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갬성’을 아시나요?
창신동 ‘갬성’을 아시나요?
  • 정채은 기자
  • 승인 2020.09.06
  • 호수 1516
  • 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멀리서 보면 오래된 집들이 빽빽이 늘어선 쪽방촌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 동네는 참 독특하게 이뤄져 있다. 1970·80년대 서울 패션 산업의 메카인 동대문종합시장의 의류 공급을 담당하는 배후 생산지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이 동네 골목길엔 다세대 주택과 소규모 공장이 복잡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바로 좁디좁은 골목길 사이로 1층에서 3층 높이의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빈틈없이 이어지고, 골목골목 정감넘치는 냄새가 그득히 풍기는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이다.

창신동은 동대문종합시장 뒤, 봉제산업의 핵심적인 근거지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터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의 생활환경이 낙후돼갔고, 지난 2007년엔 *뉴타운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며 마을은 통째로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이에 맞서 일터, 나아가 쉼터를 지키고자 했던 주민들의 의지로 6년 후 뉴타운 사업 지정이 해제됐고, 그로부터 또 1년 뒤 창신동은 전국 최초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된다. 그렇게 창신동의 도시 정비가 시작됐다.

첫 성과는 국내 최초 주민 중심 지역 재생 회사인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이하 협동조합)’이 탄생한 것이다. 주민들은 도시 재생 사업 추진을 위한 기반 구축 단계에서부터 실행단계까지 매 단계에 참여해 도시재생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창신동엔 끈끈한 마을 공동체가 형성됐다.

현재 창신동엔 △수수헌 △토월 △회오리마당과 같은 주민 공동 이용시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주민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자, 다양한 도시 정비에 있어서도 더 쉽게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었다. 손경주<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상임이사는 “마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외부인을 통해 마을을 정비할 때보다, 이 공간에서 삶을 꾸려가는 주민들이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했을 때 지속 가능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창신숭인 도시재생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은 직접 해설사가 돼 외부인들에게 마을에 대해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주거 환경 개선 외에도, 숨겨진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노래하는 철학자’ 김광석 △독립운동가 김상옥 열사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등 다양한 역사·문화적 인물들이 살아갔던 공간으로서의 창신동이 주목을 받은 것이다. 또한, 방치됐던 채석장 주변엔 전망대를 조성해 이 공간을 문화자원으로 재조명했다. 손 상임이사는 “도시재생은 곧 ‘사람 재생’이라고 생각한다”며, “마을에 대한 지역 주민의 자부심을 높여 그들 터전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가치 있게 바꿀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마련된 △백남준 기념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채석장 전망대 등 다양한 문화 공간들은 창신동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창신동의 도시재생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손 상임이사는 “아직 ‘완성’이 아니며, 급격한 변화를 좇기 보다는 창신동의 가치를 보존해가며 발전을 추구할 것”이라 전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창신동 골목을 걸으며 느낀 코끝을 찌른 따뜻한 기운이 아직 생생하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일상이 안정될 어느 날이 오면, 마스크 없이 이 골목을 걸으며 창신동 ‘갬성’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도움: 손경주<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상임이사 

MADE IN 창신
창신동을 거닐다 보면 △패턴 △재단 △주름 같은 간판이 시도 때도 없이 보이고, 공장의 열린 문틈으로 재봉틀이 끊이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행인의 수 만큼이나 많은 오토바이가 짐을 가득 싣고 좁고 가파른 골목을 따라 바삐 움직이기도 한다. 코로나19의 여파에도 이곳 사람들의 일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규모의 공장이 아닌 네다섯 명의 장인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옷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 형태의 소규모 봉제 공장이 들어서 있다. △패턴 작업 △샘플 작업 △마무리 작업 과정에서 대략 900개나 되는 많은 공장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협력하며 옷을 완성한다. 디자이너가 그린 도안으로 옷의 본을 뜨는 것을 패턴 작업이라 하며, 이후 실제로 옷을 만들어 최종 생산품을 정하는 샘플 작업으로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단추나 장식품 등을 달아 마무리한다. 이런 방식으로 창신동 봉제거리에서만 하루에 수십만 벌의 옷이 태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봉제산업 기지였던 창신동은 1990년대 이후 국내 의류 산업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내리막길을 걷는다. 수입품 범람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하락, 젊은 층 유입의 감소 등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봉제기술자와 봉제거리는 늙고, 창신동 봉제산업의 긴 서사시는 현대 의류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창신동을 지키기 위한 도시재생 산업과 봉제산업 종사자들의 노력으로 이 마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창신동 본연의 ‘봉제 중심가’라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창신동 647번지 일대에는 봉제 공장이 특히 밀집해 있는데, 이 거리 자체를 지붕 없는 ‘봉제거리 박물관’으로 꾸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봉제에 관심을 가지게끔 한다. 벽에 붙은 안내판을 읽으며 걷다보면, 안내판에 적힌 글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거리의 공장들에서 직접 엿볼 수 있어 그 재미와 관심은 배가 된다.

앞선 노력으로 창신동은 젊은 피를 수혈받기 시작했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의 협업과 창업이 이뤄지는 등 젊은이들이 창신동 봉제산업의 새로운 활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창신동의 대표적인 청년 창업 브랜드로 데님 전문 브랜드인 ‘GMH·’가 있다. ‘GMH·’는 3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2018 소잉마스터 아케데미’에 참여해 창신동 봉제 장인에게 직접 데님 제작 기술을 배우고, 그들의 브랜드를 론칭하는데 이르렀다. 안수희<GMH·> 대표는 “장인들의 전문 기술에 젊은 디자이너의 신선한 안목을 접목함으로써 품질 좋은 의류를 생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창업과 홍보로 창신동발(發) 브랜드에 젊은 소비자층이 유입되면서, 창신동 방문객들의 평균 나이도 한층 젊어질 수 있었다. 안 대표는 “최근 들어 창신동 봉제 공장에 젊은 디자이너나 신진 브랜드의 외주도 종종 눈에 띈다”며 “처음 창신동에 왔던 2년 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다양한 봉제의 분야에서 청년들의 도전이 부족하다고 한다. 안 대표는 “젊은이의 유입이 활발해졌긴 하지만, 여전히 공장에는 기술을 전수받을 젊은 층의 유입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성을 빛내는 장인들과 끊임없이 도전하는 청년들, 이들이 만나 봉제산업에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시하는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1번지 창신동이 되길 꿈꿔본다. 

도움: 안수희<GMH·> 대표


*뉴타운: 지방 자치 단체나 정부가 도시를 지정하여 재개발하거나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말한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창신동의 풍경

 

 ▲ 백남준 기념관
▲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
▲ 'GMH·'이 만든 다양한 데님 의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