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갈 곳 잃었던 한양성적소수자인권위원회···그 후
홀로 갈 곳 잃었던 한양성적소수자인권위원회···그 후
  • 조은비 기자
  • 승인 2020.08.28
  • 호수 1515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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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성소수자들 간에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온전히 이해하고 해결해온 유일한 기구였다” “매일 차별을 두려워하며 사는 날 대변해온 최소한의 수단이었다” “*아웃팅 걱정 없이 드나들 수 있던 학내 공간이 폐쇄돼 안타깝다”

한양성적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성소위)의 활동이 정지됐단 소식을 접한 학내 성소수자들은 위와 같이 말했다. 지난 학기에 열린 서울캠 제2차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성소위의 위원 인준과 사업 인준 안건이 출석의원 3 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지 못해 모두 부결됐다. 여기서 반대표보다 기권표의 영향이 컸다. 참여대의원 334명 중 위원 인준 안건에선 109명, 사업 건에선 124명이 기권표를 행사한 것. 

활동을 이어오던 중앙특별위원회(이하 중특위)가 상정한 모든 안건이 부결돼 중특위 자격이 정지된 일은 사상 최초다. 성소위는 약 5년 7개월 동안 중특위로서 사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지난 학기 전학대회의 결과로 성소위는 20년도 1학기 사업 계획으로 제출한 △인권 세미나 개최 △학내 성소수자 인권 상담 △홍보 포스터 및 현수막 게시 △혐오 발언 모니터링을 하지 못했고, 학생회관에 있는 자치 공간도 폐쇄된 채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성소위 인준 부결은 당시 사회 분위기 탓 
성소위 인준 부결 원인을 두고 학생대표자들 간 의견이 갈렸다. 당시 학생대표자 자격으로 전학대회에 참석한 몇몇은 성소위가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라 말했다. 제2차 전학대회가 열린 시점은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재확산과 함께 성소수자들에 대한 무분별한 보도가 시작됐던 5월 7일로부터 4일 뒤였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 서울캠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석찬<경영대 경영학부 18> 씨는 “전학대회가 진행된 기간 내내 성소위에 대한 논의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다가 막상 의결을 진행해보니 부결 결과가 나온 것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학내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감이 학생대표자들의 의결과정에 번진 것이라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대표자 A씨는 “성소위가 제출한 자료들을 검토했을 때 그간 꾸준히 활동해온 점이 충분히 증명됐고, 성소위와 성소위가 준비한 사업 모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며 “학생대표자들이 신중히 표를 행사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정황상 사회적 분위기를 탄 것 외에 다른 원인은 떠오르지 않는다”며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다. 

성소위 인준 부결은 성소위 탓
성소위의 미흡함이 인준 부결 원인이라 지적한 학생대표자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대표자 B씨는 “몇 시간 만에 끝났던 그동안의 전학대회에선 학생대표자들이 각 위원회의 사업을 제대로 살펴볼 새 없이 ‘거수기’의 역할을 해왔다”며 “지난 학기 전학대회는 온라인으로 3일간 진행돼 위원회별 사업 내용을 각자 꼼꼼히 검토할 수 있었단 차이가 이전과 달리 성소위에게 부결이란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대표자 C씨는 “성소위의 사업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느꼈다”며 “상담 다과비용이 포함된 예비비에 10만 원을 책정한 이유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C씨는 “전학대회는 충분한 시간 동안 진행됐고, 주어진 시간 내 대표들을 설득하지 못한 책임은 성소위에 있다”란 의견을 냈다.

이러한 시각들에 대해 지난 학기 성소위 위원장 후보였던 박채림<인문대 사학과 16> 씨는 “학생대표자들이 기권표를 행사한 의중을 함부로 짐작할 순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박 씨는 “성소위는 비대면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지침을 마련했고, 기존에 없던 사업들도 새로 기획했다”며 지난 학기 제출한 사업 계획안이 부실해 부결됐단 의견엔 동의하지 않았다.

성소위에 남은 과제
여전히 몇몇 학생대표자들은 성소위에 미온적이다. B씨는 “만에 하나 성 ‘소수’ 자를 위한 위원회의 활동으로 다수의 공리를 희생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성소위가 학생사회에 필요한 기구일지 재고해봐야 할 것”이라며 “이 부분은 학생회가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고 답했다. C씨는 성소위에 대해 “필요성이 대두돼 설치됐지만, 막상 위원회 운영은 미흡하다 생각해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답했다. 

성소위가 위원 및 사업 인준을 받기 위해선 지난 학기 기권표를 던졌던 상당수의 학생대표자들을 설득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박 씨는 “성소위는 학내 성소수자들이 겪는 특수한 인권 침해에 대응하기 위해 꾸려진 기구며 중특위로 존재해야 강한 집행력으로 공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중특위는 ‘총학생회칙 제34조 1항’에 따르면, 업무의 성격이 지속성·독립성·전문성이 필요한 것일 때 그 특정 업무를 전담해 집행하는 정식 학생자치기구이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지난해 학내 성소수자가 겪은 성폭행 피해 사건을 해결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일반적인 성폭행 대응 매뉴얼로는 성소수자들에게 닥친 사건을 절대 해결할 수 없다”며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성소위, 제3차 전학대회 위해 재정비 중
지난 학기 전학대회에선 학생대표자들이 성소위에 지적한 사안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지난해 방중 전학대회에서 성소위의 사업 운영이 소극적이란 지적이 나온 바 있어 성소위는 이 지적 사항을 보강하기 위해 회의를 거듭하며 제3차 전학대회를 준비 중이다. 

박 씨는 “과거 인력난으로 활발한 활동이 힘들었지만 이번 학기에 성소위가 인준이 된다면 성소수자들뿐 아니라 *앨라이들까지 함께할 것”이라며 “아웃팅 방지를 위해 드러내놓고 인준을 받는 정식 위원과 함께 수습 위원이란 이름으로 위원 체계를 나눠 운영하지만 맡는 업무는 동일하다”고 밝히며 변화가 있을 것임을 피력했다. 

지난 14년도 9월의 전학대회에서 성소위는 비공식 기구에서 공식적인 중특위로 승격됐다. 그리고 5년 7개월, 성소위가 잠시 정지됐다. 성소위의 재가동 여부가 오는 20년도 9월의 전학대회에 달려 있다.


*아웃팅: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를 말한다
*앨라이: 동성애자, 양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인권 개선을 지원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이성애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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