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우당탕탕 학보사
[장산곶매] 우당탕탕 학보사
  • 오수정 편집국장
  • 승인 2020.06.08
  • 호수 1514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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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편집국장>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

필자가 한대신문 정기자가 되자마자 썼던 취재일기 제목이다. 첫 문장부터 ‘한대신문을 그만두고 싶었다’는 매우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이 취재일기는 한대신문의 끝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나만의 거짓말로 마무리된다. 그 마무리가 거짓말인 이유는 취재일기를 쓸 당시엔 한대신문을 끝까지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만의 거짓이던 말은 현실이 됐고 필자는 정기자를 지나 편집국장으로서 한대신문의 끝과 마주하고 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끝까지 버텼다. 도망친 곳에 천국이 없다면 끝까지 버틴 곳엔 ‘천국’까진 아니더라도 천국에 준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은 이곳이 바로 지옥일 줄은 몰랐다. 한대신문에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처절하게 버텨왔다.

으레 ‘학보사의 위기’라는 말은 ‘사람은 죽는다’처럼 참인 명제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대신문은 학보사고 한대신문은 위기라는 말로 귀결된다. 한대신문은 정말로 위기인가. 필자는 편집국장이 되면서 이 명제를 거짓으로 만들고 싶었다. 고생하는 기자들의 노력이 인정받기 위해, 적어도 고통 속에서 한 호, 한 호 발간하는 스스로가 미련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대신문의 위기라는 인식을 조금이라도 벗기고 싶었다.

그러나 편집국장이 되자마자 첫 번째, 두 번째 발간 연속으로 한 명씩 기자가 퇴사하며 인력난에 부딪혔다. 힘겨워하는 기자들에게 독자를 생각하고, 대학 사회의 진정한 문제와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기획안을 가져오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순간 현실과 타협했고, 겨우 지면을 채워 발간하기도 벅찼다. 그렇게 편집국장이 되자마자 첫 번째 위기에 직면했다.

한대신문의 위기는 신문사 내부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신문사 밖 상황은 훨씬 처참했다. 한대신문 독자인 학생들은 고리타분한 신문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재밌고 접근성 좋은 정보 소통 창구인 학내 커뮤니티와 SNS가 있었다. 학생들이 신문을 읽어야 할 이유보다 읽지 않아도 될 이유가 더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학교에 신문은 필요했다. 학내 신문은 느리지만 정확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학내 커뮤니티와 SNS와는 달랐고, 달라야 했다. 신문은 객관에 가까운 진심을 담은 기사도 중요하지만 진심보다 진실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진실과 거짓, 팩트와 뇌피셜을 골라내 진실만을 전하기 위한 모든 과정에 집중했다. 

그러나 편집국장으로서 진실을 분별하고 논리적인 글로 수정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늘어지는 마감 시간은 완성도 높은 기사를 위한 필수적인 절차였지만, 길어지는 과정 속에 모두가 지쳐갔고 이는 한대신문에서 직면했던 가장 큰 위기였다. 

그러나 진실을 전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힘든 게 당연하다.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고 힘든 신문사 생활이었을 것이다. 필자 또한 2년을 해도, 정기자가 아니라 편집국장이 돼서도, 익숙해지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그럼에도 언론사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힘든 것보다 나은 기사를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의 고통보다 안일함에 빠져 ‘진실’보다 ‘현실’에 타협하게 될 것을 더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신문을 발행한다는 힘겨운 과정에 진실과 공정을 위한 보도, 더 나은 글과 기사를 위한 노력에 안일해지는 핑계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코 천국일 수 없는 이곳에서 기꺼이 진실을 담을 붓을 잡은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며 그동안 고생많았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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