 여건과 지역 경제의 악화가 이어진다. 이미 악순환에 빠진 지역은 한둘이 아니다. 목포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이 줄어들자, 운수 사업자들은 노선을 축소해서 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래걸리지만 근본적으로 이를 해결하는 방법엔 지방 기업 유치를 통한 고용 확대가 있다. 대기업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지역이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역 연고가 있는 사람이 지역 기업에 고용되면 지방 거주 인구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의 한 축으로 공기업을 지역으로 이전시키는 것만은 쉬이 비판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지역인재 할당은 어떤가.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다수의 비지방 사람들이 지역 공기업 T/O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 정당한 자격을 갖춘 지역인재조차 배제되고 있다. 지역인재 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을 전부 진화할 순 없겠지만, 정부는 적어도 현행 지역인재 정책에 대한 개정을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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