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택시, 고요함 이상의 의미
고요한 택시, 고요함 이상의 의미
  • 노승희 기자, 조하은 기자
  • 승인 2020.10.12
  • 호수 1519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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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고용촉진법 및 직업재활법’은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상시근로자 50인 이상의 공공기관 및 민간 기업에서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하도록 규정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부담금을 납부해야 하지만, 최근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는 곳이 상당하다. 장애인 중에서도 특히 청각장애인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의 고용률은 27.1%에 불과하다. 이는 지체장애인이 44.3%, 시각장애인이 41.9%인 것과 비교하면 더 낮은 수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고용할 택시가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고요한 택시’다. 우리나라에 고요한 택시 서비스를 도입한 송민표<코액터스> 대표는 “직접 고용을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고자 한다”며 “전액 월급제를 적용해 승차 거부를 없애고, 종사자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말한다. 마음부터 따뜻해지는 고요한 택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고요한 택시란?
“청각장애인이 택시를 운전한다”는 말만 들었을 때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고 실현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택시가 두 가지 형태로 운행 중이다. ‘고요한 택시’와 ‘고요한 M’이 그것이다. 먼저 출시된 고요한 택시는 소셜벤처 기업 ‘코액터스’가 청각장애 기사를 고용한 타 택시 회사에 승객들과의 소통에 이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과 필요한 장비들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반면 고요한 M은 택시 회사에서 청각장애 기사를 고용해야만 기술 납품이 가능하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코액터스에서 직접 택시 기사를 고용해 운영한다.

고요한 택시와 고요한M 기사님과의 의사소통은 택시 앞자리와 뒷자리에 설치된 태블릿을 이용해 이뤄지며, 이동 시간 동안 승객의 편안하고 조용한 시간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고요한M의 경우 기사와 승객에게 보다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기존 택시와 달리 SUV 차량으로 운행되며 고요한M 자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택시 예약 및 호출도 가능하다.

현재 코액터스를 통해 일하는 청각장애 택시 기사는 고요한M에 직접 고용된 기사 15명, 타 택시 회사에서 고요한 택시 근무 중인 기사 13명으로 총 28명이 있다. 

사회적 가치 창출에 앞장서다
택시 기사 28명의 삶은 코액터스의 청각장애 택시 서비스로부터 시작됐다. 송 대표는 “처음 창업 당시 우리가 풀어볼 수 있는 사회 문제로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었다”며 “그러던 중 해외에선 청각장애인 분들도 택시 운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주로 종이를 이용해 기사와 승객 간 소통이 이뤄지지만 코액터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IT 기술을 고요한 택시와 고요한M에 적용했다. 태블릿을 통해 승객은 기사와 더 편리하고 부담 없이 소통할 수 있게 됐다.

고요한 택시 사업은 청각장애인 고용 환경까지 신경 써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송 대표는 “고용시장에서 소외당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열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코액터스는 기존 택시 회사에 고요한 택시 기술을 납품하던 것에 이어 고요한M 서비스 운영을 하면서 청각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기 시작, 즉 직접 고용제를 도입했다. 뿐만 아니라 전액 월급제를 운영해 과도한 노동과 부당 대우를 차단한다. 이로써 고요한M에선 택시 회사의 고질적 임금 관행인 사납금 제도 또한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10대의 고요한M이 운행 중이다. 점진적인 증차를 이루면서, 내년 하반기엔 100대 운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다음해엔 장애인 승객 이동을 돕는 서비스도 내놓을 예정이다.

고요하지만 안전해요
‘청각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사회적 가치를 표방하는 고요한 택시지만,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운전하는 게 정말 가능할지라는 의문이다. 송 대표 역시 “고요한 택시가 안전을 보장하는지에 대해 창업 시기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라 말했다.

도로교통법상 청각장애인 역시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동법 시행령 45조에 따르면 제1종 운전면허 중에서 대형면허나 특수면허를 제외하고 55dB 이상의 소음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1종 보통 및 2종 보통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비장애인 기사와 동일한 절차를 통해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송 대표는 “고요한 택시 기사님들도 기존과 동일한 면허 시험을 거쳐 선발되며 고요한M의 경우 타 택시 회사들과 달리 면허 취득 후에도 기사님을 대상으로 5주간의 추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평균보다 떨어지는 청력 대신 더욱 뛰어난 청각장애인의 시력은 택시 운전에 특별한 장점이 되기도 한다. 청각장애인은 잘 듣지 못하는 대신 시야의 폭이 1.5배가량 넓다. 2008년 미국 오리건 대학의 연구 결과, 청력을 잃은 사람은 시야 주변부 시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청각장애인들은 아주 느린 움직임까지도 잘 포착해낼 수 있고, 이들의 넓은 시야 폭은 안전 운행을 가능하게 한다.

이에 더해 고요한 택시에는 기사들의 안전 운행을 돕는 첨단 운전 구조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이런 시스템은 송 대표가 “청각장애 기사님들이 운행하는 택시도 철저하게 안전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다. 코액터스는 차선 이탈 방지시스템 및 보행자 추돌 방지시스템 등을 기사의 스마트 손목시계와 연결해 스마트 손목시계에서 알람과 진동을 보내도록 만들었다. 또한 경적이 울리거나 구급차의 소리가 들리는 경우 불빛으로 기사에게 신호를 전달해 대처할 수 있다. 회사 차원의 교육과 발달한 기술의 도입은 청각장애인 기사들의 운전을 보다 안전하게 실현했다.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
장애인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 건 여전히 힘든 숙제다. 송 대표는 “청각장애인 기사님과 제공하는 서비스가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많이 찾아주는 서비스가 되길 바란다”며 “이를 통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전한다. 청각장애인이 운행하는 택시가 단지 고요함만을 선사하는 건 아니다. 사회적 편견을 신경 쓰지 않고 장애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전달하지 못하고 태블릿을 사용해야 함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소통의 과정을 통해 승객은 청각장애인이 운행하는 택시를 타는 단순한 경험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 고요한 택시가 우리 삶 속에 깊이 스며들 언젠가 고요한 택시가 창출하는 가치를 기억하기 바란다.
 

① 고요한M 어플 접속 고요한M 애플리케이션 접속 후, 택시를 호출하려는위치를 출발지로 설정하고 도착지를 설정한다. 원하는 시간에 택시를 호출하는 예약 기능도 사용 가능하며, 이 경우 2천원의 부가금이 발생한다. 택시 호출 및 예약 시 원하는 기사님 선택도 가능하다.
② 고요한M 탑승 도착한 택시를 탑승하면 기사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뒷자리에 설치된 태블릿은 ‘청각장애인 기사님이 운행하는 택시입니다’라는 문구를 띄워 택시를 소개해준다. 택시 안에는 손소독제, 충전기 등이 구비돼있다.
③ 택시 운행 중 태블릿 활용 택시 운행 중 기사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태블릿을 통해 할 수 있다. 키보드로 글을 작성할 수도 있고 음성으로 말한 후 글로 변환 가능하며 손으로 쓰는 것도 가능하다. 작성된 글은 운전석 태블릿으로 전달된다.
④ 고요한M 하차 및 금액지불 택시가 도착지에 도착하면 고요한M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한 카드로 자동 결제가 완료된다. 태블릿을 통해 ‘감사합니다’와 같은 간단한 수화를 배울 수 있으니 하차 전 수화를 미리 숙지하고 기사님께 따뜻한 수화 한마디를 건네고 하차한다.

도움: 송민표<코액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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