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혐오로 부정당한 학내 구성원들에 관하여
[장산곶매] 혐오로 부정당한 학내 구성원들에 관하여
  • 오수정 편집국장
  • 승인 2020.06.01
  • 호수 1513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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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편집국장>

 

필자는 지금 당신이 듣기에 불편할 수도 있는 주제로 글을 써보려 한다. 불편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근거는 학내에서 해당 주제에 관한 담론이 일어날 때마다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던 것을 본 경험이 있어서다. 다소 뜸을 들이며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필자는 성소수자와 페미니즘에 관한 주제를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는 분명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존재한다. 표면적으로 혐오가 자주 드러나진 않아도 익명이 보장된 학내 커뮤니티에선 대놓고 이들을 비난하는 글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많은 댓글이 해당 글을 지지해주고 있다. 익명의 공간에서 비난하는 것까진 스스로 보지 않고 외면하면 된다고 하더라도 현실 공간에서 이들에 대한 혐오가 발현됐을 때, 인식의 차이를 실감하고 절망에 빠질 때가 있었다.

이 절망을 바로 지난주 서울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 기사를 준비하며 느꼈었다. 이번 전학대회에선 중앙특별위원회(이하 중특위) 위원 인준과 사업계획 인준이 포함돼 있었다. 인준 결과 한양성적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성소위)를 제외한 모든 인준이 가결됐다. 성소위를 제외한 모든 중특위 위원회가 95%이상의 찬성률로 가결된 것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성소위 위원과 사업 계획 안건 부결은 약 120명의 대의원이 기권표를 던진 결과였다. 학내 구성원을 대표해서 나온 320명 중 약 3분의 1이 성소위의 위원단 구성에 관한 논의부터 의결을 거부한 것이다. 성소위 위원 구성과 사업계획이 부실하다 판단했다면 반대표를 던지거나 질의 과정을 거쳤어야 했는데 그 어떤 질의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약 120명의 대의원이 기권표로 의결을 거부한 것은 표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저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는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이 이태원의 게이클럽에서 시작했다는 보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성소위를 반대한 것은 언론이 명분을 쥐어줬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과거부터 존재했던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이번 코로나19 재확산을 계기로 반영됐을 가능성도 있다. 학생을 대표하는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학내 잠재돼 있던 성소수자 혐오가 드러났고, 학생을 대표하는 이들에 의해 성소위는 성소수자를 위한 여러 인권 사업을 실시할 기회를 잃었다. 

학내에서 페미니즘 혐오를 목격한 경험도 있다. 지난해 11월 정보사회미디어학과의 학술제에서 어떤 팀이 ‘성차별 언어’에 관해 발표한 것을 두고 학내 커뮤니티에서 논쟁이 일었다. 해당 논란이 커져 팀원과 학과에 대한 비난으로 확산됐고 해당 사태와 관련한 대자보가 언론정보대 1층에 부착됐다. 그러자 학내 커뮤니티에서 있었던 논쟁은 대자보 옆 쪽지의 형태로 옮겨갔다. 사태가 커지며 비판의 대상과 근거가 여러 갈래로 분화됐음에도 발표 팀에 대한 비난의 요지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발표했다는 것이었다. 익명의 학생이 부착한 쪽지에서는 ‘발표로 선택한 주제가 논란이 있는 주제였음을 인지했다면 반발이 적었을 것’이라며 논란을 발표팀의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의견도 존재했다. 학술제 다른 팀의 발표와 달리 ‘페미니즘’을 주제로 발표한 팀에 대해서만 비난만 존재했던 것, 비난의 원인이 ‘페미니즘’ 자체였던 것은 학내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가 존재함을 시사했다. 

우리 학교에선 여전히 성소수자 와 여성 인권에 대해 언급했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비난과 혐오를 감당해야 했다. 학교엔 여전히 이들에 대한 혐오가 잠재돼 있고 혐오의 시선은 명분만 쥐어지면 언제든 이들에게 칼날을 겨눌 것이다. 당신이 혐오한 이들은 오늘도 자신의 존재를 걸고 투쟁하는 이들일 수 있다. 그리고 혐오로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순간 그들의 세상은 당신에 의해 좁아질 수도 있다. 더는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되며 성소수자와 페미니즘에 대한 건강한 담론이 활성화 돼, 이들의 존재가 혐오라는 이름으로 비난받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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