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칼럼]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 이윤미<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 3기
  • 승인 2020.09.06
  • 호수 1516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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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미<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 케이션학과> 박사과정 3기

2020년 온 세상이 처음 접하는 질병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사회를 겪고 있다. 이전의 어느 때처럼 금방 지나갈 줄 알았던 질병은 추위가 끝나고 더위가 모두 사라져가는 지금까지 그 위협을 쉽게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사이 나와 우리는 새로운 일상에 조금씩 적응을 해나가고 있다.

봄이면 당연히 떠올리던 꽃 구경도, 5월 어느 날의 선선한 축제의 바람도, 새 달력을 펼 때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여름휴가의 설렘도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으로 흩어졌다. 좋아했던 가수의 공연들은 기약 없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고, 이번 주는 점심 식사 후 혼자 혹은 일행과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어려워졌다, 바깥의 시간이 조금 느리게 멈추는 동안 학교는 2학기 째 온라인 개강을 시작했고, 재택근무를 하는 친구들도 늘어나면서 퇴근 후 가졌던 간단한 저녁 약속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전까지 당연하게 내 일상을 채우던 시간들이 사라지고 나서, 나는 새로운 시간을 돌아볼 수 있었다. 

여름의 수영장을 잃은 대신, 공원을 산책하며 엄마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늘었고, 온라인 강의로 등하교 시간이 사라지자 책장에 미뤄두었던 책을 다시 꺼내볼 기회가 생겼다. 영화관과 공연장을 갈 수 없는 대신 집에서 친구들과 예전 영상들을 찾아보며 잊었던 추억들을 되살리기도 했다. 주말 일정이 취소되는 대신 친구들을 따라 비즈공예와 미니 레고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연수 시절 기숙사 근처에서 팔던 타르트를 직접 구워볼 수도 있었다.

늘 당연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틈을 보이자 내가 잊고 있던 시간들이 그 자리를 채워간 것이다. 이들 중 어떤 것은 지금 할 수 없음을 그리워하게 만들기도 했고, 어는 것은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경험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하고 싶었는지를 다시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시간들만큼은 교복 입던 시절 생활기록부를 위해 학교와 학원에서 정해준 적성 활동을 적어내던 입시생도, 인적성에 유리한 평가를 받기 위해 취미와 특기를 고민하던 취준생에서도 벗어나 어떠한 목적도 없이 가장 솔직한 내가 되어 찾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전의 일상이 잠시 멈춰졌기에 찾을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은 추억이 되고 나쁜 일은 경험으로 남는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어떤 일의 시작을 고민할 때, 그 일이 나와 타인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포기하지 말고 해보라는 의미였는데, 나는 이 말이 지금의 우리 상황과도 잘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하던 원치 않았던 이전에 없던 시간의 공백이 생겼고, 그 시간을 당장 멈출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보는 것도 나를 위로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나 스스로와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취미만큼 본업을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처럼 모두가 힘들고 예민한 시점에는 타인과 공동체 전체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조금 더 필요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지금의 시간이, 2020년이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으로 기억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간은 멈춘 것이 아니라 다시 바쁘게 흘러가기 위해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믿기에, 이 시간의 공백에서 나와 우리가 잠시 숨을 고르며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올해 겨울이 오고 그 겨울이 끝나기 전에 지금의 일상도 추억으로 지나간 뒤, 공연장과 공원에는 사람이 다시 모이고 번잡한 인천공항의 출입국장을 지나는 설렘이 다시 익숙해지는 날 이 시간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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